정원의 철학자 - 자라난 잡초를 뽑으며 인생을 발견한 순간들
케이트 콜린스 지음, 이현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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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월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올해 앞자리가 4로 바뀌면서 굉장히 뒤숭숭한 나날을 보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매일 단단한 호박씨에서 인내의 가치를,

향긋한 무화과에서 인생의 기쁨을 발견한다!"

이 문구에 이끌렸습니다.

생명력 넘치는 정원으로부터의 깨달음.

저도 가만히 거닐어보고자 합니다.

"정원을 돌본다는 건 일상 속에서

작지만 소중한 나의 철학을 만드는 일이다!"

삶을 풍요롭게 가꾸고 싶은 당신에게 정원이 건네는 말

정원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 니체, 루소, 노자, 붓다, 볼테르, 헤르만 헤세, 버지니아 울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 문학가들의 위대한 생각은 갑갑한 서재나 대형 강의실이 아닌 열린 공간인 텃밭과 정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하였습니다.

정원은 작은 생각이 건강한 뿌리를 내려 그 의미를 꽃피우는 곳이며 그 인생 철학이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는 곳이다. 우리 삶을 더 아름답게 가꿔줄 가장 생명력 넘치는 여러 생각들이 그 안에서 자라나고 있다. 식물과 작물을 가꾸다 보면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삶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 page 12 ~ 13

그러므로 정원을 가꾸는 것은 결국 인생을 가꾸는 것이었습니다.

저자 역시도 찬란한 햇빛을 받은 한 뙤기의 흙에서 새싹이 자라나, 잡초와 병충해를 견뎌 꽃과 열매를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텃밭의 순환 과정 속에 우리 인생에 적용할 단단한 삶의 태도와 생생한 철학이 있음을 몸소 경험하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내면을 가꾸는 가장 생명력 넘치는 방법을 전해주었습니다.

책은

모든 것의 시작인 것처럼, 모든 것의 밑바탕이 되는 주제를 다루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자신을 발견해야 함을 전한 '봄'

쑥쑥 자라는 식물처럼 성장하는 삶을 위해 필요한 태도를 전한 '여름'

숙고의 시간을 거쳐 열매를 맺는 것처럼,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법을 일깨워준 '가을'

꽃 피고 열매 맺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처럼 모든 삶이 계속 흘러간다는 것을 알려준 '겨울'

로 정원으로부터 인생의 지혜를 건네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다','불리하다', '좋다', '나쁘다'로 판단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건 모두 자기중심적인 생각에서 기인한 아주 협소한 결론일 뿐이다. 귀찮고 성가신 일들, 주변 사람들과의 사소한 갈등,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잘한 불편을 겪을 때 우리는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우월하며 좋은 대우를 받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그 생각을 버리고 숙고해 보면, 세상사에 절대적이고 올바른 답은 없다. 삶은 훨씬 더 상대적이고 미묘하다.

아, 드디어 비가 그쳤다. 아늑한 헛간과 보온병에 든 따뜻한 차를 뒤로하고 상추를 살펴볼 시간이다. 아마도 나는 내 상추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서 민달팽이와 달팽이들을 골라내 다른 곳으로 옮겨줄 것이다. 물론 또 정원에 찾아오겠지만, 그때는 다시 옮겨주면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정원을 가꾸는 기쁨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 page 42 ~ 43



어떤 글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씨앗처럼 제 가슴속에 뿌리내렸었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저의 정원이 가꿔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떤 책보다 오랫동안 곱씹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기적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정원과 그 생명들.

이들을 통해 분명히 배울 수 있는 건

정원도 우리 삶도 언제나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이다. 단편적인 지식에 함몰되고 근시안적으로만 관찰할 경우 우리는 삶이 주는 미스터리를 풀어낼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은 플라톤이 말하는 동굴 속 그림자에 불과할지 모른다.

분명 잘 알고 있고 자신 있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흘러갈 때도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한편으로는 그 미지의 영역이 우리의 삶을 놀라움으로 이끌기도 한다. 그러니 다 알고 있다는 편협한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을 유지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단 한 번 뿐인 인생을 만끽하는 방법이 아닐까? - page 300 ~ 301



'정원'이 저에게 알려준 건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였습니다.

자연의 섭리처럼 흘러가는 삶 속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나름의 균형을 맞추며 유지된다. 그래서 반복되는 현상을 관찰하면 세상의 이치를 알 수 있다. 이번 여름은 지난여름과 또 내년 여름과 다를 것이다. 경험하는 여름마다 우리는 여름의 실재가 어떤 모습인지 조금씩 더 알게 된다.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변화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 page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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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 모더니즘 회화편 - 14명의 예술가로 읽는 근대 미술의 흐름
박신영 지음 / 길벗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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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눈이 닿는 곳마다 명화가 펼쳐지는 것 같습니다.

하늘의 푸르름, 조금씩 물드는 알록달록 단풍들, 그리고 나들이 나온 이들의 미소...

그래서 '가을'이 참 좋습니다.

아름다움을 한껏 즐겨보고 싶었던 것일까...

간만에 미술 이야기가 읽고 싶었습니다.

잠시 나만의 전시회를 찾고자 책을 찾던 중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기 팟캐스트 <후려치는 미술사>의 유쾌한 미술 이야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잠시 명화와 예술가를 향한 즐거운 여행을 떠나볼까 합니다.

모네에서 로스코까지, 미술이 가장 역동적이었던 그때

역사 속 가장 비싼 명화들을 통해

미술사의 흐름을 한 줄로 꿰는 재미!

이토록 재미있는 미술사 도슨트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뭉크의 <절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클림트의 <키스> 등.

너무나 익숙한 명화들입니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림들 대부분은 '모더니즘 회화'라 합니다.

이 작품들 역시도 그렇고.

하지만 간혹 이런 생각을 해 보곤 할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낙서 같은 이 그림은 왜 유명한 걸까?"

"물감을 흩뿌려 놓은듯한 이 그림이 세계 최고가로 거래되었다고?"

그럼 이 그림들은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어떤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와 배경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바나나가 자라기 시작했다면 바나나 자체보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더니즘 회화를 이해하려면 그것이 탄생한 모던 시대, 즉 근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 page 5

그 배경으로 '시민혁명'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생각하며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자유로운 분위기가 자연스레 미술에도 전이되고 예술가들도 각자 하고 싶은 미술을 마음껏 창작하다 보니 이런저런 다양한 형식이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모더니즘 회화의 다양성'.



그러다 어느 순간 한 가지 재미있는 현상을 겪게 되는데...

"그림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

근대 예술가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답을 찾아나가는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었습니다.

화가들은 계속 고민했습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한 미니멀리즘도 시도해 보고 수많은 비평가들과 함께 이런저런 논쟁의 과정도 거쳤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무오류의 완벽한 평면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모더니즘 회화 전체를 관통했던 '그림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멈추게 되었습니다. 한 세기를 이어온 모더니즘 회화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완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으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 page 309 ~ 310

그럼에도 모더니즘 회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꿈을 좇던 예술가들의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실패나 성공의 여부와 상관없이 무언가를 깊이 고민하고 탐구했던 그들.

그 자체만으로 그들을 인정할 수 있었고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역시나 미술 이야기는 재미있었습니다.

예술가를, 그림을 어디에 포커스를 두는지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그래서 읽어도 또 찾아 읽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나 익숙한 14명의 예술가와 작품, 인생을 미술사의 흐름으로 읽게 되니 그야말로 한 줄의 구슬처럼 꿰어주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식민지들을 거느리며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서면서 모더니즘 회화의 '완성'에 이르렀을 때, 물감을 흩뿌린 그림이 모더니즘 회화의 완성에 가장 근접했다고 평가하는 이유가 가장 '평면적'이기 때문이라는데...

잭슨 폴록은 사실상 아무것도 그리지 않았고 그저 물감을 흩뿌려놓았을 뿐입니다. 어떠한 깊이도 없고 어떠한 형태도 없으며 그저 '혼란스러운 평면'에 불과합니다.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은 잭슨 폴록의 회화가 오히려 가장 '그림의 본질', 즉 '평면'에 근접했다는 것입니다. - page 287

이런 맥락까지 이해해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어쩔 수 없이 대중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데...

잭슨 폴록의 자리를 이어받은 최고의 예술은 '숭고'를 표현하는 그림이라 하니... 도통 종잡을 수 없었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숭고'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지만 과거의 예술작품으로부터 오랫동안 '숭고의 미술'은 존재했음에.



단순히 화려한 묘사가 없다고 해서 본존불상을 밀로의 비너스보다 못한 미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둘은 아름다움의 종류가 다를 뿐입니다. 비너스는 '관능의 미'라면 본존불상은 '숭고의 미'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본존불상을 보면서 시각적 쾌감보다 마음의 위안과 경외심을 느낍니다.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표현하는 방식은 화려하기보다 차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과거에 있었던 '숭고의 미술'입니다. - page 298

역동적이었던 근대미술이 현대미술에서는 반대로 회화와 조각을 완전히 포기하고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 영상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고민하고 꿈을 향해 달려나가는 모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에 앞으로의 미술은 무엇으로 기록될지 꾸준히 관심을 가지며 지켜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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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곤도 후미에 지음, 윤선해 옮김 / 황소자리(Taurus)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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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연휴가 끝이 나고 몸과 마음이 휑해진...

그 자리를 채워줄 가슴 따스한 이야기를 찾던 중 이 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가슴이 뜨끔하고, 때로 격하게 공감하면서 이 소설을 읽었다.

경쾌한 문장으로 삶의 심오한 주제를 파고드는 작가의

노련한 글솜씨에 끊임없이 감탄하면서.

-오오야 히로코(<소설과 추리> 리뷰)

차 한 잔 곁에 두고 찬찬히 읽어보려 합니다.

어느 봄날 오후,

카페 루즈가 그녀의 삶으로 들어왔다

종종 여행 떠나는 카페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집 소파다. - page 11

15년째 같은 회사에 다니는 서른일곱 살 '에이코'.

취미다운 취미도 없고 통장 잔고엔 늘 얄팍하고 대출이 남아있는 그녀에게 유일한 안식을 주는 건 작은 아파트 거실 소파였습니다.

소파 위에 있을 때면 에이코는 선명한 행복감을 느끼곤 합니다.

다만 그 행복감에는 우울이라는 베일이 늘 덧씌워져 있지만...

사랑하는 소파에서 한동안 뒹굴뒹굴하다가 벌떡 일어난 에이코.

가라앉는 기분을 털어내자는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봄바람을 맞으며 동네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가게가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하얀색 단독 건물에 '카페 루즈'라는 간판을 단 작은 가게.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 여기서 조금 쉬었다 갈까 하며 들어갔더니

"나라 씨? 나라 씨 맞지요?" - page 22

6년 전 에이코의 회사에서 잠시 일한 '마도카 구즈이'가 있었습니다.

토끼처럼 튀어나온 앞니에 말수 적고, 동료들과도 거의 어울리지 않았지만 에이코에게는 마지막까지 살가웠던 그녀.

그런 그녀가 에이코에게 사표를 내며 카페를 하고 싶다고 고백했을 때 충고 아닌 충고를 건넸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어린 친구에게 왜 그리도 무정하게 말했을까...

'카페 루즈'는 매월 1일부터 8일이 휴무라고 하였습니다.

영업은 9일부터 말일까지.

휴가 기간에 마도카는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맛본 디저트나 음료를 이 카페에서 재현해 메뉴로 내놓는다고 하였습니다.

"어쩐지 여행을 떠나는 듯한 기분이야."

이름도 존재도 모르던 외국 음료와 만났다.

마도카는 환하게 웃었다.

"우리 카페, 그런 콘셉트의 가게예요.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카페. 저도 자주 여행을 가서 쉬고요, 대신 손님도 여기에서 여행을 느끼고요." - page 25

'지금 이곳'을 사는 이들이 '낯선 그곳'을 미각과 촉각, 시각과 후각으로 대리 체험하는, 꿈같은 공간인 '카페 루즈'.

이곳으로부터 딸기수프, 추프쿠헨, 도보스 토르타, 원앙차, 세라두라, 바클라바 등 낯선 음식과 함께 그동안 마음을 옥죄던 강박의 굴레가 한꺼풀씩 벗겨지는 마술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데...

마도카가 내어주는 신기한 디저트와 음식들 사이로 그려진 각양각색의 인생사.

아슬아슬하고, 쓸쓸하고, 애틋하고, 미스터리한 열 개의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페라는 곳은 신기한 장소이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비밀을 나누기도 하고 상담을 받기도 한다. 옆자리에 앉은 손님이나 점원들이 듣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 이야기는 흐르는 음악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흘려들을지언정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니다. - page 131

읽으면서 마치 '카페 루즈'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눈 뒤 개운할 듯 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는 듯한 느낌...

아마도 그건 나에게 던진 질문이었고 깨달음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런 카페가 있었으면 하는 큰 바람이 생겼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참 공감하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있지요. 반드시 여행을 가겠다고 작정하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잖아요. 또 이것저것 놓치는 일들도 생기는 것 같아서, 정해진 규칙으로 삼지는 않았어요." - page 119

정해버리면, 오히려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의 의미.

그 말의 의미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원앙차'로부터 '도전'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게 되었습니다.

커피와 홍차가 원앙 부부라니, 얼핏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다.

"그러니까 도전해 보지도 않은 채 미리 무서워하지는 않았으면 해. 이 세상에는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유키는 원앙차가 든 잔을 끌어당기며 웃었다.

"맞아요. 이 차가 커피와 홍차 블렌딩이라는 말을 먼저 들었으면 안 마셨을지도 몰라."

그렇다.

해보지 않으면, 정말로 좋아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수 없는 일들이 세상에는 너무도 많다. - page 166

마치 저에게 건넨 위로 같아서일까...

책을 다 읽고 식어버린 차를 바라보며 한동안은 멍해졌었습니다.

툭, 툭.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돌아온 일상.

왠지 오늘은 저도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이런 카페를 한 번 찾아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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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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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서재 결혼 시키기』라는 책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자 앤 패디먼이 남편과 책을 한데 섞기로 결정하면서 결혼을 완성했다고 하였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자아만이 아니라 서재를 결혼시키면서 살갗처럼 친숙한 책들과 두 존재의 지성적 결합을 완성한다고...

그러면서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

라는 앤 패디먼의 사랑 고백도 있었는데...

응?

이번엔 '이혼'이라니...

파격적이라고 해야 할까!

오히려 더 솔깃했었습니다.

결혼 25년 만에 이런저런 이유로 합쳤던 서재를 나누며 '닮음'의 열망 때문에 '다름'이라는 현실을 간과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타인과 더불어 살지만 궁극적으로 자아를 잃지 않는, 독립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딱 보자마자 오히려 이것이 더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그녀의 이야기는 어떨지 귀를 기울여보았습니다.

『지지 않는 하루』 『배를 놓치고 기차에서 내리다』 이화열 작가의

닮음과 다름, 독립과 의존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

"타인이란 구원이 아닌 위로일 뿐,

'자신'을 위탁할 곳은

세상에서 오로지 자신뿐이다"

서재 이혼 시키기



이 책은 저자 삶의 체험에서 나온 단상과 시선이 담긴 이야기였지만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잃지 않는 독립적인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1장은 기질과 취향이 다른 영원한 타인과 고군분투하는 결혼의 일상을 통해 오래전부터 혼자 부딪치고 사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자기를 책임져줄 수 있는 존재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질문들이,

2장은 아이들의 성장과 독립을 겪으면서 따뜻한 애착의 습관, 정신적인 탯줄을 끊고 성장하는 부모 이야기를 통해 '자식' 대신 '자신'으로 채우고 살아야 하는 삶의 중요성에 대해,

3장은 타인에게 빌려온 욕망이 아닌 일상에서 자신의 내면과 만나는 행복에 대해

담담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공감되었습니다.

서재를 보면 그 사람이 보이듯 각자의 취향과 정신세계를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미래에서 찾을 것도 알고 있는 '서재'.

책을 같은 공간에 놓는다고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는 것일까...



그리고 타인의 취향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타인으로 태어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타인이 배우자일 경우는 더 그러한데...

다른 취향과의 공존은 칫솔을 나눠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렵지만 어쩔 수 없이 갈등을 피하는 기술을 터득하기도 한다. 어쩌면 결혼은 이 차이에 대한 감각을 꾸준히 새롭게 하는 것이다.

"왜 맛이 없어?"

올비가 묻는다.

내가 말한다.

"왜 맛이 없냐는 질문은 왜 사랑하냐는 질문처럼 부조리해."

상대의 취향은 이해와 분석의 영역이 아니다. 우선 "왜?"라는 의문사 대신 "아!"라는 감탄사로 바꾸는 것이다. 너와 나는 이렇게 다르지만 너 같은 존재, 나 같은 존재는 세상에 단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 page 71 ~ 72

함부로 '이해'라 하지 말아야 함을.

그래, '아!' 하며 받아들이자 다짐해 봅니다.

요즘처럼 청량한 바람이 불어올 때면 느지막이 바깥나들이를 하곤 합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 때면 짙은 코발트빛으로 바뀐 하늘.

그 하늘을 바라보면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곤 하는데 저자 역시도 그랬습니다.

저녁 풍경과의 내밀한 만남, 문득 세상과 내가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저녁 풍경이 주는 감각적인 희열을 음미한다. 이 순간 나는 가장 완벽하게 존재한다.

길모퉁이를 돌자 어슴푸레한 저녁 거리 한가운데 불빛 없는 책방 간판이 또렷하게 보인다. 'Le bonheur', 하나의 행복이 아닌 '바로 그 행복'이다. 이따금 산책은 나에게 바로 그런 행복을 허락한다. - page 257

'Le bonheur'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긴 채 오늘도 산책길에 나서보려 합니다.

결국 '나'를 찾아가는, 자아를 잃지 않고 사는 법을 일러준 이 책.

덕분에 '나'라는 서재를 바라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채워나갈 이 서재에 난 어떤 책들로 채울까...

행복한 고민도 해 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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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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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정체성을, 타자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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