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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대디
제임스 굴드-본 지음, 정지현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월
평점 :
책소개글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슬픔으로 얼어붙은 당신의 마음을 유쾌하게 녹여 줄 단 하나의 이야기
슬픔으로 얼어붙지는 않았지만...
왠지 따뜻한 이야기로 입가에 미소를 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읽게 된 이 소설.
마지막에 코끝 찡한 감동까지 선사했기에 더없이 행복했던 이 소설.
거리의 춤추는 판다와
말하지만 말하지 않는 소년,
이들은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댄싱 대디』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03/pimg_7523781182827301.jpg)
끼익! 하는 자동차 바퀴 소리에 잠이 깬 '대니'.
지금 여기에서 난 소리가 맞나 하고 생각을 되짚다 보니 조금씩 정신이 들었습니다.
꿈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텅 빈 베개가 있는 옆자리...
주방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채워 불에 올리고, 빵을 토스터에 넣은 다음 라디오를 켭니다.
식탁에 앉아 지난 14개월 동안 그래 온 것처럼 벽을 보면서 아침 식사를 합니다.
"윌!" 그가 주방 문가에서 소리쳤다. "일어났니?" - page 13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음에도 윌은 대답하지 않고 멍든 팔을 보며 문고리에 걸린 구겨진 교복 셔츠를 가져와 찡그린 얼굴로 팔을 소매 안으로 살살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땅콩버터를 바른 두 조각의 토스트와 머그잔에 그려진 붉은 증기기관차를 보며 마지못해 한 입 해 봅니다.
"오늘 엄마 생일인 거 알지?" - page 14
대니는 노란색 안전모와 형광색 작업복 차림으로 공사장을 가로질러 갑니다.
지각을 한 대니.
그런 대니에게 작업반장 알프는 새로 온 관리자가 오늘 아침에만 두 명을 해고할 정도로 인정사정 안 봐 주는, 깐깐한 사람이니 앞으로 지각하지 말라고 당부를 합니다.
대니는 윌과 함께 묘비 앞에 서 있습니다.
이제 1년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아내가 죽었다는 사실...
여전히 윌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대니는 묘비를 바라보며 말을 건넵니다.
"있잖아." 대니가 잔뜩 흐린 하늘을 힐끗 쳐다보았다. "난 지금 여기 서서 돌에 대고 말하고 있어. 당신이 지금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거 알아. 당신은 여기 없으니까. 여기 있을 리가 없지. 햇살이 비치지 않잖아. 그러니까 내가 지금 돌에 대고 말하고 있다는 거지. 당신은 지금 생일 기념으로 놀러 나갔으니까. 재미있게 놀아. 지금 어디서 뭘 하든 웃고 있어야 해. 춤추고 있으면 좋겠다. 들어올 때 나 깨우지 말고 조용히 들어와. 알았지?"
대니는 손가락을 입에 대었다가 묘비로 가져갔다.
"사랑해, 리즈. 생일 축하해." - page 40
아직 아내를, 엄마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가슴 아파하는 이들에게 시련이 찾아옵니다.
월세가 두 달이나 밀린 세입자 대니에게 집주인 레그는 큰 자비를 베푼다며 두 달 기간을 주어서 이자까지 갚으라고, 그렇지 않으면 쫓겨나는 것은 기본이고 멀쩡한 몸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는 협박을 합니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은 왜 한꺼번에 찾아오는지...
레그의 협박을 받은 지 몇 시간도, 아니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 공사장에 지각을 하는 바람에 깐깐한 관리자로부터의 해고를 통보받게 됩니다.
수입이 끊기게 되고 얼마 뒤면 집까지...
일자리를 찾아보지만 모두 '경력'을 원하게 되고...
막막해진 대니는 얼마 전 공원에서 보았던 공연자들이 변장하고 바보짓을 하는 것으로 꽤 짭잘한 수입을 올리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자신도 공연자가 되기로 합니다.
바로 '춤추는 판다'.
뭐 하나 공연할 것도 없는 판다이기에 수입은커녕 마이너스가 될 상황입니다.
그런데...
"어디 가냐, 윌리?" 마크가 말했다. 토니는 도토리를 윌의 뒤통수에 던졌다. "야! 윌리! 윌리 웡카! 남자친구 찾냐?"
세 명이 계속 뒤따라오자 윌은 좀 더 빨리 걷기 시작했다. - page 136
그렇지 않아도 학교에서도 마크 패거리들은 윌을 괴롭히는데 굳이 쫓아와서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그만하라고 말하면 그만하지. 말만 하면 가만 놔둘게." 마크가 말했다.
윌은 말이 없었다. 넘어지거나 도망치지 못하도록 팔을 꽉 붙잡힌 몸이 축 늘어졌다. - page 137
어디선가 덤불에서 털북숭이 가면을 쓴 미치광이가 튀어나와 소년들에게 달려들고 있습니다.
놀란 소년들은 도망가고 남은 윌.
"고맙습니다." - page 138
방금 들은 말, 들은 것 같은 말, 제발 들은 것이 맞기를 바라지만 믿어지지 않는 말.
대니는 지금 뭐라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윌이 말을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대니에게 조금씩 희망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아직 윌은 대니가 공사장에서 일을 하는 걸로 알고 있기에, 사실 자신이 판다였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그러다 다시 윌이 판다에게 다가와 말을 건넵니다.
"왜 말을 안 하세요?"
대니는 예, 아니오가 아닌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했다. 발 옆에 놓인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이것저것 적어두는 수첩을 꺼내 뭐라고 휘갈렸다. 자신의 형편없는 필기체를 아들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일부러 대문자로만 썼다.
'난 판다니까.'
윌이 미소 지었다. "저도 이해해요. 말하기 싫은 마음 말이에요. 저도 말을 안 하거든요." - page 197
그렇게 윌에게 조금씩 다가가게 된 대니.
그리고 알게 된 사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03/pimg_7523781182827300.jpg)
그동안 아들에 대해 몰랐던 대니는 이제라도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하고...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대니.
과연 이 둘은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1/0203/pimg_7523781182827297.jpg)
그동안 윌을 괴롭히던 마크에게 윌이 외친 이 이야기는 참 가슴이 찡했습니다.
"네가 화 난 것도 알아, 마크." 이제 윌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네 인생은 망가졌는데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가서 화나지? 너무 억울해서 다른 사람들의 인생도 망가뜨리고 싶을 거야. 넌 너무 불행한데 남들만 행복한 건 억울하니까. 아무도 네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을 거야. 그래,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많아. 하지만 난 이해해." 윌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난 네 마음 이해해. 얼마나 아픈지 알아. 하지만 남들을 괴롭힌다고 아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야. 고통은 사라지지 않아. 날 계속 때리고 놀리고 괴롭혀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왜냐하면 너희 아빠는 우리 엄마처럼 돌아가셨으니까. 어떻게 해도 다시 돌아올 수 없어." - page 325
결국 슬픔을 위로해 줄 수 있는 건 그 슬픔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뿐이었을까...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춤추는 판다씨 덕분에 저 역시도 제 상처를 보듬어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판다씨!
그리고 저도 제 아이에게 한 발자국 다가가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