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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로버트 풀검 지음, 최정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 방송의 짤막한 VOD를 보기 전 난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이 책을 읽으면서 마냥 행복해 했었다.
"여러분들, 모두 안녕하시지요?” 라는 작가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크레타에서 생활하면서 찾아낸 그의 삶에 녹아진 웃음의 미학은 내 몸을 휘감은 피로를 싹 풀어주었고 긴장의 연속인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잠시 날려주었다.
그렇게 그의 글은 일상속의 자잘한 이야기들도 그만의 독특한 생각과 상상력으로 우리에게 웃음과 함께 삶의 지혜와 깨달음을 얻게 해 주었다.
그런데 거기까진 좋았었다. 어느 30살 먹은 여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기까지.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12월 27일 쯤 친구와 연락이 계속 닿지 않자 그녀의 친구는 그녀의 지하쪽방을 찾아갔다.
방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어 창문을 통해 방안을 들여다보고 결국 문을 열었는데...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나 보일정도로 앙상하게 뼈만 남고 파란 반점이 여기저기 나타나있는 친구는 싸늘한 시체로 누워있었다....
그녀가 숨진 지 2~3일은 되었을 것이라는 경찰의 말.
그녀는 7년 전부터 폐결핵을 앓고 있었던 서른 살의 젊은 여자였다.
두 살 때 어머니가 가출한 후 고등학교까지 고아원에서 자랐고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해 술집 종업원 등으로 전국을 떠돌아 다녔던 그녀는 돈이 없어 술집에서 일할 당시 주인에게서 선수금을 빚졌고 그 선수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피해 다니다 고소당하고 재판에 출석하지 못해 9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되었다. 그런데 그녀는 벌금도 내지 못했고 주거지 등록도 하지 않아 2003년 전주에서 그녀의 주민등록은 말소되었다. 여자의 법적인 기록은 그곳에서 멈췄다.
사람들이 함께 살기 위해 암묵적 동의를 한 법은 소외된 사람들에게는 단지 법은 '법'일 뿐이었던 것이다.
결국 몸이 아파 생활비도 못 벌자 친구 4명이 한 달에 십 만원씩 걷은 돈으로 간신히 생계를 유지해 왔던 그녀는 중병을 앓으면서도 주민등록이 말소돼 국민기초생활보호비도 받지 못하고 변변한 치료도 못 받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녀의 폐 기능은 정지돼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경찰의 진술이 다였다.
서른 살의 젊은 그녀는 그렇게 세상에서 버려지고 잊혀졌다.
이 VOD는 그냥 슬프다...라고 표현하는 것조차도 사치인 것 같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상황을 보았을 때 좀 전까지 내가 읽고 있었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의 저자 로버트 풀검이라면 그녀의 죽음에 대해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혹시라도 그 해답을 구할 일말의 힌트라도 찾을까 싶어 읽던 책을 다시 마구 뒤졌다. 대답을 얻지 못한다면 내가 읽었던 이 책은 그냥 그런 쓰레기 같은 책으로 남을 것이기에.
그런데 저자의 이런 글귀를 찾게 되었다.
저자가 크레타에 도착했을 때
내 책상 위에는 내가 없는 동안 우리 집에서 살았던 독일 학자가 쓴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내가 쓴 책을 읽었고 지금까지도 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글을 읽고 있다.
그녀는 글을 잘 읽었고 이 집도 잘 사용했다고 고맙다고 말한 다음, 어려운 질문을 했다.
왜 내가 이 시대의 정치적 쟁점에 대해, 특히 현재 미국 행정부의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왜 우리 시대의 인도주의적 쟁점에 대해 말하지 않는가?
왜 미국인으로서 나를 대신에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악에 분노하지 않는가?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것에, 그리고 신이 우리 편에 있다는 것에 동의하는가?
유대 이스라엘이라는 근본주의적 입장을 어떻게 지지할 수 있는가?
미국의 길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는가?
미국이 지금 세계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알고 있는가?
얼마나 많은 증오와 경멸을 느끼는지 아는가?
왜 이런 중대한 문제에서 침묵하는가?
왜 작업실로 달려가 뭔가 하지 않는가?
저자의 대답은 이랬다.
이것은 리그와 영역의 문제다.
내 마음은 내가 사는 곳, 일상적인 것, 평범한 것 속에서 일을 한다.
여기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 내가 자신 있어 하는 분야이다.
나는 단순하고 평범한 말을 쓰며 낙관적이다.
나는 내가 가진 연장으로 내가 사는 장소를 최대한 돌보고 있다.
물론 악과 추함은 존재한다.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아주 많이 존재한다.
비관할 이유는 많다. 이 세상에 부당함이 있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화가 나고 실망스럽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죽는다. 기후는 변한다. 빙하는 줄어든다. 삶은 상상하지 못하는 형태로 진화한다.
그리고 결국 지구는 태양 속으로 떨어질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삶은 계속된다.
그동안.... 나는 지금 존재하는 좋은 것과 사랑스러운 것에 놀란다.
대부분은 찾으면 거기에 있다.
나는 마음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둘러싼 평범한 세계의 새 소식에 깨어 있으려고 하는 사람이다.
나는 말한다. "좋은 것을 놓치지 마라.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줘라." 내가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내 입장을 밝히는 것뿐이다.
세상과 우주는 자기 갈 길을 간다.
그동안...... 나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동안...... 나는 그것을 한다.
죽음으로 간 그녀는 자신의 절박한 비극적인 삶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세상의 낙오자요 바보요라고 한탄만 했을까?
어쩌면 그녀에겐 그것들조차 그 생각들이 사치였는지도 모른다.
오로지 살고 싶은 몸부림과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죽기 전까지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까지도 그녀는 그녀의 친구들에게 조차도 연락하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그녀는 외로웠을 것이다.
그녀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을까?
로버트 풀검.
저자는 아마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그녀가 피고가 아닌 세상의 피고에게.
"피고는 다음 질문에 답하시오.
도대체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습니까?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입니까?"
라고.
그녀의 죽음에 대한 사연을 알기 전 이 책은 달콤하고 톡톡 튀는 어린애 사탕 같은 재밌는 책이었다. 여든 네 편의 소소한 생활 속에서 자잘한 생각거리를 삶의 통찰까지 가볍게 건드려주는 그리고 우주와 지구의 신비로움까지 느껴지는 그렇지만 심각하지 않은 그런 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난 이 말들을 책에 끄적거리고 있었다. 내 나름대로의 정의로 나눔의 미학에 대해서.
'내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내 마음을 나누려 했기 때문에 친해졌을 것이고, 내가 내 마음을 닫고 내 마음을 나누려하지 않는 순간 나는 사람들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 보고 난 후의 『지구에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87가지 방법』 이 책은 마냥 사치스런 웃음으로 책장을 넘기기보다 삶의 뒷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통찰력을 준 생각의 꼬리를 물게 한 그런 책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독특한 시선은 삶의 무거운 우울을 톡톡 튀는 물방울처럼 가볍게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을 바꾸게 하는 희한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삶에 대해 다른 시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능력을 남겨준다.
그녀가 작가의 웃음의 미학을 만났더라면....
자신의 아픔마저도 애정 어린 마음으로 들여다봤을지도 모를 텐데...그래서 누구보다도 더 뜨겁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로버트 풀검은 이런 말을 했다.
삶은 옷의 파티다. 우리의 진짜 모습에는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그 사람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처럼 옷을 입을 권리도 있다라고.
그녀의 삶의 권리. 그녀는 찾지 못했다.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그녀의 명복을 빌 뿐이고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면 작가처럼 '자네가 여기에 있다면 좋을 텐데.'라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이라는 작은 배를 여러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데로 데리고 가는 나만의 방식이다.
여러분들, 모두 안녕하시지요?"
나야말로 주변인들에게 인사하고 싶다.
"여러분, 잘 지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