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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어홀릭 Diary - 구두와 사랑에 빠지다
김지영 지음 / 청어람장서가(장서가) / 2009년 4월
평점 :
루이 14세, 이멜다 마르코스, 콘돌리자 라이스. 이들의 공통점은 '슈어홀릭(shoeaholic·구두 중독자)'이라는 점이다. 루이 14세 초상화를 봐도 흰 스타킹에 빨강 리본이 달린 크림색 하이힐을 신었을 만큼 화려한 신발에 강한 애착을 보였고, 필리핀의 이멜다 여사는 구두만 3000켤레를 모은 수집광으로 대통령이 권좌에서 물러난 후 이멜다는 발의 쾌락을 민생(民生)보다 더 중요시한 죄로 기소되기도 했었다. '구두를 모으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외쳐온 그녀는 2001년 자신의 구두를 모아 구두박물관을 개관했을 만큼 그의 슈어홀릭은 장안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었다. 또한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도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해 때 뉴욕 페라가모 매장에서 구두 쇼핑을 한 사실이 알려져 큰 곤욕을 치렀던 슈어홀릭이었다.
국내에서는 본격적으로 슈어홀릭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작년부터라고 할 수 있는데 얼마 전 국내에서도 신발에 대한 사랑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슈어홀릭이 점점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던 만큼 백화점에선 구두가 패션 매장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구두는 패션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그만큼 한국판 '디자이너 슈즈'가 요즘 전성기를 맞아 최근 구두를 주제로 한 이탈리아 신발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회와 스와로브스키의 구두 전시회에서의 크리스털로 '화장'한 신발을 선보여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슈어홀릭이 국내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뉴욕을 배경으로 30대 싱글 여성의 삶을 솔직하게 그려내 큰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울적할 때마다 구두를 사고, 집세 낼 돈은 없어도 마음에 드는 구두는 손에 넣고 마는 400~500달러(40만∼50만원)짜리 지미추, 마놀로블라닉 등 고가(高價) 구두를 수시로 구입하는 전형적인 슈어홀릭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자유분방한 캐릭터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면서 국내에서도 슈어홀릭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고 청바지가 유행하면서 신발이 '튀는 패션'을 만드는 주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와 같이 근무하는 동료 중 한 명도 슈어홀릭인데 처음에는 슈어홀릭인줄 모르고 혹시 정신병적인 집착증세가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그 친구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구두 인터넷 쇼핑만 했었고 집에서도 그녀의 신발은 방안에 고이 모셔놓고 있고 걸을 때도 다른 것 보다 신발에 유독 신경 쓰며 행여 스크래치가 날까봐 늘 노심초사했었다. 입고 다니는 옷은 허접스러워도 신고 있는 신발은 기가 막히게도 예쁘기도 하고 신기한 신발이 많아서 그녀가 출근하고 나면 회사사람들은 어떤 신발과 양말을 신고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버릇이 생길 정도였으니 그녀의 신발집착 증세는 결국은 구두디자이너를 하고 싶다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학원을 다니게 되는 결론을 내버렸다.
『슈어홀릭 다이어리』를 읽다보니 그녀도 생각났지만 무심히 생각했던 슈어홀릭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검색을 해 봤더니 생각보다 많은 슈어홀릭들이 많아 어떤 슈어홀릭은 자동차 한 대 값이 될 정도로 구두를 사 모았고 어떤 여성은 운동화를 포함해 천여켤레의 구두를 갖고 있는 등 각양각색의 슈어홀릭을 만날 수 있었다.
국내에도 최근 들어 슈어홀릭 열풍을 반영하듯 수제 구두숍과 해외 유명 제화 매장이 점점 더 늘고 있다고 한다.
이젠 예전처럼 구두라는 것이 단지 신기위한 것으로의 용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신기보다 소장하고 싶어서 사가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은 격세지감을 느끼겠지만 슈어홀릭들의 구두를 그냥 놓고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아찔하게 높은 구두를 신으면 당당함과 우월감까지 생겨 희열이 극에 달할 때도 있다는 데 거기다 점원이 무릎을 꿇고 구두를 신겨줄 때마다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하는 그들의 심리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문학이나 영화에서 구두는 욕망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하여 동화 빨간 구두에서는 주인공 카렌이 빨간 구두에 유난히 집착하여 멈추지 않고 춤추다가 발목이 잘리고 마는 비극을 맞게 되고, 영화 '분홍신'의 여주인공 또한 비극적인 상황을 맞닥뜨린다. 결국 아름다운 신발에 현혹돼 욕망을 이기지 못해 불행을 겪는다는 내용들인데 심리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구두는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억눌린 억압을 신발로 표출시키기도 하고 신데렐라처럼 운명을 바꾼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어 성적인 욕망, 허영심 등을 만족시키기 위해 구두가 페르소나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같은 옷도 달라 보이게 만드는 구두의 힘을 아는 사람, 구두가 가장 쉽게 기분을 전환시켜주는 마법의 주문이 되어준다는 것을 아는 사람, 새로운 시작과 그 출발의 발걸음을 위해 설레는 마음으로 구두를 사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슈어홀릭 다이어리』을 읽는다면 고개가 끄덕거려질 공감대가 많을 것이다.
저자가 정의하는 슈어홀릭은 '구두와 여자의 미묘한 수수께끼 같은 관계를 알고 구두를 사랑하며 수집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살고 싶은 방향으로 멋진 구두를 신고 경쾌한 굽 소리를 울리며 '또각또각' 소리에 맞춰 당당하게 걸어가 자신을 가장 멋지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사람이라면 『슈어홀릭 다이어리』을 읽어볼 만하다. 자신의 욕망에 최대한 솔직하고 충실하게 생각할 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패션에디터인 저자가 알려주는 스타일 노하우로 구체적인 스타일링과 쇼핑 노하우, 구두에 관한 여러 상식들, 구두를 사랑하는 모델, 스타일리스트, 구두 디자이너 등의 인터뷰와 슈어홀릭들의 신발장과, 구두 디자이너의 작업 노트에는 어떤 디자인이 있는지, 화려한 컬렉션 백스테이지 모습은 어떤지 등 흥미로운 이야기 꺼리들이 뒤에 부록처럼 part 3장에 걸쳐 수록되어 있고 매 시즌마다 쇼핑을 하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아이템만으로도 충분히 스타일리시해 질 수 있는 비결, 슈즈에 어울리는 타이츠, 체형별 구두 선택법 등 스타일 노하우와 구두에 관한 상식들 등 소중한 정보들이 가득 담겨져 있다.
단 킬힐(구두 굽 높이가 10cm가 넘는 하이힐)로 인해 여성들의 S라인은 더 강조되어 보기는 좋지만 척추후만증과 족지관절염이 따르는 신체의 불상사는 책임지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