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곰 꼬리가 보이는 그림책 7
이기훈 글.그림 / 리잼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땅은 아름드리 이야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조금 딱딱한 정식 명칭으로 말하자면 '단군신화'이다. 단군신화에는 우리가 익히 알듯 곰이 등장한다. 어둠 속에서 백 일 동안 쑥과 마늘로 견디며 마침내 사람, 즉 웅녀가 되었던 곰은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어머니이자 은근과 끈기의 표상으로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상상의 미래를 그린 동화 <양철곰>을 두고 단군신화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다소 뜬금없이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책 속의 양철곰과 신화 속의 웅녀는 '오랫동안 참아내며 새로운 세상을 열었다'는 점에서 참 많이 닮았다. 더불어 그림의 배경도 낯설고 기이한 먼 나라 풍경이 아니라 달동네와 판자촌 철거를 연상시키는 우리네 풍경을 담고 있기에 양철곰은 그 옛날 그 곰의 마음을 더욱 연상시킨다. 지금은 4천년 전과 같은 '시작'은 아니지만 나날이 병들고 무너져가는 상황 속에서 또 다른 시작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들에게 양철곰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양철곰은 비록 차갑고 무감각한 쇠붙이로 만들어졌지만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작은 마을을 지키려는 뜨거운 마음의 소유자이다. 날카로운 톱날 기계와 포크레인, 성난 사람들이 밀려와도 그저 묵묵히 버텨내기만 한다. 작은 마을이 양철곰에게 그토록 중요한 까닭은 이곳이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녹색 지대이자 순박하고 선량한 이웃들과 함께 사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새들이 서둘러 양철곰의 몸 속에 열매 같은 것을 숨기는 걸 보니 아주 긴박한 상황인가보다. 점점 침식당하는 자연인 듯, 고갈되는 자원인 듯, 먼 발치에 보이는 작은 녹색 동그라미가 안타깝기만 하다.

 

 

 

사람들이 떠나간다. 이 땅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모두 다 써버리고, 더 이상은 얻을 게 없는 황폐한 땅이라고 그렇게 버리고 떠나간다. 살만한 새 별을 찾아 떠나는 발 빠른 사람들은 자기 마을의 양철말에게 기차를 메우고 서둘러 우주정거장을 날아오른다. 힘차게 하늘 위로 솟는 양철말들은 욕심을 채우는데 빠르고 강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상 이들의 모습은 우리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우리들 중 누구라고 황폐해진 지구에서 더 살고 싶을 것인가! 그리고 황폐해질 앞날을 위해 최첨단 과학이 새 별을 찾아주리라 기대하는 것도 바로 우리들이 아니던가! 강하고 빠른 사람들은 떠나가고 약하고 순진한 사람들은 황폐한 이 땅에 남겨질 수 밖에 없는 비정한 세상.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들에게서 시작될 것이다. 그런데, 양철곰은...이 긴박한 순간에 웬 목욕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양철곰은 참으로 정성스레 목욕을 한다. 강물을 바가지에 담아 제 몸에 붓고 강가에 앉아 기다리고, 또 붓고 기다리고, 그렇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서 머리에 눈이 하얗게 쌓여도, 양철곰은 이 이상한 목욕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찾아와 황금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년은 분명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 다 함께 황금별에 가자. 거기 가면 너도 반짝이는 황금곰이 될 수 있어. 그러면 낡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거야." 판자촌 지붕처럼 낡아빠진 양철곰에게 멋진 황금곰은 커다란 유혹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소년은 양철곰을 유혹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친구로서, 희망을 불어 넣어주려 했을 뿐. 어린 소년에겐 새롭고 멋진 것이 행복한 것이었고, 강하고 오래 가는 것이 영원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양철곰이 생각하는 행복과 영원은 황금 속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말없이 빙그레 웃음짓는 양철곰의 얼굴에서 인자한 현자(賢者)의 모습이 떠오른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양철곰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길, 그리고 외침. 양철은 쇠붙이라 물을 부으면 안 되는데, 양철곰은 왜 이리 고집스레 목욕을 하는 것일까? <양철곰>은 글자 없는 그림책이라 읽는 이가 하고픈 말을 한껏 담아 읽어 내릴 수 있다. 대체적으로 글자 없는 그림책들은 상상력을 북돋우도록 신비스럽거나 잔잔한 그림들이 많은 편인데, 이 책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상상력 보다는 그림에 자신의 감정을 실어 하고픈 말을 한껏 하고 양철곰이며 소년, 마을 사람들의 입장을 공감하며 느낌을 표현해 보기에 좋은 책이다. 그리고 그러기에 충분할 만큼 소년의 표정은 생생하며 곰의 몸짓도 묵묵하지만 깊이가 있다.

 

 

끝내 목욕을 멈추지 않았던 양철곰이 드디어 최후를 맞는다. '이 낡고, 힘없고, 미련하고, 느려터진 곰아! 그러나, 그러나, 끝까지 우리들을 지키려 했던 용감하고 사랑스런 나의 곰아! 제발, 이렇게 죽으면 안돼!' 소년이 목놓아 외쳤을 말들이 소리 없이 내 마음을 크게 두드린다. 무너져버린 양철곰에 꼭 붙어서 소년이 가슴으로 끌어안은 것은 희망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다 봤을 양철곰의 창문 같은 눈이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는 소통의 창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양철곰은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한다. 황금의 별은 커녕 눈 앞의 소년도 볼 수가 없다.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 것만 같다.

 

 

소년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듯 비가 내린다. 아니, 여기서 이 비를 슬픔의 비로 읽고 싶지 않다. 이것은 양철곰이 남기고 간 선물을 빨리 확인하라고 재촉하는 기쁨의 비, 환희의 비다. 빗방울에 정신을 차린 소년이 눈을 떴을 때, 양철곰의 선물인 새싹들이 생명의 고개를 바짝 세운다. 이제 이 황폐한 땅에 초록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제서야 비로서 우리는 양철곰의 고집스런 목욕의 비밀을 알게 된다.

 

양철곰은 제 몸을 희생하면서까지 자연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정작 양철곰 자신은 그가 품었던 초록 새싹 한 잎도 다시 볼 수 없었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주는 사랑...이 사랑에 대한 보상인 듯 자연은 양철곰을 생명이 가득한 숲의 시작으로 삼았다. 단군신화의 웅녀처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이가 된 것이다. 생명 없이 반짝이기만 하는 황금곰보다 더 행복하고 아름다운 초록곰이 된 것이다. 한낱 양철덩어리 기계에 불과한 양철곰에게 펄떡이는 심장을 가진 인간들이 배울 것이 더 많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사람들 중 하나가 양철곰처럼 큰 사랑을 가지고 세상을 위해 오래 참으며 희생하길 바라지 않는다. 그보다는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사랑의 마음을 넓혀 누군가의 오랜 견딤을 나눠 하길 바랄 뿐이다. 우리 모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그루의 나무로 다시 살자.


* 상기 이미지들은 리뷰를 위해 재조합되었으므로 본 도서의 이미지와는 크기와 순서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3-01-01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왜이리 슬픈거죠? 무엇이진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거꾸로 가는 나라의 현실과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더딘 세상 때문인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분홍신님. 건강하시구요. 자주 들려서 더욱 많이 배우도록 할게요.

탄하 2013-01-01 11:52   좋아요 0 | URL
트란님 댓글 보니까 더 슬퍼요.
멀리서도 이 나라를 애틋하게 생각해 주시는데 어찌 이렇게 흘러가는지..ㅠ.ㅠ

허걱, 제게 배울건 별거 없을텐데..그래도 새해엔 더 자주뵙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나머지 얘기는 건너가서~!
 
미의 기원 - 다윈의 딜레마
요제프 H. 라이히홀프 지음, 박종대 옮김 / 플래닛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수컷 공작이 부채같은 꼬리깃을 한껏 펼치고 녹색 바탕에 군청색과 하늘색, 갈색 그리고 옅은 연둣빛이 어우러진 신비스런 무늬를 자랑할 때 우리는 탄성을 지르고 옆 사람의 어깨를 치며 즐거워한다. 모든 자연이 그러하듯 공작의 꼬리깃은 너무도 아름답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윈만큼은 이 꼬리깃을 바라보는 눈길이 석연치 않다. 몸을 가릴 만큼 크지만 위장술의 기능도 못하는 것이 비행할 때 사용하는 것도 아니면서 달릴 땐 오히려 버겁기까지 하니, 도대체 수컷 공작은 이런 무용지물의 사치품을 가지고도 어떻게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남았단 말인가! 이는 그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자연선택설'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이론의 완성도에도 흠집을 내는 골치덩어리 난제였다. 수컷 사슴의 뿔처럼 우아하고 버겁더라도 싸움에 도움이 된다면야 눈감아 줄 만 하지만 공작의 꼬리깃은 도대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다윈은 고심 끝에 '성선택'이라는 이론을 내놓았다. 비록 생존에 불리한 형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형질이 번식에 유리할 경우 살아남고 개체수도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성선택은 자연선택과 하나의 체제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후대 생물학자들(예를 들면 '사회선택'을 주장하는 메리 웨스트에버하드)이 있어 딜레마에 빠진 다윈을 위로해주기도 하지만 정작 다윈 자신은 딜레마를 끌어안은 채 두 이론을 별개의 체제로 보았다. 아마도 다윈에게 있어 성선택은 자연선택을 보완해 주는데 여전히 불충분한 이론이었나 보다.

 

이후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부단한 연구와 논쟁을 거듭해왔다. 런어웨이 가설, 유전자모델, 그리고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핸디캡 이론' 등이 이에 해당되며 <미의 기원> 역시 같은 맥을 이어가는 성과물이다. 저자는 다윈이 한참 동안 바라다봤을 공작의 무리들을 보다 면밀히 관찰하며 쓸모없이 아름답기만 한 것들의 존재의 이유를 파헤쳐간다. 그리고 공작을 필두로 암컷과 수컷의 깃털이 모두 수수한 조류, 암컷은 수수하지만 수컷은 화려한 조류, 소리가 아름다운 조류, 뿔 달린 사슴, 춤추는 초파리 등 다양한 동물들의 구애 및 양육, 생활 습성을 대조하고 먹이, 열량소비, 배설물, 털갈이, 깃털의 성분까지 분석하면서 현대 과학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결과 수컷 공작의 아름다운 꼬리깃은 그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으며 수컷의 대사작용에도 꼭 필요한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이 밝여졌다. 또한 공작들은 밀림의 주변부에 서식하기에 맹수들을 만날 기회가 극히 드물며, 혹여 만난다 해도 그들에겐 힘센 발톱이 있고, 버거운 꼬리는 여차하면 도마뱀처럼 떼어낼 수 있다. 그러므로 공작이 자연선택에 의해 생태계의 적자(適者)로 살아있음은 그리 특이한 예외가 아니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연구와 주장은 핸디캡을 가지고도 살아남았기에 능력과 건강이 증명된 우월한 개체라는 핸디캡 이론보다 훨씬 더 정교하며 타당한 설명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비록 공작을 비롯, 동물세계의 아름다움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인간세계에 동일하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아름다움, 그리고 인간이 느끼는 아름다움은 여타 동물들과는 분명 다르다. 비록 인간과 가장 유사한 눈(시각)을 가진 것이 조류라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상대방의 근육 형태나 피부의 윤기, 얼굴의 좌우 대칭에 전적으로 연연하지 않으며 누군가가 홀딱 반한 이성이 내게도 같은 마력을 발휘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랑에 빠져들 때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우리는 매우 주관적인 관점으로 외모에 매혹되고, 동시에 외모 이외의 다른 요소가 작용함을 알 수 있다. 또한 아름다움과 직결된 성관계에 있어서도 동물들처럼 번식만이 유일한 목적이 아니다. 만일 건강한 배우자를 골라 적자(適者)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하다면 생리적인 효율을 위해 필요할 때만 성욕이 생기도록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영장류의 연구를 통해 설명해 낸다.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보면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수단만이 아니라 암수간의 화목과 친밀감 유지를 위해 활용되며 이것이 집단의 단결과 안정에 기여한다. 즉, 짝짓기의 계절처럼 특정 시기가 정해져 있지 않은 인간의 성욕은 자손의 번식 외에 남녀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유대관계를 돈독히 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미(美)는 예술에서의 그것을 제외한다 해도 다른 영장류를 포함한 동물들 이상으로 복잡하며, 이 복잡성은 놀랍게도 '환경에의 적응'으로부터가 아니라 '환경에서의 독립'으로부터 획득된다.

 

여기서 저자는 진화론을 생명체가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는 동시에 환경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립적인 발전을 추구하는 능동적인 개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美)는 환경에 적응할 '필요'와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사이의 '여지'에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도중에 생성되며,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그 귀한 것도 이렇게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힘과 자유의 바탕에서 성립된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에게는 환경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이 중에서 인간이 가진 몫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인간은 커다란 자유를 활용해 복잡하고 다양한 형질들을 꾸준히 생성해 간다. 사실 우리가 외모에서 추구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은 실상 '중간치(호감과 익숙함을 느끼는 비례의 범위)'에 어느 정도 가까우냐에 불과할 뿐, 수많은 형질들을 대표하는 미(美)의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다. 만일 진화상에서의 미(美)도 이렇게 하나의 이상적인 형질을 향해 수렴된다면 인간은 유전적 다양성이 제한되고, 면역 체계의 효력이 약화되어 파멸하고 말 것이다. 이처럼 자연인으로서의 미(美)가 치열한 생존의 부산물이지 결코 우열을 가리는 기준이 아니라는 사실은 오늘날처럼 극도로 외모에 집착하는 현실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작에서부터 시작하여 인간에 이르기까지 미(美)가 존재하는 이유를 밝힌 <미의 기원>은 자연선택과 성선택 간의 모순점을 해결해 주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을 자유와 변화라는 능동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도 제안했다. 또한 동물들에 대한 방대하고 치밀한 연구분석과 그것을 너머서는 의미의 해석 역시 사려깊고 탁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들의 개성이라는 것이 단일한 미적 기준에서 이탈하여 건강히 살아남고자 하는 생명의 자유이자 의지라는 사실이 무척이나 감동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 약육강식이나 환경적응과 같은 단어만을 떠올렸다면 이제는 자유, 독립, 개성과 같은 단어들을 떠올려 보자. 환경과의 공백을 두고 그 공백 속에서 자유를 추구하며 다양한 개성을 만들어가는 세상. 이것은 지금까지 진화론을 통해 그려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의 밑그림이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들의 유전자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을 경쟁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며 생명의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으므로,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철새에서 텃새로, 숲속 동물에서 도시 동물로 변화하며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미(美)를 탄생시킬 것이므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12-11-30 1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제가 좋아할 그런 책이네요!!!
일단 보관함에,,,저 아직도 레미제라블 읽고 있거든요,,ㅠㅠ

탄하 2012-11-30 20:34   좋아요 0 | URL
후후, 나비님(아니, 나비점장님^^)은 관심분야가 참 다양하셔서 좋아요.
대체적으로 과학분야는 별로 관심갖는 분이 드문 편인데...
이 책, 정말 괜찮더라구요. 첨엔 왜 이런 분석까지하나, 짜증내다가ㅡ.ㅡ;
중반 이후에 완전 감동했죠.

이번에 나온 레미제라블은 6권짜리던가..그렇더군요.
저는 아주 오래전 2권짜리로 봤는데, 그럼 원본으로 본 게 아닌가봐요.
에..고민되네요. 원본으로 다시 볼만큼 명작이잖아요..ㅠ.ㅠ
 

한동안 꽤 뜸했다.
<미의 기원>을 다 읽으면 다른 책들도 내리 읽고 한꺼번에 글 쓴다고 벼르다가 그만 감기에 걸리고 만 것이다.

 

감기를 앓은지가 얼마나 됐더라?
보통 감기는 빠르면 1년 반, 대체적으로 2년 주기로 한번쯤 걸리는데
이번에는 3년 전 신종플루를 앓고 난 이후 처음이다.
(흑, 아직도 생생하다. 온 몸이 뻣뻣해지고 고열이 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식구들과 격리돼 내 방에서 작은 상을 펴 놓고 혼자 밥먹었던 기억.
것두, 크리스마스에...ㅠ.ㅠ)


감기가 온다 싶을 땐 냉큼 오렌지 쥬스를 한 병을 마신다.
물론, 여기서 한 병이란 200ml가 아니고 1.5리터다.ㅡ.ㅡ;
예전에 이렇게 해서 감기를 초기에 잡은 이후 무슨 비법처럼 꼭 이렇게 한다.
헌데 이번에는 별로 소용도 없고, 결국 닷새동안 매일 1병, 총 5병을 마신 기록만 남겼다.

 

 

 

 

 

 

 

 

 

 

 

 

 

 

이번엔 5권의 책 이야기를 하자.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미의 기원>이다. 처음에는 새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등장해 이 이야기가 대체 어디까지 갈까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후반부의 '미의 해석'이후부터는 점점 내용이 흥미로워지더니 마지막에는 개체의 존엄성,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변형의 의미까지 이어지면서 과학적 분석을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해 매우 훌륭한 마무리를 보여주었다. 그 다음에 읽은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해외 입양아의 이야기를 한 치의 진부함도 없이, '심연'과 '날개'로 풀어나갔다. 다만 읽는 내내 인칭의 변화가 좀 불편했는데, 이건 1인칭의 '나'가 교체됨으로 인한 혼동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가 너무 명확해서, 너무 환해서 그랬다. 좀 더 은근하거나 모호하거나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변화가 있었다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듯하다. 그리고 요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도 이전작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었으므로 후속이 궁금해 펼쳤는데, '위로와 격려'를 표방하는 책들이 넘쳐나는 것이 문제지 딱히 이 책이 별로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누구의 책이든 인생의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은 결과적으로 마찬가지 아닐까? 다 각자에게 맞는 조언이 있고, 실천과 어떻게 이어지는가의 문제이지 조언 자체가 반드시 문제를 해결해주는 절대 정답은 아닐 것이다.

 

감기가 들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을 읽었다. 특히 이 중에서 <고독을 읽어버린 시간>은 감기가 가장 극성을 부릴 때 읽은 책인데, 곧 죽어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 아니라 침대에 누워 할 수 있는 것이 책 읽는 것 밖에 없어 그랬다. 그런데 이 두 권의 책 모두 (주제는 다르지만)느낌이 비슷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이야기인데 학문적으로 분석했다고 해야하나? 도덕이 마비된 시장경제(<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나 SNS를 포함, 유행과 외형에 몰두하는 신세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모두 현상에 대한 서술과 비판은 있는데 특별한 결론이 없다. 물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읽다가 지루해져서 중간에 덮은 책이라 섣불리 '결론'이란 말하기 곤란하지만 각 편지마다 구체적인 매듭이 없어 보이니 그렇게 느껴진다. 감기약땜에 땀을 뻘뻘 흘리며 몽롱한 상태에서 읽어 그럴 수도 있으니까 일단 나중에 다 읽을 때까지 보류. 하지만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 소개된 내용들은 무척 충격적이었고,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현상을 거대한 이론의 틀 안에서 해석하는 바우만의 지성은 놀라웠다.

 

 

 


 

 

 

 

 

 

 

 

 

 

바우만의 책을 중간에 덮으면서 다른 책을 뒤적여 봤다.
뭘 먼저 읽을까 고민하다가 세 권을 훑어 보았는데, 이런...다 맘에 든다.
정말 뭘 먼저 읽어야할지 본격적으로 고민되네.

 

먼저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은 푸른 하늘 한 조각과 구름을 만드는 내용에서부터 내 맘을 쏙 빼앗아 갔다. 그냥 '하늘은 왜 파랄까?'에 대해 간단히 과학적으로 답해도 다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인데, 이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로 과학을 실제 경험하도록 해주니 매혹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시범 가운데 하나는 교실에서 한 조각의 '파란 하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등을 모두 끄고 칠판 가까운 천장에서 아주 밝은 백열등 하나만 비추도록 한다. 이 빛은 너무 넓게 퍼지지 않도록 잘 차단해야 한다. 그런 다음 이 빛 속에서 담배 몇 개비를 피운다. 담배 연기 입자들은 레일리산란을 일으킬 정도로 미세하며 따라서 파란 빛이 가장 많이 산란되므로 학생들은 파란 연기를 보게 된다. 이어서 나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이하략)...(p.21)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하얀 구름을 만드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어째서 같은 연기가 하얀 구름이 될 수 있는지 설명해 준다.
결국, 푸른하늘과 흰 구름의 과학적 설명은 이 두 실험의 대조로 깔끔하게 정리된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힌트, 입담배와 속담배)

 

장 그르니에가 카뮈에게 권했다는 소설 <고통>은 분량이 길지 않아 빨리 읽어볼까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다보니 몇 군데 문장에서 매료되며 책 고르기에 갈등만 더해준다. 물론, 상을 당하고 아들밖에 남지 않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다른 책은 그동안 참 궁금했던 <너무 다른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정서 유형을 6가지로 나누고 이것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하며, 테스트도 있고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내용도 있다. 게다가 저자가 오랫동안 연구했던 주제이니만큼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 그런데 이 책과 관련해 몇 가지 더 욕심나는 책이 생겼다. 오늘 이 글을 쓰기 전 잠시 새 책들을 둘러봤더니 스티븐 핑커 등 16명의 석학들이 공저한 <마음의 과학>, 인간에 대해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마이클 가자니가의 <뇌로부터의 자유>가 눈에 띄고 만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당연히, 북카트로...


휴, 그나저나 어떤 책 부터 먼저 읽을지 아직까지 고민이다.
아...모르겠다. 오늘 밤에 그냥 손에 잡히는 것이 1순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4권의 책을 연달아 달리고 있다. <굿바이, 카뮈>, <명랑철학>, <사물의 언어>, <미의 기원>이 바로 그들이다.
<굿바이, 카뮈>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올릴 예정이라 패스. <명랑철학>은 좀 급하게 훑어본 책이라 니체의 철학을 명랑과 잘 접목시켰는지 파악하진 못했지만 전반적으로 '인생을 위한 니체의 아홉 가지 키워드' 같은 느낌이었다. <사물의 언어>는 소비주의와 물질만능 시대의 디자인을 되돌아보게 한다. 추천사 중 "...그런데 읽기 쉽지 않은 책이었다. 하도 웃는 바람에 자꾸만 읽던 자리를 놓쳐서."라는 문구가 있는데, 나는 읽던 자리를 놓칠만큼 웃지는 않았지만 능청스런 저자의 유머가 나름대로 즐거웠다.

 

밀라노 디자인 박람회에서 이목을 끈 디자이너들은 표면적으로 봐서는 전혀 디자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물건들을 창조하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쓸모없고 수효가 적으면 가격은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중략)...그들의 작업은, 16세기에 밀라노의 한 공방에 섬세하게 금으로 무늬를 새겨넣고 소용돌이무늬와 곡선들로 정교하게 장식한 갑옷 한 벌을 주문했으나 화가 났을 때 그 갑옷을 입을 계획은 전혀 없었던 용병 대장이라면 잘 이해할 만한 의미에서, 상당히 디자인답다.(p.262)

 

 

뿐만아니라 뛰어난 통찰력을 발휘하는 부분들(더불어 독자를 생각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 매우 흡족하다.

 

이 모든 이야기는 원형들(archetypes)만이 중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원형들의 기능적 속성들은 여전히 유동적이므로, 앞으로도 원형이 만들어질 여지가 있는 여러 다른 물건들의 범주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그렇게 복잡하면서도 흥미로운 형식인 이유는 바로 끊임없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변하고 잡다할 정도로 갖가지 기능들을 추가하기 때문이다.(p.123)


우리 시대의 호사에서는, 점점 더 소비자들에게 돈을 쓰도록 설득하는 디테일들이 중심을 차지한다. 그러나 앞으로는 호사에 대한, 원래 의미에 더 가까운 또 다른 정의가 점점 더 적절한 것으로 판명될지도 모른다. 그 정의에 따르면 호사란 위협적으로 우리를 압도하는 소유물들의 가차 없는 유입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쉴 수 있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p.190)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는 '원형'과 '사치'에 관한 부분이 가장 맘에 들었다. 디자인이 가진 언어, 예술과 디자인 사이의 미묘한 경계, 소비시대의 디자인을 논하는 책은 많지만 이런 부분(원형과 사치)을 상세히 접할 수 있는 책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 계급론>을 종종 인용하고 있어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나머지 자세한 것은 리뷰에서...


마지막으로 <미의 기원>은 현재 1/3쯤 읽은 책이다. 이름도 생소한 각종 새들(오리나 공작같은 친숙한 새들도 있지만)과 사슴류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들의 짝짓기 방식과 몸무게, 깃털의 성분까지 머릿속에 집어넣으려니 아주 죽을 맛이다. 다윈도 몰랐던 진실에 도전한다기에 분석에서 결말부분을 학수고대하는 중이지만 좀처럼 새와 사슴 얘기는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흘깃 보니 책의 절반 이후 드디어 2부, '미의 해석'이 등장한다. 그때까지만 좀 더 참고 읽어보자궁..ㅠ.ㅠ

 

 

 

달리기는 책 읽기에서 뿐만 아니라 책 고르기에서도 진행되었다. 어제와 그제, 양일에 걸쳐 그간 둘러보지 못했던 두 달 반치 신간들을 쭉 살펴봤더니 거의 계주를 마친 느낌. 그러다보니 온갖 책들을 마구 쓸어넣어 정리가(그리고 자제도) 필요할 듯하다.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정말 대단하구나'하는 책이 하나 눈에 띈다. 사진집인데 제목은 <한국의 장터>이다. 사진가는 스물 아홉, 신춘문예에 낙선하면서 사람공부가 부족했다 싶어 장터에 나가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우리나라 각 지방의 장터 찍기만 수십년, 그 사진들을 모아 무려 480페이지에 달하는 한 권의 사진집으로 묶어냈다. 사진 작가중에 발품팔아 작품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있을까만(연출과 스튜디오작업을 위주로 하는 작가 빼고), 이번 경우는 참 특별하고 귀하다. 처음 의도야 어찌됐든 대형마트와 온라인 쇼핑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사람들의 온기를 전해줄 것 같다. 물론,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도 뭍어나겠지만.

 

 

나물 곁에 모여앉으신 할머니들의 표정이 재밌다. 쪼르르 한 줄로 앉아있는 것이 아이들 같기도 하고. 이 사진은 저자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이라 책 속에 실려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은  정말 무슨무슨 대도록보다 훨씬 멋지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ransient-guest 2012-09-19 0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라져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자료는 참 귀한 것 같아요. 이런 모습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릴 때 다니던 시장의 참맛이 마트에 의해 잠식되고, 동네슈퍼도 편의점으로 바뀌어가는 것이 별로라서요.

탄하 2012-09-19 23:06   좋아요 0 | URL
저도 어릴적 엄마 손잡고 갔던 시장이 그리워요. 아직 그 시장이 남아있긴 하지만 좀 더 시장의 활기를 더해주는 생선가게며, 양계장(이건 제가 무서워했던..^^;)이 사라지고, 정육점대신 목우촌이 들어서고, 유기농가게가 생기면서 반쯤 그 모습을 잃었거든요. 혹시 이 사진작가님, 우리동네 시장 사진 안 찍어 주시려나..안되면 저라도 찍어놔야 하나..생각해 봅니다.^^
 
건축가 -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의 작품과 말
루스 펠터슨 엮음, 황의방 옮김 / 까치 / 2012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2월 건축계는 왕슈(王樹)라는 인물의 프리츠커 수상으로 떠들썩했다. 중국 변방출신에 해외활동도 전혀없는 무명 건축가가 49세의 젊은 나이로 이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은 의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연륜있고 지명도 높은 건축가들에게 수여해왔다. 그러나 금번 왕슈(王樹)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수상 당시 페이퍼 아키텍트(건축물의 시공여부에 관계없이 이상적인 설계를 추구하는 건축가들)로 알려진 자하 하디드나 소형 프로젝트를 위주로 작업했던 피터 춤토르의 수상 때와는 또 다른 사건이다. 적어도 이들의 건축은 수상전에도 호평을 받았고 널리 알려졌으며, 특히 하디드의 경우 학계에서 손꼽는 건축가였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단이 왕슈를 선정한 이유는 "지역의 건축적 맥락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띠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야흐로 건축에서도 국제화와 거대건축이라는 이슈가 조금은 잠잠해지는 듯하다.

 

프리츠커상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혼재하던 1979년에 시작되었다. 그래서 초반부에는 모더니즘의 거장들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들이 수상하는 경우가 많았고 연령대도 높은 편이었다. 이후에는 대형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며 도시건축에 심혈을 기울이던 건축가들이 수상하는 추세를 보이면서 건축가들의 국제적 활동력과 하이테크, 초고층빌딩의 위용을 자랑했고, 2000년대에 와서는 수상자들의 개성이 더욱 두드러져 선정 기준이 보다 다양하고 과감해진 것을 엿볼 수 있는데, 렘콜하스처럼 거대건축과 도시담론에 기여한 건축가가 있는가하면 피터 춤토르처럼 장인정신이 돗보이는 소규모 건축과 지역건축에 기여한 건축가도 있고, 금번의 왕슈(王樹)처럼 예상을 뒤엎는 신예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새 수상자들의 평균연령도 훨씬 낮아져서 명예의 전당과도 같아보이던 수상자 명단이 건축계의 현주소를 알려주는 지표와 거의 흡사해졌다. 이 모든 프리츠커상의 역사가 더 궁금해진다면 바로 이 책 <건축가>를 펼쳐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혁신적이고 기여도 높은 건축가를 선정한 상이기에 건축의 역사와도 어느정도 일치하므로 건축의 근·현대사를 꿰뚫어 보는데도 유용하다. 책의 시간은 2010년부터 1979년까지 거꾸로 흐르지만 제1회부터 현재까지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구성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마도 우리에게 친숙한 최신 건축물에서부터 시작해 시각적인 거리감이 없고, 현재에서 과거로 여행하는 듯한 순행의 흐름을 타기 때문인 듯하다.

 

<건축가>에는 1회부터 32회까지의 수상자들을 담아 안타깝게도 올해의 주인공 왕슈의 작품을 볼 수는 없지만 건축으로 한 편의 시를 쓰는 듯 섬세한 감각의 소유자 피터 춤토르와 비범한 조형미로 평범한 입체를 특별하게 만드는 32회 수상자 세지마 가즈요·니시자와 류에 팀(이하 SANAA)의 작품이 매혹적인 공간의 세계로 우리를 초청한다. 스위스 팔스(Vals)의 온천을 설계해 주목받기 시작한 피터 춤토르는 이 건물로 현상학적 신비의 극치를 보여주며 마치 얇은 석재층 하나 하나와 교감하듯 돌의 숨결을 살려내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는 "오래 전부터 거기 있었던 것 같은 건물, 그 지역의 지형과 지질구조에 어울리는 건물, 다시 말해서 압착되고 접히고 또 때로는 수천 장의 판으로 갈라지는 팔스 계곡의 돌덩어리들에 걸맞는 건물을 짓는 것-이것이 우리의 설계목적이었다"(p.24)라고 설명한다. 춤토르는 마치 헛간같이 생긴 작은 아틀리에에서 자신만의 건축세계를 견고히해 나가고 있는데 건축에 관해 '유년시절의 전기傳記)'라고 표현하는 그에게 잘 어울리는 어린시절의 아지트같은 모습이다. SANNA는 기본 도형과 입체를 매우 독특한 감각으로 재해석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평면이나 단면을 살펴보면 순전한 단순성을 너머 정갈하다는 느낌마저 자아내는데, 이러한 단순성은 복잡한 문제들을 논리적으로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내재적인 힘일 것이다. 이런 힘을 SANNA의 말로 표현하면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말하는 투명성이란 "...다양한 관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늘 건물 안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투명성은 또한 명확함을 의미한다. 시각적 명확함뿐만 아니라 개념적 명확함까지 의미한다"(p.15) 춤토르와 SANNA의 수상을 보면 비정형과 하이브리드가 난무하는 건축세계에서 빛과 대지에 충실하는 기본적인 건축언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진면목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왕슈와 SANNA의 수상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과 일본에는 이미 프리츠커상의 수상경력이 있다. 중국의 경우 루브르 광장 한가운데 유리 피라미드를 세운 I.M. 페이가 먼저 수상을 했고, 일본에서도 우리들이 잘 아는 안도 다다오를 비롯 총 4회에 걸쳐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인으로 제일 먼저 이 상을 받은 사람은 단게 겐조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도 1세대 건축가 김수근 정도에 해당되는 일본의 중요한 건축적 스승이기도 하다. 그의 건축물들을 보면 기품있고 힘이 넘친다. "전통은 일단 그 과업이 완수되면 사라져버리는 촉매와 같은 것이다"(p.281)라고 말하는 겐조의 생각처럼 전통을 박차고 새로움에 도전하는 기상이
배어있는 듯하다. 안도 다다오도 겐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물론 그가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무명 건투선수에 불과한 그를 유럽으로 날아가게 했던 르 코르뷔지에지만 일본 건축의 거장인 겐조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는 없을 듯하다. 이러한 사실을 보면 단순히 일본에서 프리츠커상을 4회나 수상했다는 점이 부러운 것이 아니라 겐조-다다오로 이어지는 건축정신의 계승이 세계 건축사에 길이 남았다는 점이 무척 부럽다. 한편 유럽 여행의 대표 명소인 I.M. 페이의 유리 피라미드는 실제 건물의 명칭 대신 'I.M 페이'라는 애칭으로 불릴만큼 프랑스에서 사랑받는 건축물이다. 처음 루브르 한 가운데 이 '망측한' 건물이 들어섰을 때 전통과 접목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도 많았지만 지금은 보면 볼수록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의미심장한 풍경으로 비춰진다. 아마도 이런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안목이 아니었나 싶다. 동양 건축가들의 수상소식을 들으면 의례적으로 꼭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의 건축가들은 언제쯤 수상을 할까'인데, 아직은 낙관하는 편은 아니지만 조민식, 이은영처럼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건축가들이 많아지고 있으니 그날이 꼭 먼 미래만은 아닐 것이다.

 

 

 

<건축가>에서 화려한 화보를 자랑하며 눈에 띄는 건축가라면 '스타 건축가'들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스타 건축가'란 건축계에서도 혁신적이고 뛰어난 활동을 보일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건축가를 의미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의 동대문 디자인플라자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와 프라다(PRADA)매장 설계로 각종 패션 잡지에서도 빈번히 볼 수 있었던 렘 콜하스, 그리고 은빛 구름이 몰아치는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프랭크 게리 등이 있다. 먼저 하디드와 콜하스의 경우 영국의 건축학교 AA School 출신으로 콜하스의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에서 함께 일한 적도 있으며 모두 도시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실험해 온 학구파(?)라고 할 수 있다. 한때 실제로 지어지지도 않을(혹은 못 할) 이상적 건축들을 도면과 모델로만 습작하며 페이퍼 아키텍이라 불리웠던 자하 하디드도, 건축물보다는 기자와 시나리오 작가의 경력을 바탕으로 도시계획에 대한 획기적인 시나리오 <정신착란의 뉴욕>를 저술하며 등장했던 렘 콜하스도, 이제는 세계의 도시건축과 거대도시 담론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며 자신들의 이상건축을 구축해 가는 거장들이 되었다. 아마도 이들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의 도시 풍경에서 비정형적이고 독특한 건축물들이 주는 유쾌함과 만나기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멋진 건물들이 아니라 '건축은 즐길 수 있는 것'(p.91)이어야 한다는 자하 하디드와 '건축은 원래 혼돈의 모험'(p.135)이라는 렘 콜하스의 소신이 담긴 선물이기도 하다.

 

 

 

한편 프랭크 게리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노익장을 과시하는 열정의 화신이다. 지난 24일만해도 그가 페이스북 신사옥을 설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말이다. 해체주의자로 알려지기 시작해 자신만의 독특한 건축 스타일을 확립해 왔던 게리는 건축이라기 보다는 조각에 가까운 작품들로 늘 세상을 놀라게 하곤 했는데, 이는 첨단 컴퓨터 모델링 기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처럼 오늘날의 건축은 컴퓨터 모델링을 통해 다채로운 공간실험과 실물 구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게리는 이들을 대표해 아날로그적인 건축가의 스케치에서 디지털 컴퓨터의 모델링으로, 그리고 다시 현실 속의 건축물로 구현되는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 컴퓨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리는 오히려 "내 그림에서 나는 내가 건축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을 그릴 수 있는 자유를 누린다"(p.247)고 말한다. 

 

 


프리츠커 수상자들 중에는 구조의 미(美)를 한껏 발휘하는 건축가들도 있다.이들의 작품은 주로 초고층 빌딩이나 공항, 경기장처럼 공학적 측면을 요하는 건
물들이 많은 편인데, 대표적인 예로 리처드 로저스와 노먼 포스터(둘은 한 때 파트너이기도 했다)를 들 수 있겠다. 리처드 로저스는 2012년 영국 올림픽의 경기장 중 하나였던 그리니치 경기장(밀레니엄 돔)을 설계한 건축가로 이전부터 퐁피두 센터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퐁피두 센터는 내부로 숨겨지는 건축설비들을 밖으로 노출시켜 '인사이드 아웃 롤(inside-out roll, 캘리포니아 롤을 이르는 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는데, 공학적으로 까다로운 구조는 아니지만 그당시 하이테크라는 사조를 잘 반영하며 기계미학을 대표했다. 노먼 포스터는 매우 능수능란한 고층·초고층 설계자이다. 그의 건물들은 단순한 기하학으로 이뤄져 있지만 구조적 효율성과 조형적 아름다움을 구사하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 뿐만아니라 첨단기술을 도입하면서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건물들이라 겉보기에 차갑고 기계적인 모습과는 또다른 면모가 담겨있다. 예를들어 일명 거킨(gherkin,오이지) 빌딩이라 불리는 봉긋한 원통 모양의 초고층 건물은 주변 건물과 비교해 봤을 때 매우 도도하고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주변 건물들의 일조권을 최대로 배려하기 위한 형태라고 한다. 또한 구조 자체가 자연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키는 대표적인 그린빌딩이기도 하다. 이처럼 초고층빌딩이라고 하여 모두 자연을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특히 포스터처럼 기술을 통해 자연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의지가 있는 건축가가 있는 한 '지속가능한 건축'은 더욱 오늘의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80년대에 이르면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박스형의 건물들이 보인다. 바로 건축의 대량생산과 장식의 배제가 시작되었던 모더니즘의 건물들이다
. 지금 보면 그리 특별한 것 같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건축들이었다. 특히 화장실을 제외한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필립 존슨의 '유리집(Glass House)'는 그 시절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과감한 도전이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건축은 예술이다.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p.363)라는 필립 존슨의 확신이 전혀 근거없는 소리로 들리지는 않는다. 포스트모던 건축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성행하지 않았지만 모던니즘의 세력이 막강했던 서구에서는 그 반향으로 등장한 이 사조에 대해 상당히 논란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80년대 수상자들의 건축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건축을 위한 건축가들의 헌신이 지금까지 부단히도 이어져왔음을 절실하게 느낀다. 이것은 단순히 '발전'이라는 피상적인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 부족한, 뜨거운 몸부림과 논쟁과 실험의 결과물들이다. 그리고 <건축가>는 그 수많은 생각과 제도선들의 자취들을 오롯이 담아낸다.

 

 


이밖에도 <건축가>에는 다 언급하기 힘들정도로 수많은 건축가들이 소개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이밖에도'에 해당하는 건축가들까지 만나보는 것인데, 단지 몇몇 대중적인 건축가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난 30여년간의 건축계를 총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또한 건축가들의 각 작품에는 사진뿐만 아니라 설계 의도와 고민했던 문제점, 그리고 해결책 등이 고스란히 설명되어 있어 건축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기도 한다.

이 책의 부제에도 나타나 있듯 <건축가>가 전달하려 하는 것은 건축가의 '작품과 말'이다. 말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그 건물을 탄생시킨 의도를 가지는
바, 건축가의 말을 듣는 것은 곧 그들의 작품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과 같다. 혹자는 말로 건물을 짓는다하면 관념만 무성한 현학적 작품이라든지 수다스런 설명이 덧붙은 작품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 실린 프리츠커 수상자들의 작품은 그들의 말과 일치한다. 자신의 말과 작품 사이의 간격이 좁을수록, 더 나아가 건축가로서의 신념과 작품과 일치할수록 이 상을 받을만한 위대한 건축가에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어느 신은 말씀으로 엿세만에 세상을 지었다 하지만 인간에 불과한 건축가들은 건물에 말 한 마디를 더하기 위해 몇 날을 고민하고 갈등하며 밤을 지샌다. 하지만 그들이 신보다 더 위대해 보이는 까닭은 그로인해 건축의 물성보다 더 견고한 말을 정제해 내고 그것이 한 건축가로서의 생애를 우뚝 세우며, 무엇보다도 우리들이 속해있는 이 터전을 살기좋은 환경으로 굳건히 지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dreamout 2012-09-0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프서점에서 한참을 보고 아주 맘에 들어서 온라인 상에 담아놨는데, 정작 주문하려고 하니.. 그동안 사서 모아 놓은 백과사전식 책들을 내가 얼마나 들춰봤는가가 떠오르면서 망설이게 되었어요.
일단 사서 쌓아놓기라고 해야겠네요. ㅋ

탄하 2012-09-09 22:06   좋아요 0 | URL
망설이시던 책에 제가 지름신을 불러 모신게 아닌가 싶네요.
건축을 전공하신 분이 아니라면 가격에서 주춤하지만 추천할만 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한글판, 영문판의 내용과 레이아웃이 조금 다르대요(둘 다 소장하신 분의 말씀).
저도 어느정도까지 다른지 모르겠지만 영문판과의 가격차가 크지 않아서
비교해 보고 더 맘에 드시는 것을 고르셔도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