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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사라지지 마 - 노모, 그 2년의 기록
한설희 지음 / 북노마드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요즘 들어 엄마의 외가댁 행이 더 잦아지셨다. 올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리니 좀 띄엄띄엄 가시라고 하고 싶지만 그러시는 이유를 너무도 잘 알기에 선뜻 입을 열어 말하지 못한다. 엄마가 외가댁에 자주 가시는 까닭은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외침이 엄마의 가슴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걸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당신이 아닌 외손녀로서는 절절히 와 닿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아직 젊은 할머니고, 예전과 다름이 건강하셔서 '엄마가 사라진다'는 사실은 나로부터 저만치 멀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책 속의 사진들을 찬찬히 넘기다 보니 외할머니에 대한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다. '섬'이라고 부르는 고요한 집에서 홀로 식사하시고, 앉아 계시고, 잠들어 계신 누군가의 엄마를 통해 엄마가 바라보는 외할머니의 모습, 언젠가 내가 만나게 될 엄마의 모습을 좀 더 구체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이것이 세상의 모든 자식들에게 <엄마, 사라지지 마>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기도 하며 내게 있어서도 효력있는 선물로 다가왔다. 비록 한 권의 책으로 엄마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 마음을 향해 좀 더 다가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이제 엄마와 나는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알고 있다.(p.125)
무언가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따른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얇은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볼 때, 혹은 굳게 닫힌 철문을 사이에 두고 보이지 않는 상대방 쪽으로 바라볼 때, 각각 의미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만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본다면 그것은 친밀함을 전제로 한다. 성능 좋은 줌 카메라로 먼 곳의 상대방을 가까이 불러오지 않는 이상, 투철한 기자정신을 발휘해 현장 가까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는 이상,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갈 때는 다가간 거리만큼 친밀한 사이인 것이다. 하지만 이내 이어지는 '카메라를 들고 누군가에게 가까이 가는 일은 서로의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는 일'이라는 문장에서 흠칫 놀란다. 엄마의 사진을, 그것도 클로즈업으로 가까이 찍을 정도라면 애초부터 매우 돈독한 모녀지간일 거라 생각했는데 이 두 사람에게도 용서와 화해의 과정이 필요했음을 알게 된 탓이다. 그래서 페이지를 되돌려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엄마 사랑만 간절한 이상적인 딸이 아니라 상처와 결핍에 다가서려 노력했던 평범하고도 성숙한 딸의 마음으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닫는다. 엄마의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저 남길만한 장면을 찾아내는 눈의 일이 아님을, 그것은 엄마의 상처와 허물마저 감싸 안는 마음의 일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름다운 사진만을 간직하고 있다. 좋은 데 여행 갔을 때, 생일, 졸업, 크리스마스와 같은 아름답고 특별한 날들이 우리가 사진기를 드는 대표적인 순간들이므로. 요즘 들어 일상을 사진에 담는 일이 빈번해졌다 해도 그런 스냅사진 마저 우울하거나 슬픈 모습을 담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사진 속의 엄마들은(그리고 아빠들도) 일명 ‘코닥 모멘트’라는 의무적인 웃음과 함께 늘 행복한 표정만을 짓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엄마 모습도, 엄마 모습의 전부도 아님을 우리는 잘 안다. 소파에서 잠든 모습, 걸레질하는 모습, 면봉으로 귀 파는 모습까지 사소하고 추레한 모든 장면들이 모여 엄마의 모습 안에 있다. 이 책에는 그러한 엄마의 모습들이, 비록 주름지고, 무료하고, 연약한 모습들이 끼어들지라도 진정한 엄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어머니께서 간혹 예쁜 척 하시기도 했다지만). 이런 사진 속의 엄마에는, 비록 작가에겐 나만의 엄마이겠지만 동시에 누구의 엄마도 될 수 있는 공감대가 너그럽게 자리하고 있다. 특히 '병원에 안 가시겠다', '이렇게 앉는 것이 제일 편하다', 고집 부리시는 엄마, 은근히 새 화장품을 사두신 엄마의 이야기에선 누구나 각자의 엄마를 보는 것처럼 슬며시 웃음이 날 것이다.
<엄마, 사라지지 마>에는 엄마의 사진들도 많지만 엄마의 물건들도 종종 볼 수 있다. 누군가를 묘사하고 기억으로 남긴다는 게 오직 그 사람의 모습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므로 주변을 둘러싼 물건들은 마치 엄마의 분신인양 비춰진다. 엄마가 쓰는 서랍, 거울, 물그릇, 텅 빈 방의 이불자락에선 일상의 체취와 동시에 다가올 엄마의 부재가 교차되기도 한다. 나만의 느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물건들이 모두 '남기고 가실 것'이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그것이 모두 추억이 될 것임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엄마의 역사가,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는 엄마의 외로움이 묻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진들은 대체적으로 어두운 톤이거나 흑백의 대비가 눈에 띄는(어둠 속에서 빛이 뚜렷이 느껴지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소멸'이라는 단어가 언뜻 연상되지만 나로서는 '침묵'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고요한 가운데 남은 시간들을 감당해내시는 엄마. 여기에 간혹 흘러 드는 강한 빛 줄기, 혹은 빛의 면적들이 때론 화사하게, 때론 쓸쓸하게 침묵과 화음을 이루는 것 같다. 어쩌면 엄마는 자궁과도 같은 아늑한 침묵 속에서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진으로 담아내는 딸의 사랑을 만끽하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사진 중에서는 추상화처럼 물결치는 엄마의 거친 손등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출렁이는 것이 엄마의 지나 온 세월 같기도 하고, 엄마의 숨겨진 마음 구석 같기도 하고, 하얀 머리 결 같다가도 입가 같다가도...무엇을 상상해도 삶의 흔적을 상상케 하는 결들이 좋다. 나무껍질인 것처럼 보이는 옷(사실은 깔깔이, 혹은 지지미라는 불리는 옷감일 것이다)을 입고 지팡이를 짚으신 사진도 마음 깊이 다가오는 사진이다. 처음엔 보통 할머니들께서 잘 입으시는 울긋불긋하고 때론 촌스러워 보이는 옷감을 나무껍질처럼 포착해 낸 사진가의 썰미가 눈에 띄었던 사진이었는데, 그것이 딸이 사준 지팡이를 짚고 찍은 사진임을 글을 통해 아는 순간, 나무처럼 묵묵히 곁을 지켜주시던 엄마와 지금 엄마를 지켜주는 지팡이 같은 딸이 교차되면서 더 큰 감동을 남겼기 때문이다. 이러한 딸의 사랑을 엄마는 비단이불보다 더 깊숙한 곳에 감추고 계실 것이다. 소중한 것은 더 꽁꽁 숨겨두신다는 저자의 엄마이므로. 아마도 이 사랑은 몰래 감춰두셨다가 영원의 힘이 필요한 시점에서 홀로 꺼내 보실 거라 생각한다. 그분의 딸이 엄마의 사진집을 꺼내보는 그 마음으로.
신을 믿는 사람들은 영원(영생)을 갈망한다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영원 속으로 들어가면 그 긴 시간을 뭘 하며 보낼까, 지루하지는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들이 영원을 꿈꾸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영원에 대한 바램은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나 홀로가 아닌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 바로 이 책의 엄마와 딸처럼 언제나 곁에 있고픈 바램이 영원을 꿈꾸게 하는 것이 아닐까? 비록 신을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들 곁에서 '찰칵'이라고 동의하며 이생에서 이룰 수 있는 영원에 최선을 다해줄 것이다.
* 본 리뷰에 삽입된 사진들은 사진집을 카메라로 다시 찍는 과정에서 빛이 반사되었으므로 톤과 질의 면에서 원본에 미치지 못함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