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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
백희나 글.그림 / Storybowl(스토리보울)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거리에서 바라본 여름밤 아파트의 풍경은 푹푹찌는 더위보다 더 숨통 막히는 광경이다. 더운 공기와 맞닿으면 큰일이라도 날 듯 모두 창문을 꼭꼭 닫은 모습이나 그 안에서 알록달록한 반소매 차림으로 쾌적한 휴식시간을 즐기는 모습은 마치 과일, 야채를 신선하게 유지하기 위해 잘 밀폐해 놓은 유리 냉장고같다. 꼭꼭 닫힌 무관심, 차갑게 냉방된 이기심...결국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며 밖으로 내몬 더운공기는 온전히 어둠속에 홀로 남은 달의 몫이 되버렸다. 그리고 드디어, 불쌍하게도 더위에 지친 달에게 문제가 생긴다. 똑.똑.똑...녹아 내리는 달방울은 마치 달이 흘리는 눈물인 것마냥 슬프다.
앗! 그런데 심상치 않은 달의 상태를 눈치채고 달려온 누군가가 있으니, 바로 늑대 반장 할머니다. 달이 뜨는 밤이면 '아우~~~'하고 한 곡조 뽑으시던 친분때문일까? 가여운 달이 녹아내리는 것을 바라만 보지 않고 얼른 커다란 대야로 감싸 받는다. 여기서 참으로 놀라운 점은 현명함을 발휘하는 주인공이 바로 '늑대'라는 점이다. 사실 늑대는 많은 이야기 속에서 무섭고 흉악한 역할을 맡기에 아이들은 늑대를 나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런저런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순수하게 '달'하면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을 모아 이야기를 구성한데다 할머니의 인자함까지 덧붙여 오히려 늑대를 달과 친한 동물, 달빛 아래 노래하던 동물로 새로이 바라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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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야에 담긴 달 국물은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빛이 난다. 왠지 마법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 그만큼 책 속의 달빛은 독특하게, 진짜 살아있는 달빛처럼 빛나며 이 빛 때문에 이야기는 더욱 신비로워진다. 또한 달국물의 마법을 펼쳐나가는 늑대 할머니의 발상도 어린아이 같이 순진하고 즉흥적이어서 어른들이 발휘하는 창의력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세상에, 달로 샤베트를 만들어 먹고 시원하게 잠이 들다니! 그래서 책 제목이 '달 샤베트'인 거였구나...궁금증이 풀리면서 나도 모르게 그 순진함에 웃음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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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이 녹은 것은 찜통 더위에 시달리는 아파트 주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달을 집으로 삼고 살던 옥토끼들도 이제 갈 곳이 없어져 지구별 늑대 할머니의 집으로 찾아 온 것이다. 똑.똑.똑...토끼들은 늦은 밤 할머니를 다시 깨운다. 그런데, '똑.똑.똑'은 어디서 많이 들은 것 같다. 책 속에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나타나는 '똑.똑.똑'은 처음에 달이 녹아내릴 때도 등장했던 의성어이다. 덕분에 아이는 같은 '똑.똑.똑'이라도 쓰임새가 다름을 알 수 있고, 어렴풋이 우리말의 묘미 또한 느낄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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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야기했듯 이 책에는 달과 관련된 모든 것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꾸려간다. 처음에는 늑대, 그 다음에는 달나라 옥토끼, 그리고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것은 토끼들을 다시 집으로 보내 줄 숨겨진 비법, 달맞이 꽃이다. 달국물을 먹고 쑥쑥 자라는 달맞이 꽃, 달맞이 꽃의 환한 빛으로 쑥쑥 자라는 새 달. 문제는 마법을 부린듯 눈깜짝할 사이에 해결되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놀라운 회복력과 아름다움에 한참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들여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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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샤베트>는 환경에 관한 매우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만 기발하고 신비로운 이야기 속에 교훈들을 은밀히 숨기고 있어 더욱 감동으로 다가온다. 에너지를 아끼는 착한 아이가 등장하지 않아도, 이렇게 해야지 가르쳐주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아도, 녹아 내리는 달이나 집 잃은 토끼, 달 샤베트와 달맞이 꽃의 놀라운 위력에서 아이들은 마음으로 느끼며 환경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어쩌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평온한 가운데 잠든 늑대 할머니를 보면서 오늘 밤은 에어컨을 끄고 자자는 기특한 녀석이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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