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그림책
데보라 언더우드 글, 레나타 리우스카 그림, 홍연미 옮김 / 미세기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조용한 그림책>과 한 쌍이 되어 줄 <시끄러운 그림책>이다. 지난번엔 조용한 순간들을 느껴봤으니, 이번에는 시끄러운 순간들도 느껴봐야 감성에 균형이 잡히겠지? 그래서 <조용한 그림책>만큼이나 숨죽여 찬찬히 들여다 본다. 세상의 어떤 순간이든 놓치지 않고 음미해 보려는 노력으로. 아이들 만큼이나 천진한 감정을 회복해 보려는 욕심으로.

늘상 왁자지껄 쿵쾅거리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그 소란 가운데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의심이 가지만 아이들 본연의 느끼기 실력은 어른들의 상상을 훨씬 능가한다. 비록 '조용히 해!'라는 한 마디에 움찔할지언정 엄마 아빠를 화나게 하는 시끄러움과 그렇지 않은 시끄러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시끄럽다는 것이 단지 큰 소리가 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도 알며, 그것을 둘러싼 상황과 감정이 얼마나 다양한지까지 모두 알고 있다.

개구장이 동물들이 들려 주는 시끄러운 순간들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수 많은 시끄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여기에는 한바탕의 소동을 겪으며 느끼는 이른바 '표준형' 시끄러움이 있고, 이와 대조적으로 주변은 조용해도 마음만 소란해지는 '특수형' 시끄러움도 있다. 그리고 시끄러움 속에는 두려움이나 긴장감, 당황스러움같은 감정이 함께 숨어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조금만 딴 곳으로 눈을 돌리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아이들에겐 '와장창형' 시끄러움이 종종 발생한다. 흥미로운 놀이에 열중하다 보니 주변을 살피지 않아 물건들을 쏟아뜨리는 까닭이다. 반면 오랜만에 맘 잡고 조용히 행동하려는 아이들에겐 '바스락형' 시끄러움이 영 귀찮게 한다. 특히 극장 안에서의 바스락 거림이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시끄러움인가보다.



하지만 시끄러움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시끄러움을 통해 느꼈던 두려움과 짜증과 당혹스러움을 모두 덮어버릴만한 통쾌하고 신나고 아름다운 시끄러움도 있다. 똑같이 시끄러운 것인데 어째서 자동차의 경적 소리와 불꽃놀이의 화약 터지는 소리는 다르게 들릴까? 아이들은 그 까닭을 이 책을 통해 이해하게 될 것이며 시끄러움을 받아들이는 마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시끄러운 그림책>은 늘 조용히 하라는 강요 속에 맘껏 펼치지 못했던 개궂고 즐겁고 때론 아찔한 순간들을 불러내 아이들에게 되돌려주고 마음을 유쾌함과 활력으로 가득 차게 한다. 설사 당혹스럽고 놀라는 순간이 펼쳐진다 해도 아이들은 각자의 경험과 대조해 보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보니 유머가 매우 깜찍하다. 이것은 비록 시끄럽고 짜증나는 상황을 만나더라도 가볍게 웃고 예쁘게 살아가자는 동물 친구들의 아름다운 메시지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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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방랑의 빛깔
                                                  갈증의 빛깔

                                                                           <몽골?>, 김홍희


                                                                      확실한 제목은 아니지만,
                                                       <김홍희의 몽골방랑>에 실린 작품인지도 모르지만,
                                                        한 때 8월의 바탕화면이었던 이 사진을 떠올리며...

                                                               이열치열이었지, 아마...  올해도 그렇게!








<명묵의 건축>
관조 스님의 사진 솜씨가 너무 출중한 탓일까?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모든 건축물들은 그 어떤 책에서 보여지는 자태보다 공간의 공(空)이 증폭되어 있었고, 간(間)은 겸손한 듯 차분하게 켜를 생성한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신비한 힘에 이끌려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나는 넋을 잃는다. 동서고금의 명 건축, 한시, 미술 등을 아우르며 우리 공간에 담긴 우주와 정신세계를 풀어나간 방식도 마음에 들지만 역시 그 알 수 없는 힘의 위력이 더 작용한 것 같다. 결국, 이것이 지난 한 달간 1순위로 벼르고 있던 <진중권의 서양미술사>를 압도하는 사유가 되었다.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한동안 예술계를 떠나 사회, 정치, 그리고 약간의(?) 하이브리드에 주력해 왔던 진중권이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모더니즘 편'이라고 꼬리가 붙은 것을 보니 지난 <서양미술사1>의 후속작임에 틀림이 없겠지. 이전에도 그랬지만 진중권의 미술 저서들의 특징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미술 사조, 관련된 작품과 화가, 미학적 관념의 나열을 뛰어너머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는 자신만의 아이디어(혹은 주제)로 이야기를 흥미롭고 유익하게 이끌어 나간다는데 있다. 제대로 살펴보려면 600~700페이지가 족히 넘어야 할 현대미술사를 이렇게 부담없고도 알차게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분명 행운일 것이다.







<사진을 바꾼 사진들>
'무한한 상상력'과 '독특한 시각'은 사진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그렇기에 사진계의 거장 최건수가 이 범주 안에 선택하고 소개한 사진가들에 대해 시선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비록 얄팍한 호기심이라도 말이다). 이 책은 상상력과 시각이라는 관점에서 탁월했던 작품들을 통해 세상를 뛰어넘는 과감함과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비딱함을 동시에 맛보게 해주리라 기대해 본다.






<사진철학의 풍경들>
사진철학을 '인식, 사유, 표현, 감상, 마음'이라는 풍경들로 나눠 전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한 각각의 풍경에는 다양한 철학, 미학 이론들과 미술 용어들이 속해있지만 그것이 우리에게로 전달되어 오는 방식 역시 풍경을 바라보는 듯 편안해 좋다. 칸트, 벤야민, 수전 손택, 존 버거 등이 사진에 관련된 거장들이 대거 등장하지만 결국 이들의 철학을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진함'에 대해 한번쯤 물어야 할 성찰의 자세이기 때문에 사진을 사랑하고, 바라보고, 때론 찍는 이들 역시 동일한 마음의 자세를 흠모해 봄직도 하다.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이미 3권으로 이뤄진 <김봉렬의 한국 건축사>를 통해 '한국 건축사'하면 떠올릴 만큼 알려진 저자이지만 그의 지명도 보다는 우리나라의 사찰들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는 매력이 더욱 돋보이는 책이다. 흔히 사찰 건축은 한국 건축의 일부로 접해왔지만 이렇게 사찰들만 따로 묶어 각각의 개성과 공간철학을 살펴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더욱이 학문적 관점에만 치우친 사찰 탐구가 아닌, 체험과 감성으로 맞닿는 사찰 여행의 면모도 갖추고 있어 답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읽어갈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지난 7월에는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 같다. 다들 누군가의 여행 가방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싶은 듯 예쁜 차림새로 나타난 것이 바야흐로 휴가철임을 알게 한다. 여하튼, 수많은 책 중에서 5권을 꼽으려는데 우선순위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잠시, '승리'의 <어쩌라고>를 들으며 마음을 식히고...

비록 최종 선정에서는 유사한 주제의 건축 도서 2권을 넣어 마무리했지만(좀, 편파적이었지?) 후보로 꼽고 있던 나머지 2권 역시 괜찮다고 생각하는 책이라 이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본다. 먼저 <한번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감독 빔 벤더슨의 사진 작품집이다. 그의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사진 또한 감상하고 싶은 유혹을 떨칠 수 없겠으나 이미지보다는 텍스트 위주의 책을 우선으로 한다는 생각에 추천에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음으로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는 이미 같은 저자의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를 읽어 본 바 있어 괜찮은 책이라 생각하지만 각 그림마다 구도와 색채 등의 기본요소를 통해 해석해 주는 부분이 이전 저서와 같은 형식인지라 '또 읽어?'와 '그럼 어때?' 사이를 방황하다가 5권 내에서는 제외했다. 입문서로서는 참고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고, 화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명작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는 점도 반길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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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현대의 다양한 예술분야를 접하다 보면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용어와 심심치 않게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그로테스크하다는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정도 특성을 파악할 수 있어도 막상 느낀 것을 한 마디로 표현할라치면 조금 난감해지는 게 사실이다. 비록 사전은 '그로테스크'에 대해 '터무니 없는', '기괴한'이라 정의하고 있지만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을 감상한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정의 역시 충분치 못함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반갑게도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는 그로테스크의 발생에서부터 현대적 의미로의 정착까지 수세기에 걸친 성장 과정을 미술과 문학 작품 속에서 추적하고,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가 내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포착해 그 의미를 구체화해 나가고 있다.

이 책의 목적은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는 것이다.(p.26)

그로테스크는 15세기말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던 용어로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했다. 당시 바사리(Vasari)를 위시한 여러 비평가들은 자연의 원리에 어긋난 이 장식물들에 대해 혹평을 했지만 예술가들의 새로움을 향한 의지를 제어할 수 없었으며 이후에도 혹평과 예찬의 대결구조를 유지하면서 어엿한 예술 양식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로테스크의 기원에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아름답고 화려한 아라베스크와 뚜렷히 구분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각자의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모호하게 동일한 양식인 것처럼 간주되다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독립된 양식으로 정착되었는데 이즈음 그로테스크를 미학의 범주로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처럼 역사속에서의 그로테스크는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그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며 과격한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변화의 과정을 거치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다듬어졌다.

그로테스크가 미학적 대상으로 탐색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것이 고급 예술로 여겨졌던 것은 아니다. 자연을 닮은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15~18세기 사람들, 이후 19세기 헤겔에게는 반인반수나 동물에서 식물로 변이되는 기이한 이미지들이 저급한 예술적 유희로 비춰졌을 법도 하다. 더욱이 그로테스크는 한때 섬뜩함 보다는 '우스꽝스러운'의 뉘앙스를 주는 의미로 사용된 적도 있으며 미학의 범주로 고려된 배경에도 캐리커처의 활성화에 힘입은 바 있어 호응도와 위상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그로테스크가 유럽 각국으로 전파되면서 발생한 미세한 사전적 의미와 연극(특히 질풍노도 드라마라 불리는 것)이나 기타 예술영역을 통해 대중과 친숙했던 그로테스크의 일면을 상세히 언급해 나간다. 뿐만아니라 여기서는 저자의 견해와 더불어 다른 학자들의 견해도 함께 들을 수 있어 그로테스크에 대한 지식의 기본을 갖추는데는 더없이 훌륭한 저술이다.

그로테스크는 미술분야의 라파엘로를 필두로 악마숭배주의의 보스, 보스에게서 영향을 받은 브뤼헐 등의 화가들을 거쳐 현대의 데 키리코, 달리 등에 이르기까지 이어져왔고, 문학에서는 괴테, 위고, 포우, 호프만, 뷔히너, 카프카, 토마스 만 등 이른바 대 문호들을 통해 그 맥을 이어왔다. 이렇게 예술의 거장들이 그로테스크와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데에는 인간의 힘(상상력)만으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려는 욕망이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16세기 그로테스크를 지칭하던 또 다른 이름이 '화가의 꿈(sogni dei pitton)'인 것을 보면 신이 창조한 자연의 질서를 벗어나 기괴한 이종교배를 시도하고 꿈같은 비현실적 공간을 추구하는 주체가 '화가', 더 나아가서는 인간임이 뚜렷이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인 볼프강 카이저는 그로테스크의 창작이 "현세에 깃들어 있는 악마적인 무언가를 불러내어 그것을 정복하는 일"(p.309)이라고 정의하고 그로테스크가 공포와 동시에 은밀한 해방감을 맛보게 해준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악마적인 것을 극복하겠다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인간의 창조가 삶의 공포에서도 비롯될 수 있다는 서글픈 측면도 발견된다.

공포로 가득한 인간 내면의 모습은 볼프강 카이저가 설명하는 다양한 문학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에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상 미술분야는 그로테스크의 태동기와 개념의 확장 부분에 집중적으로 언급되며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낭만주의 시대부터는 문학 및 연극 작품들, 그리고 미학이론들을 위주로 하고 미술은 간헐적으로 등장한다. 또한 저자가 문학비평가인 덕에 각 문학작품은 그로테스크의 측면에서 상세히 분석되어지는데 이를 통해 그로테스크 개념의 구체화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 담긴 인간 본성에 대해서도 심도있는 해설을 들을 수 있어 유익하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만한 작품은 모든 종류의 그로테스크를 작품세계에 담았다는 그로테스크의 대가, 호프만의 작품과 뷔히너의 <보이첵>이다. 특히 뷔히너의 <보이첵>은 그로테스크의 전성기인 낭만주의 시대의 작품으로 현대문학(희곡)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세련미와 비상함을 갖췄는데, 단순히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문학적으로 (외양)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 인물의 성격과 심리에 활용하고 있어 조금은 난해하겠지만(작품 '전체'를 읽으면 난해하다) 저자의 발췌부분만 읽는다면 크게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로테스크 문학의 백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그로테스크는 그 안에 내포된 다양한 요소들이 역사 속에서 축소 또는 확장되는 가운데 유동적으로 존재해 왔지만 이 용어를 하나의 단어로 귀결시키는 것은 합당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현재 대중문화에까지 파고든 그로테스크의 위세를 보면 이것이 또 어떤 의미로 변형되어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통해 그로테스크의 근원과 본질을 이해하고 여기에 반영된 인간의 본성을 파악한다면 향후 미적 체험이 더 깊어지는 것을 느끼리라 확신한다.

그로테스크에 관한 한 매우 밀도 있는 책이었고, 예술가들에게 지적 호기심과 영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 종교적 색채가 보이는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천년왕국>, 창백하고 영혼이 마취된듯한 느낌이다(좌)
- 그로테스크가 장식미술로 태동할 시기의 작품, 성당의 벽화이다, 루카 시뇨렐리의 <엠페도 클레스>(중상좌)
- 장식미술에서 좀 더 발달한 일명 만곡 그로테스크(중상우)
- 인상파풍으로 그려진 제임스 앙소르의 <음모>, 색채는 밝고 화려하만 우스꽝스러움과 사악함이 결합해 묘연하다(중하)
- 마리오네뜨(꼭둑각시)를 연상시키는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불타는 기린>(우)

* 상기 이미지는 본 도서에서 전체 혹은 부분 발췌하여 재조합하였으므로 원본과는 구성과 사이즈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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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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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상은 가슴뭉클 하면서도 불친절했다. 풍류에 취한 듯 일렁이는 서문은 어느 강팍한 마음에라도 시심(詩心)을 지필 만큼 매혹적이었지만 책을 열기 전부터 궁금했던 '옛 생각'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치 득도한 수도승이 알쏭달쏭 선문답만 남겨놓고 홀연히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옛 생각'에 대해 운만 슬쩍 띄워놓고는 읽는 이로 하여금 '굽이굽이 옛 사람의 붓 농사'(p.7) 사이를 헤메게 하는 것이 꽤나 짓궂다.

그러나 첫 그림 <매화초옥도>를 만나면 옹기종기 산세 사이로 점점이 흐드러진 매화에 반해 야속했던 마음은 이내 사라진다. 다음에는 낮술 자신 어르신의 발그스레한 볼과 주저앉은 품새가 애처러운 <꽃 아래 취해서>인데, 자세히 보니 홀로 앉아 꽃가지로 (몇 잔을 마셨는지) 셈을 하고 있어 그 애처러움이 더해지는 장면이다. 그런가하면 느닷없이 교태로운 양귀비와 나비가 등장한다. 비록 빛바랜 옛 그림 속의 꽃과 나비이지만 자태와 빛깔이 어찌나 곱고 고혹적인지 바랜 갈빛이 무색할 정도로 생동감이 있다.

어느덧 책 속의 시간이 봄을 지나 여름에 다다랐을 무렵 나는 드디어 '옛 생각'의 정체에 대해 감을 잡기 시작했다. 웅대한 자연을 묘사한 진경산수화나 명성을 자랑하는 한국화의 대표작들 보다는 유독 소소한 동식물과 인물, 근경을 위주로 한 그림들에서 보다 삶과 밀착된 소박한 정취, 그것에 대한 향수가 아련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밭갈이>, <빨래하는 여인>, <오이를 진 고슴도치>, <탁족>, <수박 파먹는 쥐>, <짖는 개>, <서생과 처녀>, <꿩잡는 매>,<차가운 강 낚시질>, <쏘가리> 등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십장생이나 사군자같은 고고한 동식물 보다는 생활 속의 친근한 동식물과 사물들이 등장하고 사람살이의 모습에서도 서민적이고 진솔한 모습들이 더 두드러진다.

하지만 모든 그림들이 일상의 소재와 생활상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문인들의 사군자나 풍경화도 볼 수 있고, 고사나 싯구를 묘사한 그림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 작품 역시 예사롭지 않은 독창성과 순박함를 갖추고 있으며 풍경에서도 한가로운 정취나 은둔자의 모습을 다루고 있어 속세를 벗어난 듯 여유롭기 그지없다. 이에 더해 옛스런 정감이 물씬 풍기는 글들은 고어나 순 우리말이 아니더라도 읽는 이를 과거의 시간 속에 불러들일만큼 천연덕스럽고 감칠맛 난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옛 단어들을 사용한 것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했는데, 물론 단어들에 대한 친절한 풀이가 각 장마다 실려있어 이해를 돕고 있었으나 이를 일일히 확인하고 다시 글 속으로 들어가다 보니 감상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이럴 때면 청산유수로 저만치 앞서가는 저자의 흥취가 다시 또 야속해지곤 했다.

그럼에도 계절을 따라 그림 속에 노닐며 옛 시간에 홀연히 빠져드는 묘미는 무척이나 쏠쏠하다. 그림을 화가별로 혹은 시대별로 보지 않고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아 놓으니 진정 과거의 시공에서 한 해를 보내는 듯 현실의 시간을 잊는다. 뿐만아니라 그 안에서 어우러지는 다양한 계절의 정취와 각 화가의 개성있는 필치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새로움을 더해준다.

마지막으로 각 계절에서 훔쳐온 그림 한 점씩을 자랑스레(?) 전리품처럼 내놓아 본다. 먼저 임희지가 그린 <난초>는 정형화된 봉안, 파봉안에 얽매이지 않고 유난히도 교태로운 긴 잎새를 낭창거리며 설레이는 여심(女心)처럼 봄을 노래한다. 언제나 선비정신이 서려있던 사군자에 이리도 파격적인 면모를 담을 수 있다니! 그 자유로운 발상이 무척이나 감탄스럽다. 또한 조선시대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은 산수(山水)의 장관 뿐만 아니라 제 곁에서 울어대는 매미처럼 소박한 정취를 그리기도 했다. 매미 앞에서 내리 뻗던 나뭇가지를 슬쩍 멈춰세운 탓인지 매미가 더 살포시 나려앉은 듯 하고 투명한 매미의 날개와 푸른솔이 어우러져 무척 산뜻하다. 어쩌면 김두량의 <숲속의 달>은 '한국화'하면 떠올릴 수 있는 대표적인 느낌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법이나 소재면에서 크게 튀는 것은 아니지만 스산한 가을의 정취가 생생하게 전달되기에 꼽아보았다. 김홍도의 <표피도>는 마치 오늘날의 텍스타일 디자인을 보는 것처럼 상당히 현대적인 느낌이다. 흔치 않은 소재(일상적이지만 한국화로 접할 기회가 드문 소재)들이 돋보이는게 이 책의 특징이었지만 가장 특이한 소재를 꼽으라면 이 그림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이처럼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에는 주류보다는 비주류의 개성이, 격식보다는 자유로움이, 관념보다는 소박한 일상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알지 못했던 옛 그림과 만나는 즐거움, 그리고 옛 시간의 향수 속으로 빠져드는 경이로움을 오롯이 담고 있다.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라더니, 그 말이 허세는 아닌 듯 하다. 다만 그 행복의 여운이 깊지 않았음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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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자 발표] [도미노 서평단] 논장 <학교 가는 길> 15분께 드립니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이름이 길어서 외우느라 힘들었지만 제가 참 좋아하는 동화작가입니다. 조카의 책을 한 두 권씩 사주다가 알게 되었는데 개성이 강해 자꾸 눈길을 끌더라구요. 흐미엘레프스카의 매력은 뭐랄까...시적(詩的)인 상상력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상상력에도 '톡톡 튀는' 상상력, '천진한' 상상력, '웅대한' 상상력 등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미지에 이야기와 디테일을 더해가는 방식이 살폿한게 잔잔한 동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흐미엘레프스카의 감성은 비록 줄거리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글자를 익히는데 도움이 되는 <생각하는 ㄱㄴㄷ>과 <생각하는 ABC>에도 고스란히 나타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선택했던 그녀의 책 몇 권을 소개해 볼께요.


1. <생각하는 ㄱㄴㄷ>
처음엔 외국인인 흐미엘레프스카가 한글책을 지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볼로냐 라가찌 대상 수상작인 <마음의 집>에서 우리나라의 김희경 작가와 작업(일러스트 담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오래 전부터 한국과 한글에 대해 관심이 있었는 줄은 몰랐네요. 그녀는 한글의 형태가 무척 흥미롭고 아름다와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한글의 형태는 역시 그만큼이나 아름다운 다양한 이미지들을 통해 ㄱㄴㄷ을 만들어 갑니다(물론 맨 마지막 글자인 'ㅎ'까지 말입니다). 또한 학습 효과를 위해 각 자음에 맞는 글(ex>다람쥐가 도토리를 먹으려는데...)이 쓰여져 있고, 자음을 표현한 이미지의 명칭도 적혀있어(가운데 박스를 보면 작은 글씨지만 도서관, 다리미, 당근 등의 낱말을 볼 수 있음) 이미지와 글자를 짝짓기해 볼 수도 있어요.





 


2. <생각하는 ABC>
이번엔 한글이 아니라 알파벳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익힐 수 있는 책입니다. ㄱ에서 ㅎ보다는 A에서 Z까지가 더 많은 글자가 있어 책이 생각보다 두툼해요. 마치 알파벳 이미지 사전같네요. 게다가 <생각하는 ㄱㄴㄷ>에서 한 페이지에 담겨있던 9개의 작은 그림과 글씨들을 각 페이지로 풀어 놓아 더 책이 두꺼워졌나 봅니다. 하지만 이미지가 한 페이지에 꽉 차니 그림도, 글씨도 시원시원하고, 오히려 집중해서 바라볼 수 있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3. <문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노랑 표지에 둥그스름한 삼각형이 있어 뭔가 했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주인공 꼬마가 다림질을 하다 엄마가 아끼는 식탁보를 누리는(살짝 태우는) 바람에 야단 맞을까 걱정하는 이야기였어요. 꼬마가 '아무리 힘이 센 사람이라도 이런 얼룩에는 맞설 수 없어요'라고 생각하면 다리미 자국에선 힘 센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고,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고 생각하면 쥐의 모습이, 땅 속에 숨고 싶다면 삽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내 잘못이라는 게 너무나 명백해요'하니까 다리미 자국에서 반짝이는 전구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아이는 이런 저런 걱정과 변명거리와 방법을 궁리하다 결국 솔직하게 말하기로 합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아주 멋진 해결책을 내 놓으셨는데요, 그것을 밝혀 버리면 책을 읽을 때 재미가 없을까마 마지막 장면 직전까지만 보여드릴께요. 아무튼, 잘못을 저지르고 걱정하는 아이의 마음과 그것을 현명하게 마무리 짓는 엄마의 사랑이 한껏 돋보이는 책입니다. 물론, 상상력두요. 
 
 

4. 그밖에도...
흐미엘레프스카의 그림은 <문제가 생겼어요>나 <학교 가는 길>과 같이 간결하고 재치있는 스타일이 있는가 하면, <마음의 집>이나 <반이나 차 있을까 반밖에 없을까?>, <생각>처럼 신비하고 조금은 음습한 느낌을 가진 스타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풍으로 그린 책들에는 심오한 철학적 사고와 마음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어 밝고 명랑한 그림은 아니더라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조카가 좀 더 자라면 한 번 읽어보게 해주고 싶네요. *** <마음의 집>에서 흐미엘레스카는 일러트스만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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