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대중문화>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7월, 도약의 정점에서... 
... 그리고 예견한 지점으로의 착지를 위해

  

 



<회화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탐독했다는 알베르티의 <회화론>. 비록 미술 전공은 아니지만 현재까지 500년이 넘도록 미술가들의 지침서 역할을 해왔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고 싶었다. 화가들을 위한 수학적 원리와 시각미술의 대 변혁을 일으킨 원근법, 그리고 다양한 회화의 구성원리와 개념들을 살펴볼 수 있는 <회화론>은 미술학도뿐만 아니라 미술 애호가들에게도 가치있는 필독서가 될 것이다.






<내맘대로  드로잉> 

사실 신간평가단에서 예술 실기에 대한 책이 선정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 또한 실기에 대한 책들은 서평쓰기가 까다롭거나(포토 위주의 리뷰) 막연해(너무 기초적이거나 기술적인 내용일 때-예>인체드로잉, 사진의 구도 등) 추천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맘대로 드로잉>은 설명위주의 실기서와 조금 다른 느낌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일러스트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법들을 중심으로 창의력을 한껏 끌어내고 있다. 미로처럼 재미가 느껴지는 책이다.

 



 
<느낀다는 것>

'느낀다'는 말의 의미를 재발견한다는 컨셉이 무척 마음에 든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예술도서로 그림에 대한 지식이나 감상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느끼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단 예술은 차치하고서라도 예술과 교감할 수 있는 감성을 흔들어 깨우는 일에 집중해 보자. 그러면 예술뿐만 아니라 사물과 세상을 보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변화할 것이며 궁극적으로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예술과 공명을 이루는 시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고마워 디자인>


이 책은 디자인에 대한 칼럼을 묶은 잡문집이라 한다. 추측컨대 일반적으로 말하는 예술에세이에 인문학적 비평이 녹아난 글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늘 '디자인'이라고 하면 감각적이고 아름다와 보이는 것, 혹은 매혹시킬만큼 튀는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실상 디자인에는 우리 삶의 작은 구석까지도 배려해주는 섬세하고 다정한 마음씨가 담겨있다. 그리고 이 책은 디자인의 숨은 측면, 기능과 효율을 위해 존재하는 평범한 디자인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득, 이노디자인의 이현세대표가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 디자인"이라는 스승의 컨셉에 감동 받았던 일화가 떠오른다.




<궁궐 장식>


한국건축에 대해 공간적인 탐색과 미적인 탐색을 다루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집중적으로 궁궐을 다루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것도 궁궐의 배치나 풍수, 공간구성이 아니라 '장식'에 초점을 맞췄다는 것은 더더욱 독특하다. 이 책은 궁궐장식의 조형적 특징과 기능에 대한 설명에 머무르지 않고 이에 담긴 유교정치의 이상과 세계관으로까지 의미를 해석해내고 있어 우리건축을 이해하는 또다른 시각을 배울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7월에는 유난히 예술/대중문화 분야가 조용하다. 다들 바다에 영감을 받아 휴가지로 떠나버렸을까?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이나 <김점선 그리다>와 같이 알만한 대가들의 이름을 걸친 책들이 눈에 띄지만 개인적으로 안도 다다오의 책은 지면의 편집에서부터 실망스러워 제외했으며, 김점선의 경우 그녀의 그림을 감상하는데 비중을 둔 '작품집'이라 제외했다. 뿐만아니라 읽고 싶은 책들이 대부분 타 분야와 겹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타 분야와 겹친다 해도 예술/대중문화가 상위에 있다면 선택했겠지만 모두들 역사나 사회분야가 상위로 되어 있어 제외했다. 이에 속하는 책들은 <그림으로 읽는 한국 근대의 풍경>,<이것이 문화비평이다>,<시네마 온더 로드>이다. 사실 <궁궐장식>도 그러한데 이 책은 좀 특별하고 타 분야의 평가단에서 선택할 것 같지 않아 슬쩍 리스트에 올려본다. 마지막으로 음악 분야의 <이 노래, 아세요?>도 상당히 읽고 싶었지만, 스마트폰이나 주변기기가 없으면 제대로 음악을 감상할 수 없을 것 같아 제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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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 그 치명적 유혹
피터 H. 글렉 지음, 환경운동연합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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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꽤 오래전 TV를 통해 생수의 진실이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것은 생수와 용기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PET병에 담긴 1급수의 생수를 개봉한 후 상온에 놔두면 한나절쯤 지나 박테리아가 번식하면서 하급수로 변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었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변화는 냉장 보관을 한다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결국 500ml 생수 한 병을 살 경우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즉시 마셔야 상책인듯 싶었다.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다음날부터 직장 동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생수 대신 캔 음료수를 사먹기 시작했다. 누군가 생수를 먹는다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다 마셔버리거나 먹을 만큼만 먹고 그대로 버리기도 했다. 특히 식당에서 주는 페트병에 담긴 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음식에 대한 파동이 모두 그러하듯이 그토록 생활습관을 바꾸고 법썩을 떨게 했던 생수 파동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져 갔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생수를 마시기 시작했고, 언제 생수에 문제가 있었냐는 듯 들고 다니며 마시고, 다이어트를 위해 더 마시고, 주말이면 마트에 가서 어김없이 2리터짜리 생수 한 박스를 장바구니에 챙겨 넣었다. 이후에도 취수원 문제, 미생물(균) 문제와 같은 몇몇 생수관련 기사들이 보도되었지만 그때 TV 프로그램만큼 크게 영향력을 미쳤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어찌됐든 생수는 신뢰할 수 없는 식품임을 버젓이 드러내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우리의 일상 가운데 출렁이고 있는 불한당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이 문제가 해결되었는가에 대해 아무도 따져 묻지 않는다.

반면 저자인 피터 글렉은 생수 문제에 대해 꾸준히 따져 묻고 있는 몇 안되는 환경운동가이다. 그는 1998년부터 지금까지 십여년이 넘도록 깨끗한 물을 누릴 시민의 권리를 위해 힘써왔다. 우리도 이미 겪었던 생수의 PET병 문제, 취수원과 오염 문제도 역시 빠지지 않고 그의 연구 내용에 등장한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책을 먹거리의 관점에서 선택했었다. 과자나 패스트푸드처럼 몸에 좋지 않은 식품의 진실도 충격이지만 최근들어 몸에 좋다고 알려진 우유나 채소마저 차마 상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숨기고 있었기에 생수는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말 믿고 마셔도 좋을지, 건강 차원에서 생수문제를 바라봤던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생수는 단지 개인의 건강 차원이 아니라 사회와 환경 차원에서 다루어야 하는 문제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생수는 마치 석유와 같은 것이다. 아무리 기업들이 맑고 좋은 물을 찾아 그것을 생수병에 담는다 해도 사람들이 계속 생수를 소비하는 한 결국 취수원이 마르고 주변의 동식물과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자꾸 퍼내면 고갈되며 환경이 파괴되는 것이다. 또한 생수를 담는 용기인 PET는 유해물질 함유 여부에 어떤 결과도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이 없다. 가정이나 사무실에 거치하는 냉온수기용 대형물통의 경우 비스페놀에이라는 잠재적 위해물질이 나오고, PVC에서는 프탈레이트, 폴리에틸렌에서는 스타이렌과 같은 유해물질이 나오는데 과연 유사한 플라스틱류인 PET가 인체에 무해하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일종의 X파일처럼 산업과 경제를 위해 숨겨진 진실이 있을거라는 의혹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생수는 탄소발자국이 매우 큰 제품이다. PET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 전형적인 제품이며, PET 1kg을 생산하는데 원유 3리터가 필요하다. 여기에 PET 공정과정에 소모되는 에너지와 취수원으로부터 공급지까지 생수를 운반하는데 소모되는 연료를 생각해 보면 생수 한 병 부피의 1/4 혹은 그 이상이 원유라는 끔찍한 결론을 얻게 된다.

그렇다면 PET는 차치하고라도 그 안의 생수 자체는 적어도 깨끗하고 믿을만할까? 모두가 예상하는 바이지만 정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폴란드 스프링 생수는 실제 미국 메인 주의 폴란드 스프링에서 취수한 물이었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며 현재는 상표로서만 그 명성을 유지할 뿐이다. 그밖에 다수의 유명 회사 제품들도 다양한 취수원에서 물을 퍼 와서 맛을 동일하게 만들기 위해 후처리를 거친다. 상표로 사용되는 취수원의 이름만 믿고 그 물이 천연의 물이라 기대하지만 실상 심한 경우 수돗물이 원수(原水)일 가능성까지 있다. 이렇게 상품으로 쏟아져 나오는 생수에 거짓이 횡횡한 까닭은 관리당국의 허술한 규정과 안이한 관리 때문이다. 우리나라보다 생수 소비량이 훨씬 많은 미국의 경우에도 생수는 FDA(Food and Drug Administration, 미국식품의약국)에서 관리한다. 즉, 규정을 어길 경우 강제 조치할 권한이 없는 기관에서 생수를 관리하는 것이다. 만일 생수 회사가 규정을 어겨 경고를 받는다 할지라도 사후에 경고 받은 사항을 개선하거나 제품을 회수했는지의 여부에 대해 확인하는 경우도 드물다. 식품에 대해 상당히 깐깐할 것이라 생각했던 미국의 경우도 생수관련 법규나 조처에 대해서는 이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다(그렇다면 수입 생수는 더욱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미 아닌가!).

취수원도 불분명하고 레이블도 엉성한 생수를 그토록 광적으로 신뢰하게 만든 원인은 바로 광고의 힘이다. 늘씬하고 탄탄한 몸매의 남녀가 힘차게 달린 후 생수를 마시는 모습이나 초록빛 나무가 울창한 숲속에서 맑은 물이 반짝이는 풍경, 좀 더 역동적으로는 광천수가 분출하며 시원스레 터지는 장면, 이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생수의 이미지를 구축해온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이에 더해 건강에 대한 관심, 하루에 물을 8잔 정도 마셔야 좋다는 연구 결과, 광천수나 샘물에 함유된 미네랄에 관한 정보는 실제 그러한 제품이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생수에 지나친 가치를 부여해 주었다. 그러나 이제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 필요가 있다. 생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그렇게 맑고 신선한 물이 아니며 오히려 생수 산업으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을 고려해 볼 때 과연 마실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생수에 대한 근거 없는 신뢰를 버리고 식수에 대한 다른 대책을 찾는다면 남은 것은 오직 수돗물 뿐이다. 소독약품이 가득하고 관리가 이뤄지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수도관을 통해 공급되는 바로 그 수돗물 말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대로 받아 마시기가 꺼려지는 수돗물은 실제 그렇게 마셔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깨끗한 물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국가에서 관리한다고 하면 오히려 못 믿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불신이 국가의 물 관리를 철저히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그래서 실제 뉴욕의 경우 수돗물이 그대로 받아 마셔도 좋은 상태로 개선된지가 꽤 오래 되었다. 서울의 수돗물 역시 그대로 받아 마셔도 좋다는 기사가 몇 년전 보도된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생활의 편리함과 기존 수돗물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생수에 속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생수 공급을 중단하고 모두 수돗물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가 제안하는 것은 윤리적인 생수 공급과 미래의 더 나은 수돗물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과 대안책이다. 그리고 생수와 수돗물의 미래에는 단지 살만한 좋은 환경을 가진 국가뿐만 아니라 아직도 미비한 수자원 환경을 가진 후진국에 대한 배려도 포함된다.

<생수, 그 치명적 유혹>은 생수의 진실을 고발하는 실태 보고서 차원을 너머 방대한 관련 자료와 저서에 근거해 사실을 밝히고 적합한 방법을 모색하는 적극적인 제안서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록으로 곁들여진 우리나라 생수 현황에 대한 자료들은 생수의 문제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이야기임을 알려주며, 이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 이제 생수에 대한 관심은 건강의 차원 이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제 생수의 치명적인 유혹에서 벗어나 깨끗한 물을 마실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하고, 이제 현명한 생수와 수돗물의 사용을 통해 생태계를 지켜가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우리가 시민으로서, 소비자로서 아는 분량과 보는 관점이 달라질 때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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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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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분야가 탄생할 때의 치열함이란 후대인들에게는 조금 당혹스럽고 낯설게 느껴지기 마련인가보다. 공교롭게도 나는 <사유속의 영화>를 읽기 전 <논쟁이 있는 사진의 역사>를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최초로 사진이 예술성을 인정받아 원화 대(對) 복제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건이 등장한다. 하지만 당시 논쟁의 대상이었던 그 사진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본다면 별로 예술작품 같지가 않다. 또한 원화의 작가가 승소한 까닭도 인물의 포즈를 연출하고, 조명을 적절히 계획했다는 정도의 지극히 당연한(?) 사유이다. 이 사진이 비록 스냅사진의 수준은 아닐지라도 딱히 전시회에 걸릴만한 예술 사진 역시 아닌 듯했다. 그렇지만 사진이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에게 사소하고 당연한 그 사실들이 철저히 주장되고 규명되어야 했다. 이것은 기계를 통해 인간의 혼을 불어넣는 예술의 운명이었던 것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영화를 예술로 탄생시키고 독립된 한 분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소하고 자명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것들이 분석되고 탐구되어 어떠한 의미로서 사람들의 인식속에 자리잡혀야 했다. <사유속의 영화>는 바로 그러한 산고의 과정들을 담고 있다.

영화만의 독자적이고 특수한 가능성은 공간의 역동화 그리고 결과적으로 시간의 공간화란 개념으로 규정될 수 있다. 이 진술은 사소하게 보일 정도로 자명한 것이지만, 이렇게 사소하기 때문에 쉽게 잊혀지고 무시되는 종류의 진실에 속한다. (p.78)

파노프스키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정지된 공간의 연극과 영화를 비교하지만 어떤 이는 사진을, 어떤 이는 라디오극을, 또 다른 이는 회화, 언어학 등을 들어 쉽게 잊혀지고 무시되는 영화의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찌보면 신생예술로서의 영화는 비교될 수 있는 모든 기존 예술들과의 차이점을 규명해 나가며 기계복제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극복해 가는 것이 탄생의 과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예술계의 총아로 떠오르고, 다른 분야들이 수세기를 걸쳐 쌓아온 예술이라는 명성을 최단 기간에 획득할 수있었던 것은 아마도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 혹은 대중에게 미칠 수 있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상업성이라는 또다른 공격요소가 된다 할지라도.

영화의 출발은 무성영화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녹화하며 시작되었다. 그래서인지 초반부의 내용들은 기계로 녹화한 이미지가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들이 주를 이루며 1929년 에이젠슈테인이 몽타주에 생명을 불어넣는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가 첫 글로 등장한다. 그는 샷이 벽돌처럼 쌓여있는 몽타주의 요소가 아니라 서로 충돌하여 추진력을 일으키는 세포라고 정의하는데, 일본 가부키 극에서 나타나는 영화적 몽타주 기법을 찾아 영화의 예술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어 아른하임은 영화와 사진과 현실에서의 이미지를 비교하며 영화 이미지의 특성과 이를 받아들이는 우리들의 감각에 대해 매우 치밀하면서도 과학적인 이론을 펼쳐나간다. 그가 분석해낸 시각과 인식의 미묘한 차이를 통해 영화는 영화만의 공간적 특성을 확립하며 이에 반응하는 관객과의 공간적 교감에 대해 보다 견고한 의미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에 대한 논의는 좀 더 다양해진다. 영화에서의 시공간의 문제, 언어학적 분석과 서사성, 영화와 이데올로기 등이 종종 거론되며, 장-프랑수아 리오타르의 <반(反)영화>에 가서는 라캉의 거울이론으로 영화 스크린을 설명하는, 그래서 보다 리비도에 충실한 새로운 영화를 옹호하는 기류가 나타난다. 드디어 영화 자체 내에서 또 다른 성장(혹은 전복)이 이루어지는 사유가 시작되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사유속의 영화>에 등장하는 논문들은 영화의 예술성, 영화의 영화다움을 설명하며 기계복제의 작품들 속에 인간의 온정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볼 때, 오늘날 이 논문들이 가지는 가치는 어떤 학문적 설명을 통해 그것(영화의 예술성)을 증명해 냈다는 사실 보다는 향후 영화와 대중과의 관계, 상업성과 예술성 사이의 갈등에 대해 조명해 보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도 일찌기 말했지만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기계복제는 예술작품을 제의(祭儀, ritual)에 기생하는 존재에서 해방시킨 것'(p.110)이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소수의 전유물이였던 예술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계복제 예술 영화.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탐색해야 할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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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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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들은 건축이라는 말 대신 참 좋은 단어를 사용했었다. 한자말이긴 하지만 '영조(營造)'가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지어서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다, 집은 세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이 집은 지어서 만드는 것이다. 짓는다는 뜻은 무엇인가. 어떤 재료를 가지고 생각과 뜻과 마음을 통하여 전혀 다른 결과로 변화시켜 나타내는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p.16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은 한마디로 건축가 승효상이 말하는 '영조(營造)'의 의미를 실감나게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반적으로 한국 건축은 미적 가치나 역사적 가치에 중점을 두어 한국 미술사의 일부로 소개되거나 좀 더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한옥을 주제로 소개되는 경향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완성된 형태로서의 건축물을 보여주고 관련된 설명만 있을 뿐 어떻게 지어지는가를 상세히 보여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한국 건축의 구조나 의장을 다룬 책들을 보면 어떻게 지어졌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건축을 사랑하는 일반인으로서 선택하기엔 이들은 너무도 전문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이 책은 '지혜'의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는 건축 구조상의 지식으로부터 보다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까지 고루 갖추고 있으며 공간구성에서부터 창호 상세에 이르는 영조(營造)의 과정을 총망라 하고 있어 진정으로 지어 만드는 묘미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다.

그동안 바라보고 감탄만 했던 우리의 건축을 찬찬히 뜯어보면, 날아갈듯 아름다운 지붕의 곡선 아래에서는 수많은 서까래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산되어 부채살을 펼치듯 떠받치고 있으며 조로와 후림이라는 교정효과를 거쳐 더욱 날렵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거듭난다. 또한 지붕의 육중한 무게를 하부 기둥으로 전달하는 공포들은 육안으로 보이는 형태와 채색의 정교함 이상으로 숨은 접합부들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 뿐만아니라 돌 하나 하나의 고유 형태를 최대한 살려 사춤(모르타르와 같이 접착제 역할을 하는 재료)도 없이 건식으로 쌓은 허튼층 쌓기의 담장이나 성벽은 공학적 힘을 초월하는 장인정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렇듯 (승효상의 표현에 따르면) '변화되어 나타난' 건축물의 미적 체험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재료들의 부단한 변화 과정과 어우러짐 속에서 떠오르는 것이다.

적새, 주심포, 귀포, 중도리, 평방, 숫마루장, 뜬장혀, 안초공, 쇠사리...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건축의 세부 명칭들과 그들이 이뤄가는 한 채의 건물들을 구조원리와 도면을 통해 살펴보고 나니 다른 나라의 건축물에 비해 웅장하거나 규모가 거대하지 않아도 치밀함과 사려깊음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거라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어떻게 그 당시에 19각형을 작도하고, 시각적 입면을 위해 형태를 보정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을까? 그저 단순히 목재와 석재로 지어진 건물이지만 이들을 통해 최상의 비례미를 빚어내는 솜씨에는 과학적인 총명함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깃들어 있다.

우리 건축에서 가장 놀라운 모습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활용한 점이다. 천연의 재료를 구조적으로 계산하여 각각의 부재로 다듬는 것은 사실상 어렵지 않다. 지붕의 곡선이나 각 모서리에서 부재들이 만나는 부분에 변형이 생기고 복잡해지지만 이것 역시 이미 기하학적으로 계산된 형태이기에 부재들 사이에 균형이 어긋나지 않는다. 하지만 기존에 있는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이용하거나 휜 나무를 천정 보로 얹힌다는 것은 상당한 노고뿐만 아니라 자연과 공학에 대한 뛰어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기술이다. 근대건축의 거장 중 미국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주변의 바위와 나무를 그대로 살린 낙수장(Falling Water)이라는 집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는데, 우리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자연을 그대로 살린 집을 지었고, 이에 더해 어떤 집은 뒤틀린 나무기둥에 채색까지 입혀 마치 한 폭의 초현실주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한 감동을 자아낸다.

그러나 자연과 어우러져 지어진 우리의 건축을 가장 잘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역시 공간 구성이다. 우리나라 건축은 채의 특성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한 건물이 여러 실로 나뉘어있지 않고 실규모의 작은 건물들이 개별적으로 채를 이루어 구성되있음을 의미한다. 건물이 여러 실로 나뉜 한 덩어리의 인공물이 아니라 건물(채)과 담, 튓마루 등을 통해 외부와 내부가 유기적 관계로 구성되어 보다 주변의 자연을 다양하게 끌어안을 수 있으며 내외부 공간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 어우러짐의 특색이 잘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최종적으로 영조(營造)의 의미가 지향하는 정점이다.

이처럼 우리 건축에는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과 치밀한 과학정신이 결합해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모습으로 굳건히 서있다. 비록 지금은 문화유산이라는 명목상(?)의 이름을 가지고 관광지로서의 역할만 다하고 있는 듯 하지만 이렇게 한국 건축의 구조를 상세히 담은 책을 통해, 또 그 안에 깃들여진 정신과 이를 계승해가는 현장에서의 열정에 의해 또다시 '지어지는' 건축의 모습으로 우리곁에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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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그림책 (양장)
데보라 언더우드 지음, 홍연미 옮김, 레나타 리우스카 그림 / 미세기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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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책이다. 그냥 귀여운 것도, 그냥 사랑스러운 것도 아닌, 꼭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이어야만 이 책을 넘겨 본 나의 소감을 그나마 적절히 표현해 줄 것 같다. 살포시 잠든 아기 토끼의 표지는 홀딱 반할만큼 깜찍하지만 이것은 단지 전주곡에 불과할 뿐, 귀여운 모습들과 천진난만한 동심은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조용함이 깊어가는 가운데 점점 더 사랑스럽게 여물어 간다(단, 이 책의 규칙에 따라 ’소근소근’ 읽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조용한 그림책>은 처음부터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책이 아니였다. 책을 읽을 조카가 사내아이인지라 이 ’각별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을 과연 나만큼이나 좋아해 줄지, 조용한 순간들을 잘 음미하며 조용히 감상해 줄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시간만 보내며 책 설명 사이를 방황하게 되었는데, 그러다 우연히 ’정서 지능’이라는 용어가 눈에 띄였다. 순간(번쩍!), 일반적으로 남자아이들(사실 남성적 뇌를 가진 아이들)은 공감 능력과 정서 능력이 부족할 수 있으므로 이 부분을 더 챙겨줘야 한다는 교육방송이 떠오르면서 남자아이의 ’취향’에 대한 걱정은 그만 거둬들였다.  


쉿! 이제부터 <조용한 그림책>에 대해 소근소근 말해야겠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생각하는 조용한 순간들이 ’어머나, 이렇게 많아?’라고 할만큼 가득 담겨있다. 제법 어른스런 생각들도 있고, 쿡쿡 웃음이 날만큼 기발한 생각들도 있으며, 순진하고 어여쁜 생각,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생각 등등 조용한 순간들의 색채는 다양하고 섬세했다. 이 많은 생각들을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대략 몇 가지로 구분해 보면 먼저 일상에서 마주치게 되는 평범하고 조용한 순간들이다. 맨날 시끌벅적 노는 것 같아도 그 안에서 조용한 순간들을 꼽아내는 것을 보면 정말 기특하고 신기하다.


아이들에게 있어 조용한 순간이란 일상의 평안한 시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무서움 속에서도, 난처함과 반성의 시간 속에서도, 놀래키기 놀이같은 긴장감 속에서도 용케 조용한 순간들을 발견해 내며 조용함이란 다양한 모습과 다양한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은 아이들이 생각한 조용한 순간들 중 참 운치있고 기발한 것들이다. 소원을 비는 순간이 얼마나 간절하고 행복했기에 저리 달콤한 표정을 하고 빙긋이 웃고 있을까? 눈 내리는 밤의 고요를 느끼는 마음은 또 얼마나 감성적인가? 게다가 부풀어 오르는 비누거품에서 조용함을 발견하는 놀라운 관찰력이란...정말 예기치 못한 조용한 순간들에 감탄하며 깜짝 깜짝 놀라는 바람에 조용히 읽는다는 게 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조용한 순간들은 바로 사랑의 시간들이다. 단짝 친구와 함께 있으면 아무 말도 필요없다는 제법 의젓한 생각도 돗보이고, 엄마의 뽀뽀를 조용한 순간 속에 챙겨넣는 마음씨도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시작해 하루 일과 속의 조용한 순간들을 차분히 엮어나간 <조용한 그림책>은 아늑한 침실에서 소근소근 읽어주는게 제격이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잠들기 전 세상의 모든 조용한 순간들을 마음속에 챙겨보며 하루를 돌이켜보고, 조용함에서 번져오는 평화로움을 맛보는 가운데 아이는 행복하게 잠들 것이다. 조용히...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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