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한 달 동안 만났던 책들입니다. 
신학책 비율이 꽤 높아졌네요. 좀 균형을 맞출 필요가.. ㅎ 
여러분도 흥미를 가지실 만한 책을 한 번 골라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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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술
제프 고인스 지음, 윤종석 옮김 / 도서출판CUP(씨유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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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우리의 삶에 참 중요한 요소다. 그건 우리 삶에 활력을 주고, 때로 우리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은 일을 그저 고되고 힘든 것, 가능하면 적게 하면 좋은 것 정도로 치부하기도 했다. 뭐든 뒤집어 보는 게 “일”인 현대의 학자들 가운데서는 아예 노동에 대학 악평을 늘어놓는 것이 인기인 분위기도 보인다. 물론 여전히 일에 담겨 있는 좀 더 숭고한 의미를 발견하거나 자기실현을 위한 중요한 도구로 생각하는 쪽이 좀 더 많긴 하지만.


기독교적 차원에서 일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덧붙여져 있다. 이른바 “소명”이라는 개념이다. 영어(calling)든 한자어(召命)든 의미는 같다. 그건 우리가 어떤 자리로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주로 이 단어는 특정한 일로 우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동양의 오래된 표현으로는 천직 같은 표현도 있는데, 이쪽은 그저 내가 해야 하는 일, 내게 주어진 일 정도의 수동적 의미라면, 소명은 하나님에 의한 능동적인 부르심이라는 의미가 좀 더 강하다.


중세에는 이 소명이 단지 특수한 직업군, 즉 성직자들의 일을 가리키는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이런 인식이 잘못되었음을,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각자의 자리로 부르셨다고 교정했다. 이제 사람은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부여하신 일을 하면서, 그분과의 교제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문제는 내게 주어진 그 소명이 무엇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 관해서 다양한 종류의 오해와 오류들이 널리 퍼져 있다. 이 책은 바로 이 과정에 관해 훌륭한 조언을 담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소명에 관한 신화들 중 하나는 “그것은 운명처럼 우리에게 나타난다(그러니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면 될 뿐)”거나, “일단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별 훈련을 하지 않고도) 곧 그 일에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익숙해진다” 같은 내용들이 있다. 저자는 소명에 관한 그런 어설픈 신화를 여지없이 깨뜨뜨린다.


저자에 따르면 소명은 무작정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행동하려는 의지가 없이 소명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기존에 해 왔던 일들과 그 과정에서 일어났던 일들, 그 성과, 그리고 그것을 대할 때의 우리의 경험들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오랜 도제 기간에 상당하는 훈련이 필요하며, 단번에 새로운 곳으로의 전환보다는, 단계별로 연속적인 변화의 과정을 통해 이를 수 있다.





“소명”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책이 있다. 오스 기니스가 쓴 『소명』이라는 책이다. 성경의 다양한 인물들을 예시로 들면서 소명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풀어낸 고전이다. 이 책은 그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르다. 일단 소명이 무엇인지에 관한 설명보다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과정에 집중한다. 소명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는 독자에게 좀 더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책 중반까지 성경인용이 거의 없었다. 후반부에는 두 부분 정도를 발견한 것 같은데, 기독교 출판사인 걸 생각하면 살짝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일과 소명이라는 것이 일반은총의 영역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감안하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부분은 기독교 신앙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책을 권해 줄 때 장점이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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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큰 권력을 갖고 있고,

사실상 면책특권을 누리던 이들일수록

삶으로부터 불의의 일격을 당할 때

회복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목격했다.

이제 그들은 한때 자신들이 차지하고 앉아서 남의 운명을 재단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은 이들에 의해 재단당하는 입장이 된 것인데,

그들에게는 그 추락이 다른 이들이 느낀 것에 비해

유난히 더 고통스러웠다.

그들의 영혼은 그들이 받은 타격의 심대함 때문에

산산조각 나버렸다.


아흐메트 알탄,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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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독교를 믿든 믿지 않든,

기독교의 진짜 메시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무엇을 믿는지도 모르고 믿는 것이 희극이라면,

자기가 무엇을 믿지 않는지도 모르고

믿지 않는 것은 비극일 수 있다.


홍종락, 『C. S. 루이스의 인생 책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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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시대 - 로맨스 판타지에는 없는 유럽의 실제 역사
임승휘 지음 / 타인의사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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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잘났든 못났든, 키가 크던지, 얼굴이 못생겼는지, 정치의식이 바르든지, 아니면 왜곡되고 심지어 삐뚤어진 사고를 가지고 있든지 간에 모두가 한 표씩 행사하는 제도니까. 물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모두에게 한 표가 주어지는 건 아니다. 법률에 따라 선거권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으니.(주로 범죄관련)


하지만 인류 역사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는 이런 종류의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특별한 계급, 나면서부터(이점에서는 시대에 따라 다른 관점들이 좀 있지만) 평민들과는 다른 이른바 고귀한 계급이 있다고 생각했다(적어도 그런 척 했다). 바로 귀족이다. 이 책은 유럽의 귀족에 관한 다양한 상식들을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책이다.





1부는 가볍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흥미를 돋우고, 2부에서는 귀족들의 일상을, 3부에서는 유명한 귀족들의 이야기를 몇몇 인물을 중심으로 풀어놓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4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전반적으로 교양역사서라고 할 만한 구성 가운데서 그나마 조금은 학술적인 내용이 담겨있는 부분이다. 어떻게 귀족이 되고, 귀족이 된 후에 했던 일은 무엇인지 같은 내용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사실 그들이라고 해서 무슨 특별한 피를 따로 타고났겠는가. 오히려 그렇기에 블루 블러드니 프랑크족 전사의 혈통이니 하는 것들에 집착을 하고, 엄청난 양과 진기한 향신료를 들이부은 음식을 준비해 파티를 열고, “수준”을 맞추기 위해 과시적이고 소비적인 삶을 살고 하는 것들은 그런 허구를 둘러싸서 깨지지 않게 하려는 포장재였던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물론 그 안에는 단순히 허위의식이라고 평가할 수 없는 가치들, 이를테면 명예와 충성,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은 책임감과 자선 같은 것들이 있었고, 그것까지 함께 내다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우리 시대의 문제는 다분히 왜곡된 겉치레를 버리면서 그 안의 선한 가치들마저 무시하는 데 있다).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는, 그런 외피가 이미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권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귀족”들이 민주사회 안에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귀족의 특권이라는 건 국가의 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받고, 범죄를 저질러도 종종 무마되거나 가벼운 처벌로 넘어가고, 자기들만의 혼맥과 학맥을 통해 특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계급을 공고화 한다는 부분일 것이다. 우린 이런 무리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혈통에 따라 전통적으로 귀족으로 인정되었던 이른바 대검귀족이고, 다른 하나는 국왕의 임명으로 주로 법관이 됨으로써 귀족계급의 문 안으로 들어갔던 법복귀족이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철폐되고, 얼마 안 가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면서 소수의 친일파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전 국민이 노예화되었던 우리나라에서는 대검귀족에 해당되는 신분은 거의 사라진 것 같지만, 이제 그 자리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새로운 법복귀족들이 차지한 것 같다.


당연히 이런 존재는 민주공화정에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 요소들인데, 이들을 해체하는 일이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이제 혈통보다 더 큰 힘을 가진 자본에 기반해 그들의 권력은 점점 더 공고해져만 가는 것 같다. 중세의 귀족 이야기야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겠지만, 우리 시대의 귀족들의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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