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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의 시학 - 스물네 개의 시적 풍경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3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1.
요약
。。。。。。。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선 우선 “이십사시품”(줄여서
‘시품’)이라는
이름의 시학(詩學)을
다룬 저작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오랫동안 당나라의 ‘사공도’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그 또한 분명한 건 아니다.(저자는
좀 더 후기인 남송 시절로 본다)
그런데
이 작품이 대박을 친 거다.
중국의
여러 문인들은 물론 조선에서도 끊임없이 인용되고,
2차
창작물(그림이나,
비슷한
형식의 시학 책 등)들까지
만들어지기에 이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이십사시품”을
설명하고 분석하는 내용이다.
스물네
개의 장은 우선 원전의 내용을 풀어 놓고,
그것을
그림으로 옮긴 세 사람(우리나라의
겸재 정선과 중국 청나라 건륭제에게 바치기 위해 그린 반시직,
제네방)의
그림을 실사도판으로 옮기고 설명한다.
그리고
각 장의 주요 ‘시풍’을
잘 표현해 낸 또 다른 시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2.
감상평
。。。。。。。
휴가를 떠나면서 책 한 권을 들고 나가려고 책장을 살피던 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
들어온 지 제법 됐는데,
우선
그 두툼한 두께와 한시라는 주제의 어려움 때문에 좀처럼 손이 가지 않던 책이었다.
하지만
여름휴가와 한시라..
뭔가
좀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 아니던가.
큰
맘 먹고 가방에 넣었는데,
결과적으로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한시(漢詩)라는
영역은 즐기기가 쉽지 않다.
우선
한자의 압박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어려우니까.
얼치기로
비슷하게 따라할 수는 있지만,
정말로
그 좋은 맛을 느끼려면 과정과 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인 법이다.
게임의
조작법을 모른 채 아무 거나 눌러서 잠깐은 화면을 움직일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책에 담긴 충실한 번역과 좋은 설명은 이런 어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꼭
고대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다 알지 못하더라도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거니까.)
원전에서
말하는 시풍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와
관련된 그림과 또 다른 시인과 그들의 시들을 함께 접하니,
각
장마다 잘 구성되어 지루할 틈이 없는 교양강좌를 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저자는 무조건적 찬사만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물네
개의 시풍들 중 서로 비슷해서 잘 구별되지 않는 내용들도 있으며,
각각의
시풍의 배열에 긴밀한 논리적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등,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면서 분석해 더욱 신뢰감이 간다.
여기에
저자의 풍성한 지식이 더해지니 말 그대로 하나의 백과사전을 보는 듯했다.
다만 책 후반으로 갈수록 약간 긴장감이 떨어지는 경향이 보인다.
각장의
초반마다 이광사가 쓴 이십사품의 각 풍격이 사진으로 실려 있는데,
흥미롭게도
이 양반은 각 풍격에 어울리는 서체로 이를 표현해냈다.
‘웅혼’
같은
풍경은 흘려쓰는 서체인 초서로,
‘충담’
행서로
쓰는 식.
그런데
저자는 이때마다 그가 사용한 서체를 설명하는 문구를 곁들여왔는데,
후반부
몇 개의 장에서는 이것이 빠져있다.
그리고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설명의 내용도 조금씩 줄어드는 경향도 보인다.
아무래도
긴 시간 연재를 하면서 조금 집중력이 떨어졌던 것은 아닌가 싶은.
더운 여름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아니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차분하게
읽다보면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몇 개는 반드시 나올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