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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자멸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1월
평점 :
1. 요약 。。。。。。。
저자들은 서구문화를 구성하는 여섯 가지 요소들 - 크리스트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개인주의 -이 어떻게 서구문명을 발전시켰는지를 살펴보고, 동시에 그것들이 오늘날 어떤 식으로 약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 당연히 이러한 중심 요소들의 약화는 서구 문명 전체의 약화 내지는 자멸로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 결론부에서는 서구문명이 나아갈 수 있는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제시하면서, 서구인들은 물론 전 인류를 풍요롭게 만드는 문명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그들을 발전으로 이끌어온 좋은 가치들을 다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한다.
2. 감상평 。。。。。。。
기대감을 갖게 하는 제목이었지만, 내용은 생각만큼 선명하지도, 그렇다고 눈이 확 열리는 것 같은 통찰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구문명을 떠받치는 여섯 가지 기둥과 각각의 기둥이 해 낸 기능에 관한 서술은 보통의 인문서적이 담고 있는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결론은 추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책 전체에 걸쳐서 물질적 풍요와 행복과 번영을 동일시하는 시각과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위를 당연한 것처럼 전제하는 (그리고 동양을 구제해주어야 하는 것처럼 여기는) 태도는 영 떨떠름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영 허무맹랑하다거나, 학술적 가치가 떨어진다는 말은 아니다. 어느 한 지역의 문명과 문화를 분석하는 것도 쉽지 않을진대, 서구라는 대단히 크고 다양한 단위들을 가진 대상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를 뽑아낸다는 게 어디 간단한 일이겠는가. 저자들은 이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면서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형식에 치우쳐 여섯 개의 ‘기둥’을 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이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보려고 했던 면은 분명 의의가 있는 부분이다.
서구의 자멸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어느 새 서양인들이 자신들의 문명이 스스로 붕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위협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동양보다 앞서 발전을 거듭했다고 하는 그들이 이제 먼저 노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를 맞닥뜨리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저자들은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문명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상실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엔 역으로 그들의 능력에 대한 과도한 확신이 그들을 무너지게 만드는 건 아닐까도 싶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들이 선진금융기법이라고 불리는 빚 돌려막기로 인해 발생한 것이고, 사실 지금 세계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분쟁들의 뒤편에는 소위 선진국들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다.(중국과 영국은 카다피에게 무기를 팔았고, 그 외 많은 서구국가들은 아프리카나 중동, 아시아의 독재정권을 지원했다.)
이를 교만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해석한다면 지나치게 도덕주의적 역사관이라고 말할 사람도 있겠지만, 길게 보면 다 그렇게 순리대로 가는 게 아닌가.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건 자신감의 회복이 아니라 겸손함의 회복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