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힘보다는 머리의 문제다.

조련사는 심리적으로 우세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국적인 환경, 조련사의 꼿꼿한 자세,

차분한 태도와 흔들림 없는 눈길, 두려움 없이 앞으로 나가는 태도,

이상한 소리(예를 들면 채찍 휘두르는 소리나 호루라기 부는 소리)…….

이런 것들이 동물의 마음에 의심과 두려움을 심어주게 된다.

그래서 동물은 자기 처지를 분명히 알게 된다.

그것은 동물들이 알고 싶어 하는 점이기도 하다.

만족한 이인자가 뒤로 물러서면,

일인자는 관객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소리칠 수 있게 된다.

 

        인도의 폰디체리라는 작은 마을의 동물원을 경영하는 한 사내. 그의 두 아들 가운데 막내의 이름은 피신 몰리토 파텔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피싱(‘오줌 싸는’이라는 뜻)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었던 파텔은 자신의 별명을 파이(π)라고 짓는다. 인도의 정치사정이 돌아가는 것에 불안을 느낀 파이의 아버지는, 동물원을 정리하고 캐나다로의 이민을 생각한다. 그리고 마침내 캐나다로 떠나는 배에 오른 가족은 큰 재앙을 맞는다. 

        배가 침몰해버린 것이다. 졸지에 파이는 구명보트로 던져지고 만다. 태평양 한 가운데서 파이를 제외하고 배에 탔던 모든 이들이 사라지고 말았다. 더더욱 배에는 하이에나 한 마리,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늙은 암컷 오랑우탄, 그리고 뱅골산 호랑이 한 마리가 타고 있었다. 얼룩말과 오랑우탄을 잡아먹고 슬슬 파이를 위협하던 하이에나는, 호랑이에게 힘 한 번 못 써보고 잡아먹히고 만다. 이제 보트에 남은 건 파이와 리처드 파커(호랑이의 이름) 뿐. 

        파이는 그 가운데서 살아남고자 온갖 방법을 고안해 낸다. 배의 선창 안 있던 응급식량(고열량 비스킷)과 물이 담긴 깡통, 그리고 조난을 당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책 한 권. 파이는 호랑이와 한 보트에 있는 것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노와 구명조끼 등을 엮어 간이 뗏목을 만들어 보트와 줄로 연결한다. 그렇게 호랑이와의 위험한 동거가 시작된다. 

        구조의 손길은 도무지 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파이는 그렇게 오랫동안 생활을 한다. 파커의 먹이가 떨어지지 않도록(그랬다간 자신을 덮칠지도 모르므로) 낚시를 통해 먹이를 제공해주고, 간이증류기구를 통해 물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서서히 리처드 파커를 길들이는 작업을 시작한다. 동물원장의 아들로 오랫동안 아버지의 일을 지켜봤던 그였던지라, 동물의 생리에 대해 제법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무려 227일간의 놀라운 생존 사투 끝에, 마침내 파이는 멕시코의 해안에 도달하게 된다. 파이는 살아 남았다. 


        이야기의 초반은 파이의 회상 장면 식으로 구성되었다. 그가 살던 폰디체리가 얼마나 그에게 아늑한 곳이었는지, 그의 어린시절 그에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옛날이야기를 하듯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특히 파이의 어린시절 만난 세 종교에 관한 부분이 심상치 않았다. 파이 자신은 카톨릭과 힌두교, 이슬람교를 동시에 갖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잠시 난감해 하지만, 결국 그가 원하는대로 해 주기로 결정한다. ‘얼마쯤이나 가겠느냐’는 것이 부모들의 생각이었다. 철저하게 세속주의였던 부모들은 종교에 대해 그다지 큰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고, 파이는 종교를 자기 식대로만 해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둘 모두 종교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대 사회의 정신적 혼란과 혼동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부분이다. 파이에게도, 그의 부모들에게도 종교는 단순히 그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시골풍경과 경험들이라 솔직히 약간은 지루하고도 졸린 듯 한 서술들이 끝날 즈음, 갑자기 소설의 어조가 달라진다. 배가 침몰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골의 중산층 소년의 아름다운 추억회상기에서 생존이야기로 변한다. 그리 넓지 않은 구명보트에서 호랑이와 함께 살아야만 하는 절망적인 상황. 더구나 그 곳은 태평양이었다. 스스로는 어떻게 하더라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이는 소년답지 않은 침착함과 현명함을 보여준다. 환경적인 어려움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파이의 모습은, 마치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초반의 약간 지루한 듯한 서술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 부분에 관한 작가의 묘사는 매우 생생했고, 힘이 느껴졌다. 

        표류가 길어지면서 파이의 심리에도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아무와도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파이는 리처드 파커와 정신적인 대화를 하고 있었다. 파커가 없었다면, 파이의 투쟁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 자신을 잡아먹을지 모르는 호랑이를 길들이는 과정을 위해, 아니 생존을 위해 그의 두뇌는 끊임없이 일을 해야 했고, 그런 긴장감은 파이로 하여금 일찍이 나가떨어졌을 수 도 있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도전과 응전’이라는 토인비의 역사발전의 동력이 떠오르는 부분이다. 

        표류의 후반부에서 파이는 마치 정신착란에 이르는 듯 하다. 그 클라이맥스는 식충섬 이야기였다. 알 수 없는 섬에 도착한 파이는 그 섬에서 수많은 미어캣 무리를 본다. 그리고 섬의 군데군데 일정하게 파여진 호수들. 사실 지나치게 일사분란하고 규칙적인 그 섬의 모습에서 이미 그 섬의 심상치 않은 정체가 복선으로 깔려 있는 듯 하다. 밤만 되면 나무 위로 올라오는(본능과는 다르게) 미어캣들을 본 파이는, 그 섬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알게 된다. 섬은 하나의 거대한 생물로, 밤만 되면 유인된 물고기들을 산으로 녹여 섭취를 하고 있었다. 마치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 이야기를 읽는 듯한 착각이 드는 이 환상적인 섬에 관한 이야기는, 파이의 정신세계가 잠시 혼란을 겪는 시기와 겹쳐져 서술이 되기 때문에 과연 사실로서 쓴 것인지, 환상으로 쓴 것인지 읽으면서도 잠시 혼란을 겪었다. 

        육지에 다달은 파이. 그리고 그로부터 사건의 경위를 알아내려는 해운사 소속의 일본인들. 그들은 파이의 이야기를 믿지 않지만, 그 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빼어내어 자신들의 논리로 기록을 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파이는 오랜 표류생활로 인해 약간 정신이 이상한 아이로 비춰질 뿐이었다. 



         이야기의 전후에 실린 작가의 기조설명과 후기 격에 해당하는 부분은 이 소설이 사실에 바탕을 두고 쓰였다는 인상을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기 때문에(이것이 움베르토 에코 식의 ‘속이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 소설의 성격을 쉽게 단정 짓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유이다. 작가는 이 책이 순수한 소설만이 아니며 사실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작가는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해 이겨내는 소년의 불굴의 의지를 이 소설의 주제로 삼은 듯 하다. 그리고 그 계획은 충분히 성취되었다. 독자는 어느새 소설 속의 파이와 일체감을 느끼고, 그의 고생에 함께 아파하고, 그의 성취에 함께 기뻐하게 된다. 그의 정신세계는 육체적인 나이에 맞지 않게 제법 성숙해 있기 때문에, 자칫 ‘아이의 생각’으로 인해 정신적 몰입도가 떨어지는 일은 여간해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리 짧은 소설은 아니지만, 인간 안에 있는 감동의 요소를 깊게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만 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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