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의 신화 범우사상신서 10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림 옮김 / 범우사 / 199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지프의 말없는 온갖 기쁨은 여기에 있다.

그의 운명은 그의 것이다.

그의 바위는 그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조리한 인간은 자기의 고통을 주시할 때

모든 우상을 침묵케 한다.

 

1. 줄거리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책이었다. 알베르 카뮈라는 인물을 단지 좀 어려운 소설가정도로 생각했던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그를 부르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인 것 같다.



    저자는 삶의 의미를 묻는 것으로 책을 시작한다. 과연 이 세상에서의 삶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 세상은 살아갈 만큼 만족스러운 곳인가. 인간들의 삶은 행복한가. 저자가 보는 세상은 이런 질문들에 부정적인 대답만을 준다. 삶은 의미 없는, 매우 부조리한 것으로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런 부조리한 삶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에 과연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의미가 있을까.

    저자는 그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자살이다. 이는 부조리한 삶으로부터 완전히 도피하는 방법이다. 사실 의미없는 삶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하자가 없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하듯이 그런 논리를 극단으로까지 이끌고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도피일 뿐 해결책은 될 수 없다.

    두 번째의 방법은 종교와 같이, 현세가 아닌 내세에 대한 희망, 혹은 미래에는 부조리한 지금의 삶을 조리있게 설명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갖는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역시 회피의 다른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부조리의 상태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고 싶은 세 번째는 현실의 부조리함과 어려움을 정면으로 받아내면서 그 안에서 행복의 요소를 찾아내라는 것이다. 그럴 때에 진정으로 현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신들에 의해 저주를 받아 평생 동안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려야했던(꼭대기로 올라간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오고, 그러면 다시 밀어 올려야만 하는 작업이 영원히 계속되는 형벌이다) 시지프가 신들의 그러한 저주(부조리한 삶)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것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 감상평


    카뮈의 세계관에서 현실 자체는 부조리한 것이다. 비단 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세상에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진화론(혹은 자연주의)에 기반한 유물론적(그리고 이성중심적) 세계관의 결론도 동일할 것이다. 모든 것이 물질일 뿐인데, 거기에 도덕이, 윤리가, 삶의 숭고한 목표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기껏해야 '유전자를 전수하기 위한 것'이라는 전혀 내키지도, 감흥이 일지도 않는 비인간적 '목적(그것을 목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만 남을 뿐.

     나는 그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이 세상이 질서정연하게 창조되었다고 하는 전제를 받아들인다. 비록 타락으로 인해 많은 부분이 망가지고 왜곡되어 부분적으로는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원리적으로 이 세상은 질서와 논리성을 가지고 있는 세계이며, 최종적으로 그것은 다시 회복될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인식이 다른 만큼, 그에 대한 해결책도 많은 차이를 보인다. 카뮈 식의 실존철학적 해결방법은 인간 내부에서 구원의 방법을 찾아낸다. 현실에서 초연한 채 자기 내부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에 따라 살면 족하다는 식이다. 물론 그것도 한 가지 방법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은 단지 현실로부터의 자기 내면으로 도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카뮈가 말하는 종교적 방식은 도피적 성격을 갖고 있지만, 내가 보기엔 오히려 카뮈 자신의 방법이야말로 도피다. 부언하면, 기독교의 구원은 단순히 현실도피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진짜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희망적인 미래상이다.



    오랜만에 머리를 좀 싸매게 만드는 책을 읽게 되었다. 비록 그 내용의 전개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읽어 볼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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