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 카르타고 3부작 1부
로스 레키 지음, 이창식.정경옥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술에 취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렇게까지 일부러 우리들의 이성을 흐리게 하지 않아도

인생살이는 이미 충분히 어둡고 낯설지 않은가.

 

1. 줄거리 。。。。。。。                      

 

     로마가 아직 지중해 전역을 영역권에 넣기 전, 이제 막 이탈리아 반도를 그들의 세력권 아래로 편입시켰을 즈음, 지중해에서 로마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바로 카르타고였다.

     하지만 이미 첫 번째 전쟁(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카르타고는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끝에 인접해 있는 시칠리아 섬에 대한 영유권을 빼앗기고 만다. 카르타고 국내의 정세는 평화파와 강경파로 분열이 되고, 이대로는 로마의 패권주의에 카르타고마저 삼켜질 것을 걱정한 하밀카르는 로마에 배상할 패전배상비를 벌기 위한다는 이유로 스페인지방으로 향해 힘을 기른다.

     새로운 카르타고라는 의미의 ‘카르테헤나’를 건설하고 착실히 군비를 증강시키는 하밀카르. 하지만 그는 평생의 소원인 로마파멸을 보지 못한 채 죽고, 이제 그의 소원은 아들인 한니발에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힘을 비축한 뒤 마침내 수 십 마리의 코끼리들과 수만의 병사를 이끌고 한 겨울의 알프스를 넘어 로마 본토로 침공을 개시하는 한니발.

     알렉산드로스, 피로스와 더불어 고대 3대 무장으로 꼽히는 한니발의 여정이 회고록의 형식으로 창작되어 나왔다.

 

 

2. 감상평 。。。。。。。                    

 

     한니발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에 관한, 나름대로 생동감을 부여하려고 노력한 소설로 보인다. 고대 로마에 엄청난 타격을 주고, 이후 로마의 국가정책에 근본적인 변화를 준 인물로서의 한니발은 역사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인물임에 틀림없다. 연전연승의 상승장군이자, 그의 적이 당시 한창 발흥하고 있는 로마군대라는 점은 그의 영웅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영웅이라는 소재야 말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꺼리가 아닌가.

 

     이 책은 한니발의 ‘회고록’이라는 형태로 쓰였다. 다시 말해 저자의 시각은 철저하게 한니발 중심적이다. 당연히 저자는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을 미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마련이다. 흔히 ‘포에니 전쟁’은 로마법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질서’에 대항하는 ‘야만적인’ 카르타고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는 감이 없지 않은데, 이 책은 적어도 그런 부분에 관한 오해를 제거하는 데 한 가지 목적을 두고 있다. 카르타고의 입장에서 보면 로마야 말로 야만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적어도 책의 초반 몇 구절은 매우 직접적으로 그런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의 의도는 엉뚱한 데서 깨지고 만다. 소설 안에 되살아난 한니발의 모습은 시종일관 로마에 대한 복수심만으로 불타 있는 인물이다. 이 복수심에 타당한 이유가 있다면 좀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거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는 그저 아버지로부터 로마에 대한 복수심을 물려받았고, 종종 그 이유를 묻는 주변의 질문에는 ‘무시’로 일관하고 만다. 오히려 이 부분이야말로 한니발의 ‘야만적’인 면모를 보여주지 않는가.

     이런 무조건적인 증오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부분이다. 저자도 그 점을 눈치 챘는지, 중간에 한니발의 아내가 로마인들에게 능욕을 받는 장면을 삽입하기는 하지만 솔직히 너무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소재 자체는 충분히 흥미를 끌만 하지만, 저자의 서술은 지나치게 현대적이며, 주인공에게 시종일관 맹목성을 부여함으로써 오히려 서술에 신뢰도나 사실성이 떨어진다.

 

     전쟁에 관한 묘사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으며, 대개는 그저 맞부딪히고, 엄청난 전투력을 가진 한니발의 중무장기병대가 적들을 처치했다는 식의 반복만 보인다. 그렇다고 한니발의 전략가적인 면모를 충분히 드러내지도 못하고 있어서, 그는 그저 복수심에 불타서 시종일관 로마를 멸망시키고자 하는 평범한 무장으로 그려지고 있을 뿐이다. 

     전쟁과 전후처리에 대한 묘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오직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고대의 보복 방식들’ 뿐이다. 손목과 팔다리를 잘라내고, 코와 귀를 베어내며, 사지를 찢어죽이고 포로를 거세하며 생매장하는 모습들은, 일 년이 멀다하고 세계 각지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미국인들의 성향에는 잘 맞는지 모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영 질색이다.

     고대 이야기에 대한 지나치게 현대적인 이야기. 점수로 치면 10점 만점에서 4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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