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언뜻 기계적이고, 완벽할 것만 같은 “규칙”이라는 것에, 실은 얼마나 많은 예외적 상황과 판단이 개입될 수 있는지를 오랜 역사적 추적을 통해 잘 보여준다. 하나의 규칙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은 지난한 시행착오와 반발, 그리고 전국가적인 교육과 계몽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현대국가에 법치주의라는 이상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사람들의 희생이 필요했는지.
그런 차원에서 최근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대통령과 폭동까지 저지르면서 그런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반란 옹위세력들의 움직임은 굉장히 우려스럽다. 우리는 법치주의가 꽤나 안정적이라고 착각하지만, 그건 그 사회 구성원들 대다수가 그 체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고 있을 때만 작동할 수 있는 섬세한 체제다. 대통령부터 나서서 사법부의 영장조차 거부하는 식으로 법을 무시하고, 나아가 메뚜기 같은 폭도들이 날뛰기 시작하면 그 안정적이라고 느껴지던 체제도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지난 20세기 세계 곳곳에서 비슷한 일들은 수도 없이 일어나곤 했다.
우리는 때로 상식에 맞지 않은 판결을 내리는 판사들을 보면서, 차라리 판사들을 AI로 바꾸는 게 낫겠다는 식의 말을 할 때가 있다. 판결을 온전히 기계적 결정의 영역으로, 그러니까 알고리즘으로 치환하고 싶다는 의미다. 하지만 애초에 그런 것은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법과 규정은 그런 식으로 구성되거나 작동되는 게 아니니까.
뭐든 깊이 들어가 보면 애매하고 모호한 영역이 잔뜩 나타난다. 그건 물리학에서 양자라는 별종을 만났을 때와 비슷한 과정인 것 같다. 덕분에 책을 읽어나가는 게 쉽지는 않다. 특히나 제목 탓(?)도 좀 있는 것 같은데, 제목만 보고서는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짐작도 안 갈 뿐더러, 책의 구성 자체도 각 장의 내용은 이해가 되는데 장별로 어떤 연계를 지니고 있는지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다 읽고 나면 이게 규칙의 역사에 관한, 하지만 크게 보면 연대기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장별 옴니버스식 구성이라는 걸 알게 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