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옆 미술관 - 타자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구미정 지음 / 비아토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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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뽑았다. 교회 옆 미술관. 뭔가 2000년대 초반 추억의 영화 중 하나였을 것 같은 제목이다. 책은 성경 속 장면과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곁들여 주면서 설명해 가는 방식을 취한다. 딱 제목 그대로. 비슷한 기획으로 나온 책도 몇 권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이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 저자는 성경 속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여성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글쓰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고, 저자 자신도 여성이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에 주목해보자는 시도는 뭐라 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책 가운데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쓴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이 있었다. 또, 최근에 읽었던 레베카 맥클러플린의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도 나름 짜임새 있게 쓰인 책이었다. 거기에 이 책은 명화들을 함께 싣기까지 했으니 잘만 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책이 될 법도 했다.


다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한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잡지의 연재되는 글의 경우 분량의 제한도 있었을 테고, 그래서 논지도 굉장히 압축적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문일까. 몇몇 꼭지의 글들은 확실히 논리 전개가 좀 무리하다 싶은 경우가 보인다.


보통 각 장의 글들은 도입부와 성경 본문의 소개, 그리고 그림에 관한 언급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도입부와 성경 본문으로의 연결이 썩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래도 개중에는 알아둘 만한 상식 같은 것들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번엔 결론부의 주장이 살짝 비틀려 있는 경우도 보인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했던 살로메에 대해 굉장히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 어린 아이가 뭘 알았겠느냐며, 어머니의 사주에 의해 하는 수없이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 화가의 그림 속 살로메의 표정이 어두운 것에서 마치 엄청난 증거라도 얻은 듯 “부패한 권력”이 휘두르는 “야만적인 폭력”의 “희생자”로 그녀를 성화시킨다. 그런 살로메를 비난하는 것이 마치 희생자를 “할퀴는” 일인 양 비난까지 한다.


비단 이 항목 하나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마리아에게서는 “순종적인 여성상”을 벗겨내려고 애쓰고, 룻과 보아스를 다룬 장의 제목에서는 ‘자매애’에 대한 찬사가 붙어 있다. 이게 맞나 약간 당황했는데, 앞서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나온 헐거운 해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여성은 언제나 희생자이고, 피해자이고, 옳은 쪽이라는 고정관념의 발현이랄까(앞서 추천한 두 권의 책들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다).





물론 그렇다고 책의 내용 전체가 영 눈에 안 들어왔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좋은 통찰을 보여주는 장들도 있었고,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에서 본문을 비춰주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글의 짜임새가 좀 아쉬웠다. 다른 관점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본문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팬픽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잔뜩 실려 있는 컬러 도판을 보는 맛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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