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역설 -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박정숙 옮김 / 에코리브르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인류는 지난 300여 년 동안 전반적으로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이 발전의 열매가 세계 전체에 골고루 분배되지는 않고 있지만, 그 전반적인 발전의 양상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적어도 행복하다고 여기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다.


책의 첫 두 장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아지고 있는 지표에 관해 말하고 있다. 몇몇 통계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과 조금 달라 살짝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오늘날 고등학교 졸업자 중 2/3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고, 고등학교 중퇴자 비율은 10% 이하라고 한다. 반면 1940년대까지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하고 일을 시작했다. 또, 미국인의 14% 정도만이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는데, 그 14%도 전혀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그에 반해 우리는 미국의 공교육은 사실상 무너졌고, 의료보험 체제도 비참할 정도라는 식의 과장된 수사들을 쉽게 접해오지 않았던가)


그러면 왜 현대인들은 이렇게 발전한 사회에서 살면서도 그토록 불행하다고 느낄까? 저자는 다분히 심리적인 차원의 요인들이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은 과거 사람들은 앞으로 좀 더 많은 것을 갖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기에 현실의 불편함을 버텨낼 수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갖고 있어서 그 이상의 것을 얻겠다는 기대를 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을 꼽는다. 또, 이미 이룬 성과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질 지도 모른다는 붕괴 불안 심리도 작동하고.


한편으로 현대인들은 불평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있다. 언론은 범죄 현황에 대한 과장된 보도를 즐겨하고, 보통 사람들은 따라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삶을 사는 부자들의 생활에 관한 정보가 쉽게 퍼지는 것도 불평을 늘리는 원인 중 하나다. 사람들은 과거 그 어느 시대보다 오늘날 일반적으로 더 사치스러운 삶을 추구하는데, 당연히 모두가 그 기준치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말한다. 우리가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많은 것들(사랑, 우정, 존경, 가족, 지위, 재미)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이고, 어떤 것에 가격을 매길 수 없다면 그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통계에 따르면 어느 정도의 수입 증가는 행복감을 늘려주지만, 연간 약 1만 달러의 수입을 전후해서 그 효용감은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즉 돈은 행복의 결정적인 요소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결론으로 저자는 우리가 물질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또, 좀 더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감사와 용서의 중요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심리적인 해결책만 제시하는 건 아니다. 책의 후반 두 장 정도는 최저임금을 좀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대기업 CEO들이 악랄한 한탕주의에 대한 강한 비판도 보인다. 또, 국제적인 관계에서는 이른바 공정무역이나 저개발국가에 대한 관세 인하 같은 정책의 필요성도 주장한다. 물론 이 부분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비판과 지적이긴 한데,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와는 약간 이질적이라는 느낌도 준다.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의 지면을 심리적인 것에 할애해 왔으니까 말이다.


“진보의 역설”이라는 책의 제목은, 경제적으로는 분명 크게 상황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진보 때문에 사람들이 오히려 불행을 느낀다는 의미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발전을 하려고 하는 걸까? 어떻게 보면 이 문제는 물질적인 것에만 지나치게 집착해 온, 물질이 전부라고 생각해 온 지난 한 세기 인류의 주류적 사고가 낳은 부작용일 지도 모르겠다. 다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질적인 차원에만 집중하는 건(물론 우리는 물질적인 번영도 필요하다) 최종적인 답은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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