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빌리의 비참
알베르 카뮈 지음, 김진오.서정완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알베르 카뮈라는 이름은 한 번쯤 들어봤을 사람이 많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니까. 가난한 집안의 아홉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던 카뮈는 건강 상의 문제로 교수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신문 기자 생활을 했는데, 이 책은 그가 기자 생활을 하던 시절 썼던 열한 편의 기사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책 제목에도 나오는 카빌리는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던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한 지역의 이름이다. 변변한 자원도 없고, 무엇보다 식량부터가 부족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옆에서 취재하면서 생생한 어조로 그 비참함을 묘사한다.


하지만 이 묘사는 선정적이지 않다. 흔히 빈곤 포르노라고 부르는, 가난을 일종의 시선을 끌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대신 작가의 글에는 분노가 배어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멍청한 정책들, 사려 깊지 못한 행정 담당자들,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부패와 불합리한 규제들이 그 분노의 대상이다.


식민지에서 재배되는 작물에 대한 적절한 가격을 매기지 않는 당국, 산림법으로 땔감조차 채집하지 못하게 막는 당국, 바닥에 떨어진 죽은 나뭇가지를 숯으로 만들어 팔려고 나갔다가 판매 허가를 못 받았다고 모든 걸 압류 당하는 농민들, 심지어 공공사업에 참여해 받은 쥐꼬리만 한 보수에서 밀린 세금부터 원천징수해 뺏는 빌어먹을 관행들까지...





문제는 카뮈의 시대로부터 10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이런 관행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언제나 돈은 있는 사람들에게 모이고,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진 기회는 바늘구멍처럼 좁기만 하다. 온갖 규제들은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게 도울 뿐,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힘든 사람에게 법은 가혹하기만 하다.


책에는 이런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나름의 대책을 고민해 제안한다. 단지 문제를 지적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진짜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저런 보조금은 아래로 내려가는 동안 어디론가 스며들어 정작 필요한 사람들의 손에 주어지지 않으니, 주민들에게 적절한 수입이 생길 수 있는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고, 이를 지원하는 쪽으로 예산을 사용하자는 제안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카뮈는 이 현실을 차곡차곡 고발한다. 물론 그가 자신을 식민지 주민들과 동일선상에 두기 보다는 제국주의 국가 쪽에서 정체성을 찾았다는 점을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책 말미에 적혀 있듯, “식민 정복을 정당화할 수 있는 최소한의 구실은, 정복당한 민족이 정체성을 지키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라는 지적은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더라도 기억해 둘만한 문장이다. 오늘의 언론은 이런 결기가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