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이 책이 본편인 세 권을 다 쓴 후에 만든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이 책을 먼저 내고, 그 후에 본편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또 삽화에 직접 붙여 놓은 글들을 보면, 앞으로 자신이 쓰고 싶은 내용의 전체 윤곽은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충분한 자료 조사를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 작가의 글쓰기 방식이 묻어 나오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건 저자의 사정이고, 십자군 역사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독자라면, 단순이 여기에 짧게 실린 코멘트만을 가지고 전체적인 윤곽을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을 것 같다. 차라리 내 경우처럼 본편을 모두 읽은 다음 이 책을 보면서 앞서 읽었던 내용을 회상하는 식이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저자가 매력을 느꼈던 도판들은 판화 형식으로 제작된 것들이다. 당연히 흑백이지만, 의외로 농담이 들어가서 입체적인 느낌도 준다. 간략한 캐리커처 보다는 세밀화에 가까운 느낌의 삽화들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뭔가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렸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그림이 잔뜩 실려 있는 책을 보면, 더구나 그 내용이 자신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다면 뭔가 책을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기도 할 것 같다.
뭔가 새롭고 대단한 내용이 담겨 있는 건 아니지만, 가볍게 전체를 훑어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