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 K. 체스터턴의 영원한 사람 G. K. 체스터턴의 영성 고전 시리즈 2
G. K. 체스터턴 지음, 송동민.서해동 옮김 / 아바서원 / 202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신학자도 아니고, 20세기 초반 영국에서 활동한 소설가였던 체스터턴을 기억하는 게 평범한 일은 아니다그나마 어린 시절 몇 권 읽었던 브라운 신부 시리즈’ 추리소설들을 통해서 어렴풋 기억은 하고 있었지만작가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갖게 된 건 역시 C. S. 루이스 때문이었다루이스는 체스터턴의 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실제로 그의 글에서는 체스터턴의 자취가 짙게 느껴지는 부분이 자주 발견되기도 한다.


그런 체스터턴의 글을 몇 해 전부터 아바서원에서 한 권씩 번역해 내주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이전에 나왔던 책들은 주로 그의 소설들이었다면이 책과 앞서 읽었던 정통은 비평가이자 사상가로서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그의 면모와 생각들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이다이 책의 경우 영어 원서를 알라딘에서 무료 전자책으로 풀어주어서 다운받아두었지만확실히 언어의 장벽 때문에(내용이 내용인지라 쉬운 문장들도 아니었다방치해두었다가이렇게 한글번역이 되어 나오니 보이는 대로 구입했다가 몇 년이 지난 이제야 손에 들었다.



이 책은 일종의 역사책이다하지만 무슨 연도를 나열하면서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를 서술하는 내용은 아니고최초의 인간으로부터 오늘날까지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그리고 이 역사관에서 두드러지는 건 저자의 기독교적 관점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첫 번째는 인류 일반에 관한 설명이고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에 관한 설명이다그 기준은 성육신 사건이다.(일단 여기만 봐도 기독교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난다.)


저자는 20세기 초에 유행이었던 진화론적 관점을 강렬하게 비판한다정확히 말하면 진화론적 역사관그러니까 인간 역사의 여러 부분(문화종교사회질서와 구조 등)이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되었다는 식의 단순한 해석에 대한 비판이다이 때 비판의 핵심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선사시대의 경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란 고작 동굴 속 사슴 그림 몇 개 정도가 전부다하지만 학자들은 이것들을 가지고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진화론적 역사가설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곤 한다그거 오래된 것은 원시적이고 조악한 수준이었을 것이라는 선입관이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걸 방해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이런 선입관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저자는 어린 아이의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그리고 그런 관점으로 바라본 신화는 단순히 미개한 원시인들이 가진 조악한 심리적 환상이 아니라뭔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한 지식과 일종의 예측이 담겨 있을 수 있다쉽게 말해 저자는 인류의 신앙이 점차 진화되어왔다는 통속적 가설에 반대해처음부터 그 안에 중요한(그리고 핵심적인것이 계시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후반부는 기독교의 역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보는 내용이다이 역시 기독교는 콘스탄티누스와 같은 몇몇 권력자들의 비호로 인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식의 통속적인 설명을 비판하면서이단들과의 투쟁여러 차례의 쇠락과 부활을 경험하면서 오늘까지 이를 수 있었다여기에는 단지 외부적 원인만이 아니라 기독교 내부적 요소가 있었다그 안에 진짜 생명이 있었던 것.



책의 내용도 흥미로웠지만문장의 풍미도 좋다어떻게 보면 책 전체가 농담으로 채워져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자유자재로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이 돋보인다물론 여기서 말하는 농담이란 실없는 말의 낭비가 아니라사안을 유쾌하게 묘사하는 쓰기 방식인데당연히 어느 정도의 내공이 없다면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덕분에 읽는 내내 머리가 좀 아프면서도 유쾌한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