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좌파생활 - 우리, 좌파 합시다!
우석훈 지음 / 오픈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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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에게 ‘좌파’냐고 물으면, (우선은 그 무례함에 한 마디를 할지 모르지만) 썩 흔쾌히 그렇다고 인정할지 모르겠다. 우선 그 용어에 담긴 오랜 역사적, 사회적 무게감을 함께 질 여유도 없고, 사실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좌파’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 우석훈은 자신 있게 스스로를 ‘좌파’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흔히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데,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구분이라는 거다. 좌파면 좌파고 우파면 우파지, 진보와 보수가 뭐냐는 말.


흔히 말하는 ‘자칭 보수 정치인들’이 상대편을 비난하는 맥락에서 ‘좌파’라는 용어를 운운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보수’가 아니듯, 그들이 말하는 ‘좌파’도 진짜 좌파는 아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진보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말하고, 보수는 뭔가를 지키는 것을 뜻한다.


문제는, 진보는 어디로 나가야 할지 자신들도 모르는 것 같다는 거고, 보수는 뭘 지켜야 하는지 역시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야.. 재미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좌파는 거의 멸종 상태다. 정치인들 중에 (심지어 정의당 의원들도) 스스로를 좌파로 소개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앞서 말한 ‘진보’가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좌파는 우리나라에서 한 번도 집권을 해 본 적이 없고, 어떤 정치적 채무나 책임도 없다는 데까지 가면 살짝 웃음이 나온다.


좌파는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며 나온 정치세력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진보’는 그런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그냥 적당히 고쳐 쓰자는 주의다. 그렇다면 그게 ‘보수’와 뭐가 크게 다르단 말인가.


여기에서 마침내 ‘개혁적 보수’라는 형용모순에 가까운 표현이 가능한 이유를 깨달았다. 누군가 말했던 ‘극중주의’가 정치적 포지션의 표현일 수 있는 이유도 비슷하다. 애초에 보수와 진보는 서로가 서로를 향한 대응 포지션으로의 의미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최근 대선에서 민주당이 가장 민주당답지 않았던 이재명을 내세우고도 패배한 이유가 어쩌면 여기에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보 정권’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전도, 수단도 없는 데다, 대통령과 함께 들어온 공무원들은 자기 정치, 자기 밥그릇 챙기기, 자기 사람 꽂아 넣기를 수없이 하고 있었다는데, 뭐 말 다하지 않았나.



뭐 그게 별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소위 ‘한국식 민주주의’가 그런 모습이라면 어쩌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런 식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 소위 진보 세력이 집권하는 동안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보수 정권은 당연하게 해결할 생각이 없었던) 자본주의의 모순은 결국 터져 나왔고, 그 결과가 최근 젠더 이슈에 과몰입해 극우화 되고 있는 1, 20대 남성들이다.(개인적으로는 여기에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이 10대 꼴통들은 곧 20대 꼴통이 될 것이고, 그들은 내가 죽기 전에 30대 꼴통이 되어 이 나라의 중추가 될 테니까.)


저자는 태생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꼭 집권 세력까지 되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는 문제 해결의 이론적, 실질적 기여를 해왔던 좌파가 사라짐으로써, 우리 정치판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여기서 저자의 조심스러운 바람을 살짝 엿보게 된다. 지금은 멸종된 좌파지만, 언젠가는 (그리 가깝지는 않겠지만)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들이 그러하듯 좌파가 의제를 제안하고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는 데 참여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자본주의는 영원히 고도성장을 할 수 없고, 언젠가는(이미 우리는 그 지점에 거의 다 왔을지도 모른다) 방향전환을 해야 할 텐데, 지금의 진보와 보수는 그런 일을 할 능력이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걸까. 언젠가 좌파가 지금보다는 폭넓은 공감을 얻을 날이 돌아올 것이고, 헤겔의 역사적 변증법의 그 날을 그저 기다리면 되는 걸까. 물론 사상이라는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무에서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누군가 그것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수고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누가 애써 그 일을 하려 하겠는가. 아무 보람도, 눈에 보이는 성과도 없는데.


그래서 우석훈은 취미로서의 좌파생활을 제안한다. 무겁고, 심각하며, 심지어 무섭기까지 한 투쟁과 혁명으로서의 좌파 말고, 생활 속 좌파, 좀 더 즐겁고 명랑하고 슬기로운 좌파생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누구 하나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자신은 그렇게 살겠다는 결심과 함께. 이쯤 되면 장기전 모드로 잔뜩 웅크린 자세다. 뭐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조금은 평등한 세상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노력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막을 필요도 없고.


다만 책을 다 읽고도 저자와 같은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까진 들지 않는다. 일단 신나게 현 정치계를 까긴 했는데, 왜 오늘날 좌파가 거의 멸종상태가 되었는지 그 내부적 성찰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과연 그게 한 때 좌파였던 사람들이 다 양지를 찾아 진보가 되었기 때문이라거나, 독재자들이 좌파세력을 탄압했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다 설명이 된 걸까?


시야를 조금 넓혀 보면 세계적으로 극좌파들이 일으킨 테러라든지, 과격투쟁으로 인한 피해도 결코 적지 않으니까. 좌파의 유산을 상속 받으려면, 부채도 함께 받는 게 공평하지 않나. 물론 우리나라로 국한시켜 보면 우파 독재가 훨씬 큰 문제를 일으켜왔지만.



시종일관 한 발 물러서 있는 사람이 갖는 여유가 보여서 유쾌하게 읽을 수 있다. 현실에 발을 내딛고 있으면 아무래도 투쟁적이고, 날카로워지기 쉬운데 그런 게 없다. 글도 최대한 명랑하게 쓰려고 애쓰고 있는데다, 재미있게 쓸 줄 아는 작가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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