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방식 - 서로 기여하고 번영하는 삶에 관하여
베론다 L. 몽고메리 지음, 정서진 옮김 / 이상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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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인류가 가지고 있는 분류학 기준에서 생물로서는 가장 하위에 있는 것들이다. (플랑크톤이나 바이러스를 어떤 식으로 분류하느냐에 따라 조금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우린 인간과 같은 포유류, 그 중에서도 영장류를 가장 고등한 위치에 올려놓고, 파충류와 양서류를 그 아래에, 다시 다양한 종류의 식물종들을 그 아랫단에 배치한다. 소위 진화론적 분류체계다.


때문에 우리는 식물에 관해 모르는 게 많다. 적어도 나와 비슷한 정도는 되어야 상대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관심을 두는 인간의 특성이다. 식물은 조용해서 (당연히) 말을 하거나, 최소한 고양이나 개처럼 울부짖지도 않고, 우리에게 애교로 보이는 행동을 보이지도 않는다. 뭔가 불편하다고 해서 어딘가로 떠나버리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홀로 말라버릴 뿐이다. 무슨 독초를 먹지 않는 이상, 좀처럼 식물에게 ‘공격당하는’ 일도 없다(사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우리의 공격에 대한 방어기제다).


식물은 조용할 뿐만 아니라 느리고 재미가 없다. 그리고 기르는 동안 할 일도 별로 없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다. 물론 좀 더 긴 텀을 두고 관찰한다면 분명 달라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이 바쁜 현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미생물학자인 저자가 쓴 이 책을 보면, 식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조용하고, 정적이고, 재미없는 이웃이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장소를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식물은, 대신 환경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다양한 조치들을 취한다(1장). 같은 종이라고 하더라도 자라는 장소에 따라 선택하는 전략은 다르다. 심지어 식물은 종종 자신이 처한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한다(4장). 화산이 터지고 대규모 산불이 나 황폐화된 땅도, 일단 식물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 점차 생태가 회복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식물의 뿌리와 미생물 사이의 공생 관계는 이 부분에서 열일을 한다.


뿐만 아니라 식물은 생존을 위해 다른 개체와 경쟁을 하기도 하고(2장), 때로는 협력을 하기도 한다(5-6장). 우리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어떤 종들은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땅 속 뿌리들이 연결되어 서로에게 필요한 영양소 같은 것들을 주고받는다. 일부 식물들은 다른 종들 끼리 성장에 유리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꽤나 역동적인 식물들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화려하지만 연약해 보이는 꽃들, 온통 잘 구분이 되지 않는 그린 컬러의 옷을 입고 그저 ‘배경’으로만 작동하는 것 같았던 풀과 나무들도, 실은 굉장히 치열하게 생존을 위한 도전과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건 뭐 쉽지 않는 게 없다.



여기서 자연히 그러면 우리(인간)가 배울 점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데,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식으로 논의를 이끌어 간다. 각각의 장 말미에는 그 장에서 설명한 식물의 특성과 거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짧게 언급하는 식의 구성을 반복한다. 식물학과 인문학의 결합이랄까.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식물의 모습에서 저자는 시간을 들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적절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는 교훈을 읽어낸다. 생존을 위해 다양한 위험부담을 감수하는 전략을 취하는 데에서는, 우리가 가진 자원과 에너지를 전략적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배우는 식이다.


물론 이런 식의 적용점을 찾아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서 저자가 이끌어 내는 사회적 전략, 인간관계에서의 교훈 같은 것들은 식물을 관찰하기 전에도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저자는 이미 알고 있는 교훈을 식물들의 모습에 덧씌워서 말하고 있다는 뜻이다.


식물은 우리에게 그런 전략이나 교훈, 혹은 도덕법칙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다. 식물(혹은 어떤 동물 종)이 이렇게 하니까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 전개는 딱히 당위성을 입증하기가 어렵다. 사실 그것들이 그런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사실 우리는 뭔가를 몰라서 제대로 안 하는 게 아니지 않던가.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책 자체는 좋다. 무엇보다 표지도 예쁘고, 평소 잘 알 수 없었던 식물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는 측면에서도 만족스럽다. 조금은 과하게 큰 이야기로 넘어가려고 시도만 하지 않았다면 좀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다. 따뜻한 봄볕을 맞으면서 읽기에 딱 적합할 것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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