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두교사 깊이 읽기, 종교학이 아닌 역사학으로
이광수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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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힌두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종교다인도 사람들의 절대 다수가 믿고 있는 종교니 만큼그 인구만 해도 적지 않지만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나 불교이슬람교 같은 주요종교의 목록에 잘 오르지 못하는 것 같다물론 이슬람교도 우리나라에 그 인구는 많지 않다고 하지만그래도 워낙에 언론에 (조금은 나쁜 이미지로자주 오르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힌두교보다는 익숙한 느낌이랄까.


그렇게 잘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오해가 달라붙기 마련이다어떤 건 부정적인 차원에서또 어떤 건 옹호나 보호를 위해서 생겨나는 말과 생각이지만어쨌든 실제를 감추고 가린다는 차원에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힌두교에 관해서 그런 오해들이 많이 있다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로 저자는 힌두교가 온전히 영적인 차원에만 집중하는 신앙체계라는 생각을 꼽는다책 후반부에 소개되는 내용이지만이런 오해는 오리엔탈리즘에 기초한 동양의 후진성을 강조하려는 생각에서 시작했고후에는 동양의 신비한 종교에는 뭔가 있다는 식의 낭만적 착각과 윤색으로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주장은 힌두교는 절대로 정신문화나영적이기만 한 신앙이 아니며오히려 초기부터 매우 물질적인 신앙체계였다는 점이다사실 4천 년에 가까운 역사를 가진 종교가 어떤 변화도 없이 이어져왔다고 하면 그 또한 진실과 멀어질 터이 책은 힌두교의 오랜 역사를 훑어가면서 그 안에서 나타났던 다양한 사상들과 변화들을 정리해 내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초기 힌두교 신앙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신들로부터 더 큰 것을 얻어내고자 하는지극히 물질적 바람이 형식화된 것이었다이 때 제의를 주관하던 계층인 브라만들의 지위가 상승했다종교적 권위로 시작한 브라만들의 힘은 점차 사회적으로도 높아졌고이에 대한 반발이 사회적 변화와 함께 일찍부터 나타났다저자는 그 대표적인 예로 붓다의 불살생’ 주장을 꼽는다.


브라만 중심의 제의 종교에서 제물이 되는 동물의 도축은 중요한 부분이었다그러나 이건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가능했을지 모르나농업생활을 시작하면서는 점차 농사에 중요한 소를 도축하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는 것저자는 붓다의 불살생의 핵심에는 농사의 도구가 되는 소를 도축하는 일에 대한 저항금지라는 새로운 농업 윤리가 깔려있었다고 말한다신선한 해석이었다.


흥미로운 건 이후 힌두교의 행보다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불교로 독립하거나비슷한 시기 비슷한 관점으로 제의중심적 종교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자이나교 등으로 분화했다하지만 이 이후에도 제의를 중심으로 한 물질적 기복신앙은 여전히 힌두교의 중요한 한 축으로 남는다그리고 여기에 그치지 않고 탈속을 주장하는 불교나 자이나교의 가르침 역시 힌두교로 흡수해 버린다(실제로 일부 사람들은 붓다 같은 이들 역시 힌두교의 스승으로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아니단순히 흡수하는 수준이 아니라중요한 축으로 삼아버렸다.


시간이 좀 더 흐르면서 북부에서 시작된 힌두교 신앙이 남부로시골로 퍼져가면서 토착신앙과 만나는데이번에는 다시 그 토착 신앙마저 흡수해 버렸다(대단한 소화력이다). 애초에 베다라고 불리는 힌두교의 고전적인 경전은 신들의 성격에 대해 모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바로 이 점을 고리로 이절적인 신앙과 신들까지 묶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힌두교는 철저하게 탈속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니었다오히려 강한 현실지향성을 가지고 있었다화려한 제의를 가진 힌두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많은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했고자연히 세속의 군주나 부유한 이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서양인들이 낭만적으로 그리는 연약하고비물질적이며신비한 영적 종교라는 그림은 근래에 만들어진 허구였다.


현대에 들어 힌두교는 크게 두 가지의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하나는 신힌두교이고 다른 하나는 힌두뜨와 운동인데전자가 앞서도 언급한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해석된 정신적 종교로서의 힌두교라면후자는 힌두교에 관한 신화적 이해를 바탕으로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격한 정치운동이다가끔 해외뉴스로 전해지는 인도의 과격한 힌두교신자들이 바로 이 힌두뜨와 운동과 관련되어 있다.

 


한 종교의 수천 년 역사를 단 번에 읽어내는 게 쉽지는 않다더구나 조금은 생소한(그리고 긴이름들이 잔뜩 등장하면 더더욱 장벽이 생기는 느낌이다하지만 힌두교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좀 더 큰 장벽은그것이 하나의 일관된 교리체계를 유지보수해 온 게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힌두교라는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초기의 유목민족 시대의 그것과 농경시대의 그것은 사뭇 다른 모양이었고현대 인도의 힌두교와도 다른 점이 잔뜩 있다당장 힌두교인들이 숭배하는 신들의 지위나 역할부터가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되어 왔다.


여기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런 교리나 전체적인 그림을 아예 배우지도 못한 채그저 전통적인 신앙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니이 책에서 저자가 정리한 힌두교의 축을 부정하는 힌두교인들도 어딘가에 있을 지도 모른다.


상황이 이러니 이 한 권의 책으로 힌두교의 역사를 단번에 파악하는 건 힘든 일이다겨우 윤곽만 잡았달까하지만 그래도 책을 읽기 전보다는 힌두교에 관한 이해가 훨씬 깊어졌으니 보람은 있다힌두교에 관해 진지하게 읽어보고자 한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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