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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인문학 - 인간 욕망에서 사회 시스템까지 뉴노멀을 바라보는 인문학적 시선
안치용 지음 / 김영사 / 2021년 2월
평점 :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휩쓴 지도 1년이 훨씬 지나버렸다. 대규모 전염병으로 인한 집단 격리와 셧다운, 국지적이고 세계적인 이동의 중단이 동시에 일어났고, 그렇게 사람과 물건의 이동과 운반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에도 문제가 생겼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해서 (비대면 수업을 이어오긴 했으나) 대규모의 학력저하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도 하니, 이번 문제의 여파는 제법 오랫동안 우리를 괴롭힐지도 모르겠다.
문제가 복잡할 때는 좀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급조된 해결책을 내어놓는 식으로는 누더기밖에 만들 수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회 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상황을 보는 데는 인문학적 관점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염병을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 안에서 읽어내는 것이다. 이 책이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쓰였다.
저자는 우선 역사적 관점에서 전염병을 이해해보고자 시도한다. 중세의 흑사병이 어떻게 사회체제를 변화시켰는지, 또, 근대 초입에서 일어난 ‘마르세유 흑사병’이 일어난 원인을 추적함으로써, 대규모 전염병이 갖는 힘과 인간의 탐욕이 사태를 어떻게 악화시키는지를 한 눈에 읽어낸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예시도 아니다. 과거는 늘 반복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내일의 사건이 어제와 전혀 상관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역사를 읽어가며 어떤 일이 벌어질 때 어떤 것들이 계기가 되고, 문제가 확산되도록 만들었던 실책이 무엇이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이유는 무엇인지를 살펴야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이런 역사적 관점을 지닐 수는 없기에, 21세기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를 잡겠다고 알코올을 들이마시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도시의 방역망을 뚫어 마르세유 흑사병이 퍼지게 만든 탐욕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이 애써 쌓아 놓은 방역 전선을 여기저기에서 뚫고 있다.
책의 2부는 코로나가 확산되고 있는 오늘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초기부터 여러 나라들에서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시위들이 일어났었다. 여기에는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있었을까. 또,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격리와 ‘고립된 자아’라는 근대의 자아상을 비교하는 글도 있고, 대규모 재난이 일어났을 때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취약계층이라는 지적, 팬데믹 못지않게 큰 문제를 일으키는 인포데믹이라는 재앙이 끼치는 결과들 등등.
물론 이런 고찰들이 당장의 코로나 사태를 해소하는 데 무슨 직접적인 해결책을 알려주지는 않겠지만,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문제를 좀 더 깊이 이해하는 데는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뉴스에는 이런 것들이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은 개인적 경험이나 선동적인 어구들에 휘둘리며 대책 없는 불평만 남발하곤 한다. 문제는 그 피해가 고스란히 그런 대부분에게 돌아온다는 것.
코로나는 산불이다. 작은 불이야 중구난방 어떻게든 물만 뿌리면 금세 꺼질 수 있지만, 거대한 산불은 그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쳐 전략적으로 접근해야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에, 모두가 큰 그림을 보며 힘을 합치든지, 아니면 최소한 큰 그림을 보고 있는 지시자에게 협력해야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이걸 방해하면 누가 피해를 볼지 자명하다. 책에도 언급되어 있는, 사회의 약한 고리가 먼저 끊어지고, 결국 모두가 피해를 입게 될 것.
책의 후반부 몇 개 장은, 코로나 상황 이후를 조망하는 장들이다. 매일 엄청나게 발생하는 일회용 마스크 쓰레기 이야기로 시작해, 기후위기까지 이어지는 장과, 바이러스의 전 세계로의 급속한 확산을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인 세계화 문제, 그리고 비대면 시대에 최적화되고 있는 산업형태의 미래까지.
단순히 보건과 방역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훨씬 더 거대한 구조 안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가를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 마지막 장의 제목은 “‘콘택트’ 없는 ‘언택트’는 디스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여놓고 있는데, 편리해지고 있다는 생각만 할 수 있는 언택트 산업의 불편함에 대해서 생각해 볼 만한 내용이었다. 다만 결론이 조금 얼버무려진 듯한 느낌은 있지만.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금세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이제 어느 정도 코로나 상황도 그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 같지만, 이게 정말 ‘끝’이라고 쉽게 확신이 들지는 않는다. 어느 식으로든 이 문제는 우리에게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테니까.
치료제 정도의 기능을 해야 할 언론이, 팬데믹 상황에서 오히려 변이 바이러스처럼 굴고 있다는 책 속의 한 구절이 인상적이다. 그런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늘수록, 사회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지기 마련이다. 적어도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 책 한두 권 정도는 찾아 읽었으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