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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만만해지는 책 - 한 번 배우고 평생 써먹는 숫자 감각 기르기
브라이언 W. 커니핸 지음, 양병찬 옮김 / 어크로스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숫자에 약하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물론 그 중에서도 나는 좀 중증이라서, 한 공간에 몇 명쯤 와 있는지, 내 방 책장 하나에 책이 몇 권이나 꽂혀 있는지, 우리 집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편의점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대충이라도’ 말을 하지 못하는 편이다.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커니핸은 나처럼 숫자에 어두운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우선 저자는 어려워 보인다고 해서 숫자를 외면하면 안 된다고 충고한다. 대체로 ‘숫자’들은 우리에게 뭔가를 팔아먹거나, 우리가 특정한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숫자, 혹은 숫자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큰 손해가 될 수 있다.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대략적인 계산만 할 줄 알아도 숫자의 세계에서 큰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저자는 어림수와 간단한 사칙연산을 통해서 ‘계산’을 직접 해보라고 권한다. 물론 필요할 때마다 정확한 수치를 찾아보거나 할 수도 있지만, 10~20% 정도의 오차를 내는 어림계산만 있어도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문제는 피해갈 수 있다는 것.
책은 숫자가 어려워지지 않게 만드는 다양한 팁을 제공해 준다. 지나치게 큰 숫자를 대할 때는 피부에 와 닿는 좀 더 작은 단위로 쪼개서 생각해 보고, 부피와 길이,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들을 정확하게 구분하고(이건 제곱, 세제곱으로 숫자가 늘어날 수 있으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 통계나 그래프를 읽을 때는 기준점이나 단위, 수치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지 살펴야 하고.
조금은 뻔해 보이는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워낙에 숫자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얼치기 기자들이 널려있는 시대에, 한 번쯤 귀 기울여 들을 만한 이야기들이다. 정확한 인과관계나 규모에 대한 이해 없이 누군가가 과장을 섞어, 혹은 왜곡해 전달하는 말만 듣고 견해를 갖기 일쑤인 정보과잉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메모지 한 장을 펴놓고 간단한 계산을 하는 연습부터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는 미국식 숫자 셈법 자체가 꽤 혼동하기 쉽겠구나 하는 점이었다. 밀리언(million)과 빌리언(billion), 트릴리언(trillion) 같은 단위들은 각각 천 배씩의 차이를 내는 단위인데, 꽤나 유명한 신문이나 잡지들에서도 이를 혼동해 엄청난 오보를 내는 실 예가 수두룩하다. 반면 만 배씩의 차이를 내는 억, 조, 경 같은 단위를 사용하는 우리들은 이 정도의 착오는 좀 적지 않나 싶기도 하고.(이게 우리 기자들이 특별히 계산에 밝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막연한 인상비평과 가짜뉴스에 우르르 휩쓸리는 일이 잦은 오늘날, 이런 기본을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좀 더 귀하게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