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8년 4월
평점 :
월터 브루그만의 책을 몇 권 읽다 보니, 그의 책이 두 종류로 나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는 바로 직전에 읽었던 또 다른 책인 “완전한 풍요”처럼 조금은 대중적인 독자를 염두하고 쓴 책이고, 또 다른 한 종류는 이 책처럼 조금 더 학문적인 배경을 지닌 독자를 위해 쓴 책이다. 물론 모든 책이 명쾌하게 이 구분에 따라 나뉘는 건 아니지만, 당연히 후자 쪽이 조금 더 읽기에 까다롭다.
이 조금은 현학적인 문장으로 가득 차 있는 책에서 저자는 설교자들에게 “시인이 되라”고 몇 번이나 반복해서 요청한다. 여기서 말하는 (시의 반대말인) ‘산문’이란 “판에 박힌 공식들로 체계화된 세계”를 말하고, ‘시’는 “도약하는 언어, 기습과 마찰과 속도로 낡은 세계를 깨뜨려 여는 언어”를 가리킨다. 조금 쉽게 말하면, 체제 순응적인 설교,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저 피상적 위안과 순종만을 요구하는 그런 말들 대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계와 체제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일으킨 결손을 채워줄 수 있는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와 산문이라는 메타포를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우리는 시에서 평소라면 받아들이지 않을 만한 이상한 논리, 조금은 과장스럽게 드러내는 현실에 관한 인식,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모르는 도약 등을 볼 수 있다. 저자는 우리의 설교에서 이런 성격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마치 무슨 계산 공식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이해하려고 할 때가 많다(특히 보수적인 쪽에서). 문제는 이렇게 될 때,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모두 아는 것처럼 생각해 버리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몇 줄의 교리로 모든 것이 요약되는 신앙, 여기에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없다.
그렇다고 저자가 이 책에서 아주 새로운 ‘교리’를 제시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죄와 그 속죄, 소외라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친교적 공동체로서의 교회, 안식일과 희년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삶의 원리에 대한 복종(이 점은 저자의 다른 책인 “안식일은 저항이다”에서 좀 더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다), 세상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과 그로 인한 진정한 자유 같은 전통적인 주제들을 되살린다.
때문에 어떻게 읽으면 그냥 익숙한 내용들을 조금 어려운 말과 표현으로 써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이런 ‘교리’들을 건조한 산문으로 써 놓으면 금세 그것은 우리의 실제 삶으로부터 유리된다. 소위 ‘정통주의자들’이 빠졌던 함정에 그대로 따라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당연한 한 문장을 듣는 이들의 삶과 엮어내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설교라는 매우 실천적인 분야에 관해 말하고 있지만, 여타의 설교학 교과서처럼 명확한 지침을 담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설교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회중이 그런 설교를 다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다만 이 시처럼 자유자재로 변하는 문장들 속에서, 어떤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어스름하게 빛을 볼 수 있을 뿐이다. 뭐 시에서는 그 정도면 된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