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영화는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친일전력을 파헤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85뜬금없이 서로 민족 정론지를 자처하며 상대를 친일 언론으로 비난하는 모습은 가관이다하지만 감독이 추적해 본 결과일제강점기 두 신문은 누가 더 추하다고 할 것도 없이일왕 내외의 사진을 1면에 실으며 충성을 보여주고일제가 일으킨 동아시아 전쟁에 끌려갈 조선 청년들의 지원을 위해 열성적인 독려를 한다심지어 이름에 조선이 들어간 그 신문은 제호 위에 빨간 색 일장기를 컬러로 인쇄해 박아 넣었을 정도.


     친일 본능은 해방 후 군사정부가 들어서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제 친독재 본능으로 색깔을 바꾼다오늘날 북한의 기관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지도자 찬양 기사들로 지면은 가득 채워졌고이에 반발하며 언론의 자유를 외쳤던 기자들은 모두 해직되었다당시 조선일보 사장이 직원들에게 경고하는 유치한 선전포고문은 이 조직의 수장에게 애초부터 언론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는 걸 보여준다.


     더 어이가 없는 건이런 역사가 뻔히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국회에서 열린 청문회에 출석한 두 신문사 관계자들은 뻔뻔스럽게 자신들의 친일전력을 부인하면서 마치 대단한 언론자유의 투사인 양 행세했다는 점이다이쯤 되면 부끄러움은 우리 몫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

 





혼맥.


     영화 중반부감독들은 이 두 신문사와 관련된 인물들이 결혼으로 형성한 혼맥을 시각화해서 보여준다마치 나무의 뿌리처럼 정계와 재계를 막론하고 어지럽게 얽혀 있는 관계도를 좇다 보면언론개혁이 왜 이렇게 지지부진한지를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이들이 이런 복잡한 관계를 만든 이유는 역시 권력을 얻기 위해서이다언론의 본연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지만이들은 스스로 권력이 되기로 작정했던 것이다이들에게서는 제대로 된 생각이나 목소리를 찾는 것이 어려워진 것은 당연한 결과다철저하게 정파성을 지닌 의견나아가 앞서 사장들이 국회에 나와서 자기들이 했던 행적을 뻔뻔하게 부인했던 것처럼몇 달 사이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논조들을 보는 것도 드물지 않으니...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언론 권력은 여전히 기세를 떨치고 있다작은 문제를 부풀려 엄청난 일로 만들거나자기들과 한 편인 이들의 문제는 애써 덮어 버린다애초에 일관된 논리 따위는 필요도 없으니 생각할 것도 없이 공장식으로 기사들을 쏟아서 진실을 가린다그리고 그 최종적인 목표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더 키우는 것이고마치 암세포처럼 주변의 세포로 갈 영양소를 빨아들여 혼자만 커지는 것 같달까.


     물론 이 두 신문사들의 모든 기사가 다 엉망인 건 아니다분명 읽어볼 만한 내용도 있고꽤 전문성을 보이는 분야도 존재한다다만 전체적 논조가 그 괜찮은 부분까지 삼켜버릴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게 문제.

 





폐지수출과 기레기.


     최근 이 신문사들이 ABC협회에 조작된 발행부수를 보고해 광고비를 과다수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그리고 곧 엄청나게 찍어낸 신문들은 실제 유료구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고포장도 뜯지 않은 채 폐지로 수출되기도 한다는 후속 보도도 이어졌고언론사로서 부끄러운 내용들이지만여전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뻔뻔하게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뭐 이들이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 같은 건처음부터 구독자들로부터 받은 구독료가 아니라부동산 투기나 광고비로 유지되고 있기 때문일 지도 모르겠다별 의미도 없는 기사뭉치를 그토록 열심히 써댈 수 있었던 것도애초에 좋은 기사를 써서 구독자를 늘려야한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기레기라는 멸칭이 흔하게 들리는 상황은 사회 전체로 볼 때 결코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언론이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피해를 입는 건 시민들이니까사회를 다양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언론들이 다수 존재하는 건 그래서 중요하다가장 좋은 건 이들이 조작과 선동을 중단하고 자신들의 가치관에 따라(정파성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사안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도하게 되는 일이겠지만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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