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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진리나무 - 아마추어 철학자가 진짜 철학자다!
안광복 지음 / 궁리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아마추어 철학자가 진짜 철학자’라고 외치는 저자는, 일상 속에서 철학을 하기 위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내고, 마음을 차분히 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고, 글을 읽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하나가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입에 감이 떨어지기만 기다려서 얻을 수 있는 건 세상에 별로 없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철학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짝퉁(복제물), 양성평등, 시간에 대한 감각, 전통, 놀이, 복수 등 철학적으로 검토해 볼만한 주제들은 우리 주위에 널려있다. 책의 2부에서 5부까지는 이런 주제들을 하나씩 언급하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직 고등학교 철학교사이기 때문인지, 애초에 책의 독자설정을 그렇게 했던 것인지, 철학책이지만 읽기에 그리 어렵지 않은 쉬운 문체로 쓰였다. 고등학생 정도라면 이 책에 나온 주제들을 가지고 이야기해 볼만할 듯도 싶다. 각 장의 말미에 생각해 볼만한 질문까지 실려 있어서 여기에 도움이 될 듯도 싶다. 물론 우선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아이들이어야겠지만.
다만 각 주제들에 관한 통찰이 아주 깊게까지는 들어가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인문학적 소양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만한 정도. 이건 앞에서 말했던 ‘독자 설정’ 때문에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각 장의 말미에 앞서 말한 생각해 볼 질문들과 함께, 그 장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해 읽어볼 만한 책들도 아울러 소개되어 있으니, 추가적인 공부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참고해 볼 만하다.
그리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에 관한 설명을 ‘정답’처럼 생각하지는 않기를 바란다. 몇몇 항목들에 관해서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고, 또 그렇게 저자의 생각과 다른 점을 찾고 내 입장을 정리하고 하는 과정이 철학에서 중요한 거니까. 예컨대 형벌의 본질을 ‘교화’에 두는 저자의 입장(184)은 지극히 현대적인, 근대에 들어서야 새롭게 발명된 관점이다. 범죄자를 어떻게 교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합의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이렇게만 주장하는 건 조금 무책임해 보인다. 차라리 손봉호 교수(『고통받는 인간』)의 ‘처벌의 응보성’에 대한 강조가 내게는 더 와 닿는다.
사람들의 생각이 얕아지면 그 사회는 불안정해진다. 선동에 휘둘리기 쉽기 때문이다. 온갖 구호들만 난무하고, 대화보다는 목소리의 크기로, 줄 선 사람들의 규모로, 심지어 폭력으로 해결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정치 지도자 몇 사람 때문에 만들어지는 현상은 아니다. 물론 그들이 그런 혼란에 불을 붙일 수는 있겠지만, 사고의 깊이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니까.
정답 맞추기식 교육이 아니라, 사고의 지평과 깊이를 넓히는 교육이 필요할 텐데 당장의 점수와 대학 간판에 매몰된 사회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문제 해결 역시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비결 따위는 없는 거니까. 일상 속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좀 더 깊게 고민해 보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를 세워보는 연습이 차근차근 이루어져야 할 거다. 꼭 이 책이어야만 하는 건 아니겠지만, 처음이라면 한 번 볼만한 느낌.
※ 94쪽의 ‘단순화된 헬라어’라는 표현은 ‘단순화된 코이네 헬라어’로 표기되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