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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부키 / 2021년 1월
평점 :
내가 좋아하는 작가 아사다 지로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 앞서 언젠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리뷰에서도 썼던 것 같지만, 아사다 지로의 작품 속 인물들에게는 ‘따뜻함’이 묻어 있고, 삶에 대한 깊은 통찰도 짙게 배어 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읽는 건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향과 추억 같은 단어들을 떠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이번 작품은 정년퇴임을 맞고 송별연에 참여했다가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쓰러진 다케와키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있다. 수많은 튜브에 감긴 채 병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그를 찾아온 가족과 친구들의 사연으로 시작된 1장을 넘어서면, 이제 이야기는 조금 환상적인 단계로 넘어간다. 그를 찾아온 묘한 인물들과 함께 병원 밖으로 나가는 다케와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
다케와키 자신도 이런 만남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의문을 끊임없이 품지만, 병원 침대에 누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채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심정으로 함께 외출을 하는데, 그렇게 환상 속에서 만난 세 명의 여자들은 사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음이 작품의 결말부에서 드러난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어서 조금 설레기까지 했다. 이런 구성을 떠올린 작가에게 박수를.
이야기는 결국 가족을 주제로 한다. 정년을 맞을 때까지 성실하게만 일해 왔던 다케와키에게는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다. 바로 비어 있는 호적이다. 언제인지도 모르는 어느 날, 그는 버려졌고, 시설에서 자랐다.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아, 이제 손녀들까지 본 상황이었음에도 그에게 이 ‘빈 호적’이라는 부분은 쉽게 치유되지 않는 상처였다. 사회적으로는 안정적인 위치에 올랐지만, 자신의 뿌리에 관한 질문은 좀처럼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가끔 해외로 입양되었던 아이들이 자라서 자신의 부모를 찾고 싶다고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이야기들을 보게 된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생면부지의 외국인들에게 보내버린 부모임에도 다시 찾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그 심리는 무엇일까. 어쩌면 나무가 뿌리가 없이 설 수 없는 것처럼, 우리도 뿌리를 확인해야만 바로 설 수 있는 걸까.
읽을 때마다 만족을 주는 작가다. 다시 한 번 기쁘게 책장을 넘길 수 있었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