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도 새도 모르게 목표가 된 인물을 살해할 수 있는 ‘조직’의 최정예 에이바(제시카 차스테임).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이 죽이고자 하는 대상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다.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아느냐’고. 하지만 그건 조직의 금기를 깨뜨리는 질문이었고, 결국 조직의 수장인 사이먼(콜린 파렐)은 에이바를 제거하기로 한다.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왜 조직은 에이바가 대상자와 대화하는 것을 그토록 경계하는 걸까? 어쩌면 조직에서 지목한 대상이 생각만큼 악한 인물이 아니었고, 에이바가 대화 중에 이를 알아챌까 걱정했을 수도 있다. 극중 에이바는 물론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이 죽어야 하는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믿고 있는 듯하니까. 또 하나의 가능성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뭔가 돌발변수가 생길까 염려했다는 것인데, 그건 에이바의 미션완수율을 보면 사서 하는 걱정 같기도 하고.
조직이 가장 문제 삼고 있는 것이 ‘대화’라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대화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이다. 대화가 통제되고 금지되는 순간 우리는 이제 철저하게 고립되고 만다. 고립은 정보의 부족을 불러오고, 이런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군대에 막 들어간 이등병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밖에서라면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실수를 연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보의 양이 절대적으로 줄어들면, 아주 작은 정보라도 주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고, 그건 우리의 정신과 자아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그리고 어쩌면 조직은 그냥 에이바를 절대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그런 조치를 했을지도 모른다. 대화 자체를 막아야만 하는 절대적인 이유는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문득 오늘날 우리들의 대화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싶다. 코로나 사태로 당장은 좀 잠잠해지긴 했지만, 이제는 거의 연례행사가 되어가는 대규모 군중동원 시위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대화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모순적 행사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소리를 막기 위해 더 큰 소리를 지르는 자리는 아무리 많아져도 이 사회를 좀 더 나은 쪽으로 이끌지 못할 것 같다.
영화는 결국 에이바를 제거하려는 사이먼과 앉아서 죽고 싶지 않은 에이바의 대결로 넘어간다. 조지그이 전직 수장이자 에이바를 길러낸 듀크(존 말코비치)는 이 결정을 반대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개인적으로는 존 말코비치가 맡은 역할이 제일 멋있더라.) 여기에 에이바의 가족 이야기까지 더해지면서 실타래가 하나 더해지지만, 그건 앞서 진행되고 있는 에이바 개인의 이야기와는 크게 교차점이 보이지는 않는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도대체 이 조직의 정체는 끝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 듯한데, 덕분에 문제는 오직 개인의 문제로만 비춰진다. 그리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어서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 싸움의 당위마저 충분히 설명되지 않고 있기에 좀 결말이 찜찜한 채 남아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