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마블이나 디씨의 세계관에서 두드러지는 부분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영웅들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다. 자신들이 어찌할 수 없는 적들을 물리치는 데는 이들 영웅들이 꼭 필요한 존재지만, 평시에는 그런 초인들이 또 위협적으로 느껴지니 어떻게든 그들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결국 양쪽 세계의 영웅들은 이런 사람들의 인식에 맞춰 어느 정도 스스로를 시민들의 제어 아래 두려고 한다.

 

엑스맨의 리더인 자비에(제임스 맥어보이)는 정부의 요청을 받아 보통 사람들이 하기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맡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엑스맨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려고 했던 건데, 참 살기 어렵다. 그런데 또 그럼 사람들의 우려도 아주 공감이 되지는 않는 것이, 영화 속 초인들을 강력한 무기’, 예를 들면 핵무기로 치환해보면 이해가 쉽다. 강력한 적을 물리칠 수 있는 강력한 무기, 그러나 그 무기는 나에게도 위험하다. 때문에 국제적인 억제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

 

문제는 여기에서 그 무기들이 인격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점이 잊히면 안 된다는 점인데, 영화 속 사람들에게는 이에 대한 고려가 빠져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건 당연히 또 다른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마블의 시빌워가 그런 것이었다면, 디씨에서는 영웅들 대부분이 갖고 있는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이런 불안감이 일상적으로 비춰진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진 그레이(소피 터너)는 그런 임무 수행 중 엄청난 힘을 얻게 되고, 스스로도 잘 통제되지 않는 이 힘은 결국 주변 사람들까지(특히 일반인들까지) 위기로 몰아넣으면서 문제를 일으킨다. 여기에 그런 진을 더 파괴적으로 충동질하는 캐릭터와 그를 말리기 위해 나서는 엑스맨 진영의 싸움이 더해지면서 이런 영화에 빠질 수 없는 액션신이 더해진다.

 

전체적으로 구색은 갖추었다고 보이지만, 문제는 주인공인 진 그레이의 고민과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액션들이 서로 그다지 긴박한 연계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의 고민이라는 게 자신이 가진 통제되지 않는 엄청난 힘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자신을 버린 아버지(어머니는 그녀의 힘 때문에 사고로 죽었다)에 대한 배신감인데, 사실 이 두 가지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렇게 분노할 일인가 싶은 내용들이다. 그냥 반항적인 십대의 충동적 비행을 돌이키려는 선생님들의 투쟁으로 보이기까지 하니까.

 

이런 혼란스러운 진행 가운데서도 다시 한 번 두드러지는 건, 사건의 원인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그저 큰 피해를 입히며 싸우는 것들을 다 잡아 가두어야 한다는 식의 정부 대응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을 보면서 잘못의 경중, 사안의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나 재벌, 특정한 영역이 다 문제라는 식의 눈 감은 양비론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던가. 진짜 문제는 그러는 동안 정말로 나쁜 이들이 빠져나갈 구멍을 얻게 된다는 점이다. 이른바 물타기라는 게 그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엑스맨의 뮤턴트들은 어디까지 쪼그라들까. 이젠 십대 가출기까지 보고 앉아 있어야 하나 싶은데, 이제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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