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김은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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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이 고양이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하는 화자가 있다. 음울한 분위기 가운데, 좁은 방바닥에 누워서 아무 의욕도 없는 듯한 인물의 모습이 강하게 떠오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소설은 화자의 과거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된다. 그에게는 네 명의 여자들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그 여자들은 (한 명만 빼고) 모두 고양이와 함께 있었다. 한 남자를 둘러싼 네 명의 여자와 네 마리의 고양이이라는 구도인데, 다분히 인위적인 느낌을 주는지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을 듯싶다.

 

 

     사실 그런 구도보다 더 이야기를 답답하게 만드는 건, 주인공의 성격이다. 관계에 있어서 좀처럼 주도성을 보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끌려 다니기만 하는 모습, 어린 시절 만났던 경화와의 인연이야 나이가 어려서 미숙했다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뻔히 어장관리를 하는 게 보이는 여자 친구에게도(기껏 보자고 해서 일을 취소하고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집에 있는 고양이가 걱정된다며 바로 올라가자는 여자가 정상인가) 질질 끌려 다니다 파경을 맞고,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는지 거래처 직원의 전 여자친구에게 무작정 운명 운운하며 들이댄다.(그래도 이 말미에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었으니 좀 다를까)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는 어머니와의 관계가 있었다. 일찌감치 이혼을 하고 (그 덕분에 화자는 어린 시절을 외가에서 보내야 했다) 홀로 아들을 키우는 슈퍼맘이었지만, 유부남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된 어머니, 그런 어머니는 관계에서 생긴 트라우마가 나머지 여자들과의 관계에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는 설정이었던 걸까.

 

 

     여자 친구와의 연애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자기를 종이접기처럼 접고 또 접다가 결국에는 점이 되어버렸다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사실 화자는 여자친구와의 관계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게 스스로를 점으로 만들어버리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유일하게 자신감을 갖고 대할 수 있었던 것은 고양이였고, 사고로 고양이가 죽으면서 스스로 고양이가 되고 있다는 망상에 빠져버린 것일지도.

 

     ​그런데 관계에 미숙하다는 건 무슨 큰 벌을 받아야 하는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이리저리 부딪히고 부서지면서 화자의 생각은 한 없이 깊어져 간다. 용케 깨지지 않았구나 싶을 정도로 섬세한, 혹은 민감한 영혼을 가진 건 비난받을 이유는 아니다. ‘의 차이에 그토록 민감하고 깊게 반응할 수 있는 이라면, 차라리 시인이 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사(애정)으로 인생을 설명할 수 있다는 식의 환원주의가 불편하다.(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다) 인생은 그런 식으로 단순화하기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많은 변수가 있으니까. 뭐 나이를 먹어서 그런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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