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인생 앤드 앤솔러지
권제훈 외 지음 / &(앤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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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 방기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세계. 집을 보러 다니는 숏츠가 올라온다. 보증금 얼마에 월세 얼마. 엘리베이터가 있냐 없냐로 시작해 집안을 자세하게 보여준다. 신축과 구축, 옵션의 유무에서 보증금과 월세는 달라진다. 사람이 없는 빈집을 보기도 하고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을 소개해 주는 영상을 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연예인이 살고 있는 화려한 집의 영상도 알고리즘에 의해서 올라온다. 


청소와 정리 정돈을 하는 영상을 보기도 한다. 좁은 집에 물건이 많기도 하다.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집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사연이다. 재능기부로 채널주는 사연자와 함께 집을 치운다. 물건에 추억과 사연이 있어서 버릴 수 없다는 사연자는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씩 물건을 비운다. 깨끗해진 집을 구경하면서 일 년 넘게 쓰지 않은 물건을 비운다. 


앤드 앤솔러지 시리즈 중 하나인 『전세 인생』에는 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집을 매매할 것이라 말하며 타인의 집을 보러 다니는 신혼부부,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십 대 청년, 힘들게 전셋집을 구했는데 전세사기를 당한 가족, 죽은 집주인과 동거하는 청년, 헤어진 애인과 월세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사는 연인. 『전세 인생』에는 내 집이 없기에 겪는 수모와 슬픔이 있다. 


현실적인 주제의 소설들이라 빠르게 읽힌다. 지금, 여기의 일들을 말하고 있으므로. 회사 보유분으로 지금 이 가격으로 살수 있는 건 마지막이라고 아파트 분양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 아무리 읽어도 전단지에 쓰여 있는 단어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몇 억이 넘는데. 대체 어떻게들 집을 살까. 대출이라는 걸 끼고 사겠지만 한 달에 이자와 원금을 갚아갈 일이 만만치 않을 텐데.


어떤 인생으로 살아갈지 모르겠다. 아니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 번만 살게 될 것이므로 사는 대로 생각하지 말고 생각하면서 살라고 했지만 나의 인생에 붙일 수식어를 찾지 못했다. 『전세 인생』에서 웃기고도 슬펐던 소설은 죽은 집주인과 당분간 함께 살아야 한다는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담은 「보금의 자리」였다. 


사람보다 유령과 살면서 의지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는 전세 인생. 우리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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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 - 앤드 엔솔러지
이서수 외 지음 / &(앤드)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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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만난 그 사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일상적인 대화가 어려웠기에 아무와도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제일 구석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세 시간의 수업을 듣고 차를 탔다. 차에는 나와 그 사람뿐이었는데 대번에 나를 아는 척했다. 아마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들었나 보다.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나에게 알은척을 해서 이 사람이 전부터 나를 알고 있나 나만 기억에서 잊고 있었나 착각이 들 정도였다. 


한국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의례적으로 그렇듯이 나이를 물어보기에 내 나이를 말해주고 질문이 왔으면 질문을 다시 해주는 게 인지상정.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호칭은 생략한 채 몇 살이냐고 물었다. 쉰 여덟이라고 하길래 없는 사회성을 찾아내어 와 보기보다 엄청 젊으시네요 했다.(잘한 거 맞겠지.)


집에 가는 방향이 맞아서 차에서 자주 만났다. 그 사람은 나를 자기 혹은 이름 뒤에 씨라고 붙여 부르기에 나는 어떻게 불러야 하나 고민했다. 여사님은 좀 그렇고 선생님? 이것도 아닌데 그럼 언니? 이제 나에게는 사회성이 아예 없나 보다. 마지막 헤어질 때까지 나는 그 사람을 그 어떤 호칭으로도 부르지 않았다. 어차피 다시 만나지 않을 건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 이서수의 단편이 실린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를 그즈음에 읽고 있었는데 그럼 언니라고 한 번이라도 불러도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쉽다. 더 이상의 친교나 사교는 사절이라는 마음으로 지내다 보니 이렇게 되어 버렸다.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에는 다섯 명의 작가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언니'라는 주제로 말이다. 


모두 시절 인연이라서 가슴이 아리기도 아프기도 하다. 인생에서 가장 멍청한 일이 후회하기라는데 『언니라고 불러도 될까요』에는 후회와 회환의 정서가 가득하다. 여성으로서 사는 거 힘들고 고달픈데 소설에는 그런 모습들이 있어서 읽는 동안 과거의 나를 미워했다.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것도 낯설고 이상하다. 


이제는 내 이름 뒤에 씨를 붙여서 불리는 것도 거부감이 든다. 님도 그렇고. 그럼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해 따지겠지만 나를 부르지도 찾지도 말아 다오. 꼭꼭 숨어 있을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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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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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샀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자격증 책만 사서 나오기에는 나에게 미안해서 매대에 있는 책을 빠르게 훑었다. 빨리 사서 나가야 되는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조승리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산 책이었다. 


지랄. 지랄맞음이라니. 책 제목에 그런 불손한 단어를 넣은 패기에 박수를. 책과 저자에 관한 정보도 모른 채 자격증 책과 함께 구매했다. 오늘 나온 김에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종일 뛰고 걸었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그러니까 이제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카페에 들러서 책을 펼쳤다. 책을 사서 나올 때 언뜻 뒤표지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열다섯, 앞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비유인 줄 알았다. 열다섯은 그런 나이니까.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눈을 감았는데 어둡고 캄캄해서 빨리 다시 눈을 뜨고 싶은. 어떤 농담. 눈을 감아봐. 그게 네 인생이야. 웃기지도 않는 그런 농담이 이상하게 어울리는 나이는 열다섯이니까. 1부에 실린 첫 이야기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를 읽으면서야 다시 뒤표지의 다음 문장을 읽었다. 


'앞으로도 앞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제목의 발칙함과 발랄함 때문에 그저 사는 게 많이 어렵지만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서 힘을 내는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지랄맞음이라는 용어로 가려주길 바라면서 고른 책이었는데.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잘 봐봐 지금 너 힘든 거 아는데 어쩌면 사는 거 괜찮을 수 있다 나 봐봐하는 책이었다. 


그저 책을 읽으며 나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뻔뻔하게 염치없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으며 나 우럭. 왜 우럭. 광광 우럭. 앞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엄마는 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늘 승리하라는 뜻으로 딸의 이름을 승리라고 지은 엄마. 


엄마가 떠나도 아이는 오늘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사고 읽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취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알려 주었다.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인데 읽는 내내 울컥울컥 슬픔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조금 힘을 내었다. 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의 기쁨으로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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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 레이디가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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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집에 누워서 아라키 아카네의 신작 장편 소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을 하루 종일 읽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니(방해는 내가 되었다. 책 조금 읽다가 물 마시러 가고 화장실 가고 폰 잠깐 보고) 개꿀. 


어린이날 이어서 그런가 어린이들이 웃고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말 오전에 들리던 피아노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냈다. 고요한 집에서 얻은 수확이다. 몇 년째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실력이 꼭 늘었으면 좋겠다. 1998년생 젊은 작가 아라키 아카네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소설을 썼다. 


일하고 돌아와 씻고 밥을 챙겨 먹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는 건데 그중에 하나만 하고 있는(씻는 거) 나로서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초인이다. 이 세상에 없는. 초능력을 발휘해 쓴 소설 『세상 끝의 살인』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최연소로.


지구 종말 끝에 마주한 두 여성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세상 끝의 살인』은 흥미로우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차피 망한 세상에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해야만 하지 않나라는 인간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두 번째 소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도 대단하다. 종이책으로 읽기 때문에 책의 묵직함과 페이지 수에 압도된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 노릇을 1도 하지 못하는 어른이는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섬으로 들어간다. 무인도에 같이 여행을 가게 된 일곱 명의 젊은 남녀. 그 안에 히토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친구들 몰래 아이스박스에 독극물인 비소와 칼을 숨겼다. 아다시마라는 무인도에서 히토는 친구들을 전원 몰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오렌지주스에 비소를 타서 살인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누군가 한발 앞서 여섯 명의 일원 중 한 명을 죽인다. 그로부터 시체를 발견한 자들이 계속 죽어 나간다. 히토는 혼란에 빠진다. 모두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으려고 한 히토. 섬에서 나가기 전 범행 성명이 인터넷에 올라가도록 해 놓았다. 왜 자신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힌 성명이. 


상황이 꼬여 가고 있다. 졸지에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이다. 범행 성명이 올라가기 전 살인자를 밝혀내야 한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의 1막의 내용이다. 소설은 섬에서의 연쇄 살인이라는 1막과 도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2막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살인범의 정체를 밝혀 나간다. 


왜 와 누구인가가 궁금해서 한 번 책을 잡으면 하루가 순삭 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과 살인 동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으려고 했지만 재미있는 순간을 내일로 넘겨주고 싶기에 몇 장 남기지 않고 책을 덮었다. 새로운 페이지 터너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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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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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사고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샀다. 책을 산 이유를 합당하게 늘어놓고 싶은데 그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이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책이 쌓이고 책은 옆에 있지만 나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신작 영화를 보고만 있었던 4월


지나 5월.


그럼에도 틈틈이 윤성희의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을 제목 그대로 느리게 읽었다. 한 편씩 천천히 느리게. 한 편을 읽고 나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안부가 궁금해 옆으로 돌아누워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러고 다시 일어나 밥을 먹었다. 책 안에 꽂혀 있는 엽서를 읽으며. 엽서에 적힌 소설가의 말처럼 『느리게 가는 마음』에는 생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태어난 날이 오늘이 아니어도 인물들은 그렇게 자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사 먹고 얻어먹는다. 외할머니의 생일, 나의 생일, 친구의 생일. 죽은 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콜라를 따르는 아이의 생일. 기념일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냥 좀 미운데 생일만은 챙기면서 즐거워하고 싶다.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선물을 받으면 더 좋고. 


『느리게 가는 마음』에는 총 여덟 편의 느린 소설이 실려 있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삶의 재난을 윤성희식 농담과 힘없는 위로로 달래준다. 어느 날 내가 죽어서 엄마의 곁을 따라와도 엄마가 죽어서 남은 김치로만 볶음밥을 먹는 시간이어도 생일이라고 속이면서 밥을 먹고 참외를 사서 나눠 먹는 하루를 보내면 괜찮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와서 4월은 도통 힘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낭비했다. 『느리게 가는 마음』에 나오는 씩씩함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면 계속 누운 채로 지냈겠지. 순서대로 읽지 않고 마음이 가는 제목 대로 읽었다. 여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여름에는 참외가 노란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여름엔 참외」를 시작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마법사들」을 끝으로.


그저 어느 날의 하루인 생일에 의미를 부여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여름의 생일을 기다린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있으면 좋겠다. 느리게 도착해서 다시 느리게 처음의 시간으로 출발하는 생일.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면서 차곡차곡 나이를 쌓아갔으면 좋겠다. 일 년 뒤의 나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애쓰느라 애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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