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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가는 마음
윤성희 지음 / 창비 / 2025년 2월
평점 :





책을 읽으려는 마음으로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사고 책을 읽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샀다. 책을 산 이유를 합당하게 늘어놓고 싶은데 그저 책을 읽어야지 하는 이유 밖에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게 책이 쌓이고 책은 옆에 있지만 나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신작 영화를 보고만 있었던 4월
지나 5월.
그럼에도 틈틈이 윤성희의 소설집 『느리게 가는 마음』을 제목 그대로 느리게 읽었다. 한 편씩 천천히 느리게. 한 편을 읽고 나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안부가 궁금해 옆으로 돌아누워서 눈물을 찔끔 흘렸다. 그러고 다시 일어나 밥을 먹었다. 책 안에 꽂혀 있는 엽서를 읽으며. 엽서에 적힌 소설가의 말처럼 『느리게 가는 마음』에는 생일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태어난 날이 오늘이 아니어도 인물들은 그렇게 자주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미역국을 사 먹고 얻어먹는다. 외할머니의 생일, 나의 생일, 친구의 생일. 죽은 아이를 위해 미역국을 끓이고 콜라를 따르는 아이의 생일. 기념일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그냥 좀 미운데 생일만은 챙기면서 즐거워하고 싶다.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켜고 노래를 부르고
생일 선물을 받으면 더 좋고.
『느리게 가는 마음』에는 총 여덟 편의 느린 소설이 실려 있다. 죽음과 상실이라는 삶의 재난을 윤성희식 농담과 힘없는 위로로 달래준다. 어느 날 내가 죽어서 엄마의 곁을 따라와도 엄마가 죽어서 남은 김치로만 볶음밥을 먹는 시간이어도 생일이라고 속이면서 밥을 먹고 참외를 사서 나눠 먹는 하루를 보내면 괜찮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와서 4월은 도통 힘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낭비했다. 『느리게 가는 마음』에 나오는 씩씩함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다면 계속 누운 채로 지냈겠지. 순서대로 읽지 않고 마음이 가는 제목 대로 읽었다. 여름을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여름에는 참외가 노란 얼굴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여름엔 참외」를 시작으로
죽음을 경험하고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오는 「마법사들」을 끝으로.
그저 어느 날의 하루인 생일에 의미를 부여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여름의 생일을 기다린다. 여름이니까 시원한 아이스크림케이크가 있으면 좋겠다. 느리게 도착해서 다시 느리게 처음의 시간으로 출발하는 생일.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말면서 차곡차곡 나이를 쌓아갔으면 좋겠다. 일 년 뒤의 나에게 보낼 편지를 쓴다. 애쓰느라 애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