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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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샀다.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계속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자격증 책만 사서 나오기에는 나에게 미안해서 매대에 있는 책을 빠르게 훑었다. 빨리 사서 나가야 되는데.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조승리의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순전히 제목 때문에 산 책이었다. 


지랄. 지랄맞음이라니. 책 제목에 그런 불손한 단어를 넣은 패기에 박수를. 책과 저자에 관한 정보도 모른 채 자격증 책과 함께 구매했다. 오늘 나온 김에 모든 일을 다 처리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종일 뛰고 걸었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는 그러니까 이제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모르니까 카페에 들러서 책을 펼쳤다. 책을 사서 나올 때 언뜻 뒤표지에 적힌 문장을 읽었다. 


'열다섯, 앞이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비유인 줄 알았다. 열다섯은 그런 나이니까.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래서 눈을 감았는데 어둡고 캄캄해서 빨리 다시 눈을 뜨고 싶은. 어떤 농담. 눈을 감아봐. 그게 네 인생이야. 웃기지도 않는 그런 농담이 이상하게 어울리는 나이는 열다섯이니까. 1부에 실린 첫 이야기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를 읽으면서야 다시 뒤표지의 다음 문장을 읽었다. 


'앞으로도 앞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진단을 받았다.'


제목의 발칙함과 발랄함 때문에 그저 사는 게 많이 어렵지만 어떻게든 극복하기 위해서 힘을 내는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지랄맞음이라는 용어로 가려주길 바라면서 고른 책이었는데.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잘 봐봐 지금 너 힘든 거 아는데 어쩌면 사는 거 괜찮을 수 있다 나 봐봐하는 책이었다. 


그저 책을 읽으며 나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뻔뻔하게 염치없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읽으며 나 우럭. 왜 우럭. 광광 우럭. 앞을 보지 못할 거라는 의사의 말을 부정하고 싶은 엄마는 딸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다. 늘 승리하라는 뜻으로 딸의 이름을 승리라고 지은 엄마. 


엄마가 떠나도 아이는 오늘 하루하루를 잘 지내고 있다. 한 권의 책을 사고 읽기 위해 다양한 정보들을 취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는 알려 주었다. 제목만 보고 고른 책인데 읽는 내내 울컥울컥 슬픔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조금 힘을 내었다. 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일의 기쁨으로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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