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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 ㅣ 레이디가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4월
평점 :




조용한 집에 누워서 아라키 아카네의 신작 장편 소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을 하루 종일 읽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니(방해는 내가 되었다. 책 조금 읽다가 물 마시러 가고 화장실 가고 폰 잠깐 보고) 개꿀.
어린이날 이어서 그런가 어린이들이 웃고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말 오전에 들리던 피아노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냈다. 고요한 집에서 얻은 수확이다. 몇 년째 치고 있는 것 같은데 실력이 꼭 늘었으면 좋겠다. 1998년생 젊은 작가 아라키 아카네는 회사원으로 근무하다 소설을 썼다.
일하고 돌아와 씻고 밥을 챙겨 먹고 책상에 앉아 소설을 썼다는 건데 그중에 하나만 하고 있는(씻는 거) 나로서는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는다. 초인이다. 이 세상에 없는. 초능력을 발휘해 쓴 소설 『세상 끝의 살인』으로 에도가와 란포 상을 수상했다. 최연소로.
지구 종말 끝에 마주한 두 여성이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는 이야기 『세상 끝의 살인』은 흥미로우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차피 망한 세상에서 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아서 뭘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소설을 읽고 나면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해야만 하지 않나라는 인간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두 번째 소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도 대단하다. 종이책으로 읽기 때문에 책의 묵직함과 페이지 수에 압도된다.
어른이 되었지만 어른 노릇을 1도 하지 못하는 어른이는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섬으로 들어간다. 무인도에 같이 여행을 가게 된 일곱 명의 젊은 남녀. 그 안에 히토는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다. 그는 친구들 몰래 아이스박스에 독극물인 비소와 칼을 숨겼다. 아다시마라는 무인도에서 히토는 친구들을 전원 몰살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오렌지주스에 비소를 타서 살인을 하려고 했지만 다른 누군가 한발 앞서 여섯 명의 일원 중 한 명을 죽인다. 그로부터 시체를 발견한 자들이 계속 죽어 나간다. 히토는 혼란에 빠진다. 모두를 죽이고 자신 또한 죽으려고 한 히토. 섬에서 나가기 전 범행 성명이 인터넷에 올라가도록 해 놓았다. 왜 자신이 살인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밝힌 성명이.
상황이 꼬여 가고 있다. 졸지에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이다. 범행 성명이 올라가기 전 살인자를 밝혀내야 한다. 『끊어진 사슬과 빛의 조각』의 1막의 내용이다. 소설은 섬에서의 연쇄 살인이라는 1막과 도심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의 2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2막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살인범의 정체를 밝혀 나간다.
왜 와 누구인가가 궁금해서 한 번 책을 잡으면 하루가 순삭 된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과 살인 동기가 궁금해서 끝까지 읽으려고 했지만 재미있는 순간을 내일로 넘겨주고 싶기에 몇 장 남기지 않고 책을 덮었다. 새로운 페이지 터너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