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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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는 아이에게는 서언물을 안 주신다고. 일 년에 단 하루,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기 위해 아이는 어른들의 그 말씀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친다. 자기 전 머리맡에 커다란 양말을 걸어두고 그 안에 담길 선물 상자를 상상하는 것이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을 외치는 사람의 혼잡한 무리를 걸어 선물을 사서 돌아오는 일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그 날은 크리스마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마음이 관대해진다. 소원했던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한 끼를 먹자고 말하는 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친하게 지내보자며 웃음을 주고 받는다.


울지 않았나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잔뜩 받았으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반가운 초인종 소리와 배달된 종합 선물 상자 같은 소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눈이 오기를 기대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반짝 추위가 찾아왔다. 슈퍼 안에 반짝이는 불빛과 함께 진열된 과자 종합 선물 상자를 기억하는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추리 소설 작가들이 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잔뜩 담긴 과자 종합 선물 같은 책이다.


과자 선물 상자를 손에 든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전부 좋아하지만 어떤 과자를 먼저 먹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당신,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처음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네 개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구분되어 있는 책은 한 편 한 편 그냥 지나칠 이야기가 없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부터 누군가가 죽고 산타 복장을 한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범죄가 벌어지는 이야기까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온갖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너무 좋아서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었다. 과자 선물 상자 속 과자를. 아껴서 하나씩 꺼내 먹으며 달콤한 맛을 즐겼다. 상자 안에는 달콤한 맛, 짠 맛, 신 맛 등 세상의 모든 행복한 맛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우리가 그때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맛 같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사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가슴 찡하고 우습고 조금 오싹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가 뭐 별건가 라는 시큰둥한 생각이 들 때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면 당신의 막막했던 기분은 풀어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대목인 좀도둑 이야기는 우습고 기발하다. 사람들은 산타 복장을 한 사람을 보고도 관대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가 도둑인줄도 모른 채. 도둑질을 하러 가서 가정의 불화를 해결해주기도 하는 인물을 보고도 어찌 인상을 찡그리기만 하고 있겠는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과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폴 오스터의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정도만 알았던 나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앞의 세 편의 이야기를 변형하고 비튼 이야기도 들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흥미롭고 우습고 무서운 크리스마스 소설이 잔뜩 있었다니. 그걸 우리의 미스터리 소설계의 명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알뜰살뜰하게 모아 책으로 선물해 주는 것이다. 원래는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국내에는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나온다. 한 권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올해 나왔고 다른 한 권은 2019에. 그리하여 우리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내년까지 울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가득한 두툼한 책을 들고 오실테니. 우리 착한 어른이들은 내년 한해도 말 잘 듣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속 내용처럼 이상한 일은 차라리 그것이 소설이었다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허무맹랑하고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사건은 일어나고 명탐정은 크리스마스라고 한가하게 쉬고 있지 않는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곧바로 수사에 들어가고 단서 하나도 허투로 놓치지 않는다. 유령이 나온다는 저택에 들어가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도 관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인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소설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일 년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표정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아껴 읽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만큼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날도 없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느라 정신 없는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들은 도둑과 가난한 연인들 증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불을 켜고 달려가는 탐정들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나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모두에게 다정한 웃음과 인사를 해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선물해 주는 멋진 우리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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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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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에 걸려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가계부를 보니 병원비와 약값 목록이 늘었다. 아프지 않고 겨울을 버틴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실감했다. 겨우 감기를 다스리고 나니 이내 찾아온 건 몸살이었다. 아침마다 어긋난 뼈를 맞추고 나서야 일어날 수 있었다. 다행히 몸에는 뼈들이 어디 도망가지 않고 잘 붙어 있었다. 안녕, 척추뼈야 팔뼈야. 인사하고 정신을 차리고 물을 한 잔 마시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남쪽 나라 도시에는 비가 내리고 미세 먼지가 찾아왔다. 우울해지다가도 한순간 마음이 밝아지는 시간이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마음은 그런 식이었다.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고 결별을 말하는 연인처럼 내내 알 수 없음의 마음 상태를 유지했다.


  고독하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다고 쓸 수 있던 건 그 와중에도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란 인간은 자주 불안에 시달리다가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면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이다. 손홍규의 산문집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을 읽으며 한 주를 버텨 나갔다. 「문학은 소다」로 문을 여는 산문집은 성실한 소설가의 글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그가 살았던 시골에서 소는 위대한 유산이었다. 때 되면 사람 보다 밥을 먼저 챙겨 먹이는 식구였고 한 소년의 유년을 함께 보낸 친구였다. 나이가 들면 트럭에 실려 팔려 나가는 걸 묵묵히 받아들일 줄 아는 말 없는 천사였다. 소설가 손홍규의 문학의 시원을 찾아 들어가면 구석에는 소가 있었다.


  외아들이었던 그에게는 고모의 형제들과도 막역하게 지냈던 기억이 자리 잡는다. 고모의 부음을 받고 돌아간 시골에서 그는 고모의 형제들과 한 번 더 만난다. 죽음은 사람을 고향으로 불러온다. 누군가는 곡을 하고 누군가는 애써 그이의 죽음을 외면한다. 죽음이 너무 깊어서. 어떻게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그렇게 얼굴을 돌려 버리는 것이다. 소설가가 겪은 최초의 죽음에의 경험은 한 방을 쓰던 할머니와의 이별이었다. 아홉 살 때 돌아가신 그이의 죽음 앞에서 그는 어렸다고 그래서 슬픔이 무엇인지 몰랐다는 이유로 죽음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쓴다.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소설가 손홍규가 살아온 유년의 기억이 담겨 있다. 유년을 지나 청년의 기억도 애써 부려 놓는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그는 서울로 간다. 밤이 되면 돌아갈 집이 없는 운명의 시간을 그는 청년 시절 내내 겪어 낸다. 쥐가 새끼를 치는 소파에서 잠을 자고 토사물이 묻은 이불을 덮고 찬 기운을 이겨냈다. 이곳저곳을 떠도는 동안에도 그는 문학을 하겠다는 열망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후에 그는 이스탄불을 방문해 노 작가와 마주해 그가 문학을 해야 하는 당위를 받아들인다.


나는 그저 그의 서재에서 그와 비스듬히 마주 앉은 채 넓은 창 바깥으로 펼쳐진 보스포루스해협을 이따금 바라보았을 뿐이다. 귓가에 매달린 그의 목소리와 창을 통과하면서 부드러워진 오후의 햇살과 뱃고동 소리. 건너편 유럽 지역의 옛 건물들과 성이 아련했다. 나는 공산주의자다. 이만큼 나이를 먹었는데 뭐가 무서워 감추겠느냐.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말라. 문학은 바로 네가 선 그 자리에서 시작하는 거다.

(손홍규,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中에서)


  어디에서든 문학을 하겠다는 마음을 놓지 않았던 청년은 소설가가 되었다. 어두운 저녁 동네 어른이 찾아와 아버지가 사고 났다는 소식을 알려온 그 시간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간다. 독자인 나는 해가 저물고 소가 울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던 그 저녁으로 소설가의 탄생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탈곡기에 아버지의 손이 들어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소년은 그게 무슨 사고인지 몰라 겁을 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몰랐다. 집안에 어른이 없을 때 해야 하는 행동을 했다. 할머니 상전에 밥을 해 김치와 함께 올렸다. 그리고 소가 울었다. 우는 소를 위해 여물을 쑤어 주었다. 기다렸다. 부모님이 돌아오시기를. 아버지는 한 손가락만을 잃었고 그 후로도 농사를 지었다. 장갑을 쓸 때는 손가락이 없는 쪽을 잘라서 썼다.


  아버지의 다친 손을 보며 문학은 시작되었다고 쓰면 과장일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한 사람이 문학을 시작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꿈을 꾸고 이루어낸 과정이 담겨 있다. 그의 이상문학상 수상작 「꿈을 꾸었다고 말했다」의 제목처럼 그는 소설가가 된 꿈을 꾼 것일까. 그는 쓴다. 사람들이 살아가고 쓰러지고 슬퍼한 자리에서 문장은 시작된다고. 아버지의 잘린 손가락의 빈자리를 더듬으며 시작한 글쓰기는 그를 문학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는 내가 졸업한 대학에 소설을 가르치러 왔었다. 그때 나는 문학에 한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 졸업은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걸 내세우며 산다는 게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진작에 깨달은 상태였다. 일주일에 한 번 소설을 가르치기 위해 그는 버스를 갈아타고 기차를 타고 그렇게 물 건너 산 넘어왔다.


  그의 소설처럼 그는 성실한 선생이었다고 한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고 간절히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했다. 멀리서 나는 그의 책을 사 모으고 그가 부디 소설을 마음껏 쓸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으면 하고 응원했다. 소설가의 시간은 소설로써 증명된다. 그는 내가 문학과 다투고 토라져 있는 사이에도 부지런히 소설 쓰는 노동자로 살아갔다. 소설가임에도 소설을 쓰는 시간이 없어 황망해 하던 그는 소설을 쓰고 사이사이 산문을 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의사와 짧은 만남을 가지고 처방전을 받아 들고 약국으로 가면 된다. 꼬박꼬박 시간을 지켜 약을 먹고 밥을 먹는 동안 몸은 나아간다. 그렇다면 마음은?


  딸아이가 아픈 팔을 스스로 달래는 모습을 보는 아버지. 그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세상에는 몸이 아닌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이 많아질 것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얼굴로 써 내려간 『마음을 다쳐 돌아가는 저녁』에는 우리가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소설가의 위로가 담겨 있다. 얼굴을 직접 보고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어도 나는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독한 이 세계에는 고독한 우리가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으로 삶의 의무를 다하면 된다. 그곳에서 문학은 시작된다. 그래서 아픈 오늘은 괜찮은 내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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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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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갔지만 그 책은 없었다. 부지런한 누군가가 나보다 한발 앞서 빌려 간 것이다. 어제까지는 있었는데 오늘은 없는 책, 은 잊어버리고 시내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북적북적한 그곳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좀 더 널찍한 자리가 나기를 기다려 옮겼다.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들고 갔지만 읽지는 않았다. 커피를 옆에 놓아두고 책 사진만을 찍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탁자 위에는 커피 얼룩이 있었다. 책의 제목대로 우아하게 찍을 순 없었을까. 우아함과는 거리를 둔 채 우아해지기를 바라며 제목에 우아함이 들어간 책을 읽는 것으로 만족하는 하루를 보냈다.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에 실린 소설은 대부분 화자가 잠이 드는 것으로 끝난다. 아버지의 밤 산책을 못마땅해하는 「산책」의 그녀. 「임시교사」로 한평생을 살아온 P 부인. 가볍게 한 이야기였는데 현실로 찾아와버린 「상자 사나이」를 만나는 나. 그들은 실재가 아닌 환상 속을 거니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손보미는 그들에게 잠을 선사한다. 잠이란 무엇인가. 하루를 힘겹게 견디고 버틴 이들에게 주는 천사의 선물이다. 악인도 선인도 하루를 끝내기 위해서는 잠이 들어야 한다. 잠이 들면 꿈을 꾸든지 다시 깨어 끝없이 눈물을 흘리든지 각자의 몫이지만 일단 자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의 공통점은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안심을 하는 화자들이 나온다는 것이다. 화자의 목소리는 손보미의 마음이다. 소설가 손보미는 각기 다른 화자의 목소리로 등장해 불안에 떠는 우리를 향해 괜찮아, 당신들의 하루는 무사할 거야라고 말한다. 도시의 중심에 있는 호텔이 불에 타도(「대관람차」) 이혼 후 혼자 살고 있는 아버지가 거짓인지 실제인지 모를 이야기를 하게 놔두어도(「산책」) 마치 자고 나면 잠만 자면 내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소설을 마무리 한다. 헤어진 연인의 집에 가서 무단 침입해 들어온 고양이를 마주하고 나서야 자신이 고양이를 무척이나 좋아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이야기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같은 짧은 소설에서도 어차피 오늘도 내일도 당신들의 삶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어떤 하루의 꿈속은 「죽은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하고 일생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상자 사나이」를 만나기도 한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임시교사」의 마지막 문장처럼 하루 중에서 가장 쉬운 일은 잠이 드는 것이다. 어느 날부터 눈물이 줄줄 흘러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시간에서도(「고양이의 보은-눈물의 씨앗」) 잠이 들면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고통이 존재한다면 우리 안에 불안이 자라고 있다면 그저 잠들어 버리는 것이 어떤가라고 말하는 손보미의 소설집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을 읽다가 나 역시 잠이 들었다. 


  열 편의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오늘은 얼마나 무사한가, 실감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생의 한 지점에서 만나는 굴절로 인해 좌절하고 꿈이 꺾이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인물들의 시간에 비해 나는 기껏 빌리러 간 책이 없거나 비좁은 탁자를 차려 놓고 장사를 하겠다는 카페에서 꾸역꾸역 커피를 마신 것 밖에는 없었다. 불탄 건물을 보지 않아도 되고 햇빛에 눈이 부셔 눈물이 흐르면 휴지를 꺼내 닦으면 그만인 것이다. 다른 세계에서 나 대신 하루 종일 눈물을 흘리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본다. 고마워, 매일 울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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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여행 산문집
김연수 지음 / 컬처그라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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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수, 부산, 첸링, 몽골, 레소토, 투르크메니스탄, 이란, 밤베르크, 나가사키, 마드리드, 리스본…을 다녀왔다. 극세사 이불을 둘러쓰고 벽에 기대서 혹은 엎드려서, 누워서. 강추위가 몰려왔고 바람은 창문을 사납게 할퀴고 지나가는 동안 김연수의 여행 산문집 『언젠가, 아마도』를 읽었다. 읽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많은 곳을 다녀왔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게으르고 소심한 데다 겁까지 많은 나는 정해진 장소 이외에는 다른 곳을 가는 걸 싫어한다. 내게 여행이란 상상만으로 피곤하고 괴로운 것으로 다가온다. 걷기 보다 앉아 있는 것을 떠나는 것보다 머무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행은 여행기를 읽으며 여행자가 간 장소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떠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낯선 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의외의 장소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는데. 지도를 사고 여행기를 모으고 제일 싼 항공권을 예약하고 도착할 도시의 명소를 찾아 루트를 정하는 일이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다. 아니 귀찮은 일이다. 그저 내가 알거나 모르는 이들이 떠난 여행의 기록을 읽으며 이곳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는 것이 좋다. 김연수의 『언젠가, 아마도』는 일상 중독자인 나를 위한 맞춤 여행기이다. 그가 『론리 플래닛』에 꾸준히 연재한 글은 다시 하나로 모여 책이 되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이 꾸준한 작가는 책이 되기까지의 원고의 양을 계산하고 언제까지 쓰면 책이 될지를 예측한다. 책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외로운 행성을 부유하는 우리가 만나 인사하고 헤어지고 다시 내일을 기약하는 기록이다. 


  소설가 김연수는 여행자 김연수가 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혼자 마시는 맥주와 호텔 커피숍에서 책을 읽는 시간은 소설이 산문이 되기도 한다. 사진가들과 떠난 여행에서 그 혼자 카메라 대신 수첩을 들고 풍경을 기록한다. 막상 소설을 쓰기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최적의 장소는 비행기의 이코노미석이라는 사실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몽골의 게르에서 먹었던 낙타 고기는 오래 씹어야 비로소 고기 맛이 나며 부산의 택시 기사들은 말이 많다. 그들은 부산의 많은 맛집을 알고 있는데 그들만의 언어로 말해야 맛집 앞에 내려 준다. 여수 밤바다는 노래만큼이나 아름답다는 그런 이야기들. 


  여러 곳을 다니며 사진을 잔뜩 찍는 것보다 호텔에 누워 눈이 아플 때까지 인터넷 하기를 좋아하는 소설가. 기껏 일본에 갔는데 한국 음식만 먹고 돌아온 여행자. 우표 수집을 위해 비둘기호를 탄 기억을 좋아하는 소년. 호스텔에 혼자라는 실감보다 다른 투숙객이 있다는 사실로도 평온함을 느끼는 고독가. 김연수는 여행을 하는 동안 여러 인격을 가진 사람이 된다. 『언젠가, 아마도』는 그 누구도 아닌 오직 단 한 사람, 김연수의 다채로운 모습과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나는 하얀 종이에 빽빽하게 쓰인 여행의 기록을 읽으며 러시아에 가게 되면 연필을 사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여행지에서 전부를 살 수 없을 땐 연필을 사도 좋다는 소설가의 말을 꼭 듣겠다. 연필, 연필, 연필. 다른 것도 아닌 연필을 사서 모으는 소설가의 귀여움을 모른척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그 거리에서 건물 하나가 문구점인 나에게만 천국일 그곳에서 연필과 공책과 연필과 공책을 살 계획이다. 


  떠나지 않아도 좋다. 여행은 누군가 등 떠민다고 해서 떠나지는 게 아니다. 여기의 내가 다른 곳에 있을 나를 상상하며 시작하는 게 여행이다. 『언젠가, 아마도』 떠나겠지만 『언젠가, 아마도』 떠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는 여기에 앉아 한 권의 책을 읽으며 희망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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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18 소설 보다
박상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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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소설 보다: 가을 2018』에는 세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각기 다른 작가가 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의 흐름은 비슷하다. 가을 편으로 나온 소설집이지만 겨울이 들어서는 길목에 서서 읽는다. 벽에 등을 기대고 이불을 꼭꼭 덮고 바람이 내 쪽으로는 침범하지 못하게 완전 무장을 하고서. 소설을 읽는 밤은 졸음 끝에 아침으로 이어진다. 그 많던 책갈피는 보이지 않고 나는 어디까지 읽었나 페이지 수를 외우며 잠이 든다. 아침에 눈을 떠서 어제 외워 두었던 페이지를 펼쳐 다시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는다는 건 지나간 환상의 자리를 더듬는 것이고 과거로서 영영 탈출했음을 확인받는 작업이다. 나는 살아남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소설을 읽는다. 


  박상영의 소설 「재희」를 나는 재회로 읽었다. 희와 회는 아주 비슷한 글자이고 그것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재희나 재회로 읽어도 무방할 여러모로 뜻이 통하는 단어이므로. 「재희」는 '나'와 대학 시절을 같이 보낸 여자친구의 이름이다. '나'는 게이로 아무 남자나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른바 금사빠로서 학과에 소문이 어찌나든 신경 쓰지 않는 쿨한 인물이다. 학과에서 겉돌기는 재희나 나나 비슷한 처지여서 그런 자들은 서로를 쉽게 알아봐 친해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세상의 이목에 관심이 없는 것도 비슷해서 그들은 동거 비슷한 걸 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남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이해도 합의도 없이 그런 생활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시간은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재희는 결혼을 한다. 재희의 결혼식장에서 분위기 깨는 축가를 부르고 돌아온 밤 한 시절이 지나갔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들」은 다행히 우리들로 정확히 읽었다. 우리들은 오해할 소지가 없는 단어이므로. 예전에도 느꼈지만 정영수의 문체는 과하게 단정하다. 소설 중간중간 일부러 힘을 빼는 듯한 문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가 구사하는 문체는 단추를 목 끝까지 채워 올려 보는 이를 긴장 시키게 만드는 단정함이 있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연인 정은과 현수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시종일관 조용하고 느리게 회상하는 소설 「우리들」에서 나는 상실 이후의 애틋함과 만난다. 우리는 모두 헤어지기 위해 사랑하고 싸우고 웃는 존재들임을 소설을 통해 깨닫는다. 나와 네가 만나 우리들이라고 부를 수 있기까지의 느린 서사를 보여주는데 우리의 시간이라는 게 거창하게 회자정리라는 말을 끌고 들어오지 않아도 만난 사람과는 반드시 헤어진다는 것으로 결말이 나 있기 마련이다. 


  최은영의 「몫」은 이제는 아무도 쓰지 않을 것 같은 90년대 후일담의 풍경 한자락을 보여준다. 대학교 편집부에서 만난 세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에게는 향수를 모르고 살아간 사람들에게는 그렇게들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만든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한 사람의 '몫'을 차지하고 살아갈 사람들인데 자주 부서지고 왜곡 당하고 나중에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몫」의 인물들은. 사랑이라고 우정이라고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고 부를 수 있는 감정을 숨기며 과거를 통과한 인물들은 오늘에 와서야 상처를 실감한다. 


  『소설 보다: 가을 2018』에 실린 세 편의 소설은 지나간 시절을 잊지 않고 현재라는 시간으로 데려온다. 소설은 과거를 잊을 수 없는 사람에 의해서 완성된다. 무심히 흘려 버리고 말 시간이 아님을 아는 자들이 쓴다. 대학에서 만난 '재희'와 한 번 더 재회할 수는 없지만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을 불러올 수는 있다. 현재의 사랑에 대해서 쓰려는 연인들이 '나'의 곁을 떠나자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기도 하며 그 시절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음을 깨닫는 것이다. 가을이 보낸 추억이라는 상자에 담긴 소설 세 편을 읽는 시간에 나의 불안함과 어두운 마음 역시 과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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