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엘러리 퀸 외 지음, 오토 펜즐러 엮음, 이리나 옮김 / 북스피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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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우는 아이에게는 서언물을 안 주신다고. 일 년에 단 하루,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기 위해 아이는 어른들의 그 말씀을 들으면 울음을 뚝 그친다. 자기 전 머리맡에 커다란 양말을 걸어두고 그 안에 담길 선물 상자를 상상하는 것이다. '땅에는 평화, 하늘에는 영광'을 외치는 사람의 혼잡한 무리를 걸어 선물을 사서 돌아오는 일도 귀찮게 느껴지지 않는 그 날은 크리스마스.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크리스마스에는 모두 마음이 관대해진다. 소원했던 친구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저녁 한 끼를 먹자고 말하는 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더욱더 친하게 지내보자며 웃음을 주고 받는다.


울지 않았나보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잔뜩 받았으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반가운 초인종 소리와 배달된 종합 선물 상자 같은 소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눈이 오기를 기대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았지만 눈은 내리지 않았다. 반짝 추위가 찾아왔다. 슈퍼 안에 반짝이는 불빛과 함께 진열된 과자 종합 선물 상자를 기억하는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추리 소설 작가들이 쓴 크리스마스 미스터리가 잔뜩 담긴 과자 종합 선물 같은 책이다.


과자 선물 상자를 손에 든 아이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열었다. 전부 좋아하지만 어떤 과자를 먼저 먹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기억이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당신,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할지 고민이라면 처음부터 읽어보기를 권한다. 네 개의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구분되어 있는 책은 한 편 한 편 그냥 지나칠 이야기가 없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바라는 주인공이 나오는 이야기부터 누군가가 죽고 산타 복장을 한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범죄가 벌어지는 이야기까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는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온갖 미스터리가 펼쳐진다.


너무 좋아서 한꺼번에 먹을 수는 없었다. 과자 선물 상자 속 과자를. 아껴서 하나씩 꺼내 먹으며 달콤한 맛을 즐겼다. 상자 안에는 달콤한 맛, 짠 맛, 신 맛 등 세상의 모든 행복한 맛이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우리가 그때 상상하지 못했던 인생의 쓴맛 같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 사건들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가슴 찡하고 우습고 조금 오싹한 이야기들이 곳곳에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가 뭐 별건가 라는 시큰둥한 생각이 들 때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면 당신의 막막했던 기분은 풀어질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대목인 좀도둑 이야기는 우습고 기발하다. 사람들은 산타 복장을 한 사람을 보고도 관대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그가 도둑인줄도 모른 채. 도둑질을 하러 가서 가정의 불화를 해결해주기도 하는 인물을 보고도 어찌 인상을 찡그리기만 하고 있겠는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과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폴 오스터의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정도만 알았던 나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에는 앞의 세 편의 이야기를 변형하고 비튼 이야기도 들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흥미롭고 우습고 무서운 크리스마스 소설이 잔뜩 있었다니. 그걸 우리의 미스터리 소설계의 명편집자 오토 펜즐러가 알뜰살뜰하게 모아 책으로 선물해 주는 것이다. 원래는 1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인데 국내에는 두 권으로 나누어서 나온다. 한 권은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올해 나왔고 다른 한 권은 2019에. 그리하여 우리 미스터리 마니아들은 내년까지 울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산타 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로 가득한 두툼한 책을 들고 오실테니. 우리 착한 어른이들은 내년 한해도 말 잘 듣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세상에는 미스터리한 일들이 많다.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속 내용처럼 이상한 일은 차라리 그것이 소설이었다면 하고 바랄 때가 있다. 허무맹랑하고 터무니 없는 일이 일어나도 그 일의 배경은 크리스마스. 사건은 일어나고 명탐정은 크리스마스라고 한가하게 쉬고 있지 않는다. 의뢰인이 찾아오면 곧바로 수사에 들어가고 단서 하나도 허투로 놓치지 않는다. 유령이 나온다는 저택에 들어가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도 관대한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인 크리스마스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소설과 현실의 세계를 넘나드는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읽으며 인간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한다.


일 년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표정으로 사람들과 어울렸는지를 고민하게 하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손에 들고 아껴 읽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찾아왔으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크리스마스만큼 미스터리한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날도 없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느라 정신 없는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는 그들은 도둑과 가난한 연인들 증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불을 켜고 달려가는 탐정들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행복한 나의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눈물과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니 모두에게 다정한 웃음과 인사를 해야 한다.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와 함께 『화이트 크리스마스 미스터리』를 선물해 주는 멋진 우리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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