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에 큰 결정을 내렸다. 결정하기까지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결정을 하고 나서는 긴 시간 동안 후회와 불안, 두려움을 안고 지내야 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그때보다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그러니까 김금희의 소설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 나서는 만성적인 불안과 걱정을 조금은 떨쳐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방암을 앓는 엄마를 돌보는 매기가 재훈에게 하는 이런 말 때문에.


"어머니 병세는 좀 어떠셔?"

내가 매기의 말을 기다리다가 안 되겠어서 먼저 물었다. 매기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았다. 그냥 재훈아, 먹고 싶은 것 먹고, 보고 싶은 사람 보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라고만 했다. 들어보면 환자를 돌보는 사람의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이었는데 나는 아주 확실히 절망했다. 매기의 대답에는 말의 진기랄까, 온도랄까, 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김금희, 『나의 사랑, 매기』中에서)


결혼한 매기와 어쩌다가 인연이 다시 닿아 만나는 재훈은 매기의 힘과 온도가 없는 말 때문에 절망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매기의 열기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저 말에서 나는 하루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네 자리의 숫자 중 끝자리가 바뀌는 것으로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내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조금은 당당해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순식간에 든 것이다. 1월 1일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 자리에서 나는 염세적인 성격을 숨기지도 않고 그 해가 그 해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라고 했다가 새해 일출을 보러 갈 것이라는 야심찬 계획을 하는 사람의 기를 죽이고 말았다. 그런 말을 잘도 내뱉고서 나는 다가오는 새해에는 희망이 가득 들어차고 소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질 것이라는 낙관을 하고 있는 것이다.


김금희의 소설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서 말이다. 대학 때 어떤 신념에 휩싸여 플라토닉한 러브로만 일관한 재훈의 연애는 그가 입대하고 나서야 끝이 나고 말았다. 매기의 백 한번 째 편지의 이런 구절로 말이다. "잘 지내, 미래는 현재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단지 긴 현재일 뿐이야." 재훈은 이게 이별의 말인지 미래를 함께 계획하자는 말인지 헛갈린다. 결국 전서구를 자청한 윤 병장이 가져다준 포스터에 매기가 쓴 문장으로 그 말은 단호한 이별의 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재훈은 오랜 밤을 의문과 불안으로 뒤척였다.



매기는 재연 드라마의 배우로 제주도에서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부주의한 성격의 친구를 둔 탓에 매기와 재회한 후 이상한 연애를 재훈은 하고 있다. 얼굴이 알려진 특성상 그리고 매기가 유부녀라는 사회적 제도의 특성상 그들은 레이디 치킨을 1층에 둔 집에서 만나거나 멀찌감치 떨어진 채 걷는 것이 데이트의 전부인 연애를 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온 현재든 현재로 이어진 미래든 그들에게는 현재라는 실감이 없는 상태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밤을 함께 보내고 맞이한 이른 아침의 끼니를 위해 찾아든 순대국밥집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예쁘게 보아준 아줌마가 부르는 노래에서 그녀의 애칭을 따 매기라고 지은 시점에서 연애는 애초에도 그랬지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그저 그렇게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김금희가 그리는 연애는 인물들의 대화나 행동에서 느껴지듯 열정이나 열기, 온기, 따뜻함 같은 발화점 이상의 온도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낯설고 이상한 세계다. 그럼에도 그들의 아슬아슬한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는 없는 현재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는 기이한 길의 삶의 방향을 지시받고 있다. 걱정은 단단히 붙들어 메고 파이팅 하자는 명랑만화의 주인공도 안 할 것 같은 대사를 나 스스로에게 하고 있다.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것 있으면 하고 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보라는 『좋은 생각』의 글 속 마지막 문장의 말 같은 말에도 힘이 불끈 나는 괴이한 경험.


재훈의 목적 없고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는 연애의 결말에서 삶의 무게란 야채를 고르고 그걸 들고 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선택한 야채니까 들고 가서 먹으면 된다. 누가 골라서 가방에 넣어준 것이 아니다. 무거워서 애초에 들고 가지 못할 것 같았으면 고르지 않아야 한다. 선택해서 넣었으니 들고 가야 한다. 재훈도 그렇고 매기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누가 선택해 준 것이 아닌 스스로 결정한 일이다. 불안도 걱정도 두려움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고른 것이다.


나에게든 타인에게든 거절의 의사를 보이고 싶어 손목에 X자 문신을 하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그렇게 거부의 의사를 명확히 밝혀야 진정되는 일이 있는 것이다. 새해라고 별거 있겠냐라고 무신경하게 말해서 미안하다. 떠오르는 새해를 보고 이제는 달라지자 하는 마음의 정리 의식이 필요해서 그 일을 하겠다고 한 것일 텐데. 뻔뻔하게도 『나의 사랑, 매기』를 읽고 나는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사람이 되어 걱정도 불안도 불만도 덜 한 사람으로 살 것이라고 다짐했다.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니 책에서 배우고 느끼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결국에는. '그의 사랑, 매기'는 잘 지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재훈도. 피해망상 쩌는 나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리카의 장갑
오가와 이토 지음, 히라사와 마리코 그림,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평점 :
절판



오가와 이토의 소설 속 『마리카의 장갑』의 배경은 루프마이제공화국입니다. 실제 하지 않는 작가가 만들어낸 곳입니다. 그 나라에서는 평등과 정의의 원칙이 우선시 됩니다. 크리스마스에도 트리를 꾸미기 위한 가문비나무는 어느 집이든 한 그루씩만 벨 수 있습니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숲의 정령이 산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열두 살이 되면 모두 수공예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여자아이는 실을 잣고 장갑을 떠야 하는 시험을 치려야 합니다. 남자아이는 접시를 만들고 바구니를 엮고 못을 박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나라에서는 자신들이 입고 먹고 살아갈 모든 것을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북위도 지방이라 겨울이 길고 춥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흑빵을 굽고 시마코프카라는 축하의 독주를 마십니다.


마리카는 루프마이제공화국의 나이가 같습니다. 마리카가 태어날 때 루프마이제공화국도 생겨났거든요. 가족의 축복 아래서 태어난 마리카는 나이 차이가 나는 오빠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며 지냅니다. 열두 살이 되어 치르는 수공예 시험을 간신히 치릅니다. 시험에 떨어지면 루프마이제공화국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없어 마리카는 힘들게 할머니에게 엄지장갑 뜨는 법을 배웁니다. 겨울이 긴 그곳 사람들에게 엄지장갑은 필수입니다. 여자들은 결혼할 때 엄지 장갑을 만들어 상자 안에 가득 넣어 가야 합니다.


엄지장갑은 털실로 쓴 편지 같은 것.

좋아하는 마음도 말이나 글 대신 엄지장갑의 색깔이나 무늬로 표현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좋아하는 마음'이 형상화되는 것입니다.

(오가와 이토, 『마리카의 장갑』中에서)


열다섯 살이 된 마리카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자신과 함께 춤을 추는 야니스. 마리카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싫어하는 엄지장갑을 뜹니다. 야니스에게 어울릴만한 털실 색깔을 고르고 할머니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엄지장갑을 뜹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에는 '예스'를 의미하는 말이 없습니다. 마리카에게 엄지장갑 고백을 받은 야니스는 장갑을 자신의 손에 끼는 것으로 마음을 받았습니다.


『마리카의 장갑』을 읽으면 온몸에 온기가 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곳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루프마이제공화국 사람들과 함께라면 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가 함께 떠난 나라의 여행기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쁘게 채색한 그림의 여행기에서 루프마이제공화국이 라트비아를 모델로 한 배경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발트 연안에 위치한 라트비아. 손으로 물건 만들기를 좋아하고 여행자에게는 웃음과 딸기를 건네는 소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


언젠가는 『마리카의 장갑』을 들고 라트비아를 떠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장갑을 사고 파란 하늘을 배경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마리카는 슬픔에 빠지지 않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주로 어려움을 이겨냅니다. 엄지장갑을 만들며 사람들의 언 마음이 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마리카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하기 힘든 말을 합니다. 고마워. 그녀가 우리에게 건네는 온기까지도 함께 짜인 장갑을 받아듭니다. 장갑을 손에 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맑은 하늘을 보며 걷습니다. 그리고 말하는 것이지요. 고마워! 한 번 더. 고마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럴 때는 좋다. 신인 작가의 소설을 읽는다. 읽다 보니 나의 정서와 맞는다. 딱 내 취향이다. 작가의 새 책을 기다린다. 읽는다. 팬이 되는 것이다. 정세랑. 처음부터 이 작가에 주목하지 않았다. 『이만큼 가까이』를 읽고 어머 이건 내 이야기인데,라는 생각. 다른 책도 찾아 읽었다. 절판된 책도 읽었다. 그리하여 나는 정세랑이라는 작가를 발견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는 그가 쓴 책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 『보건교사 안은영』이 드라마로도 제작이 되는 등 유명한 작가가 되어 버렸다. 나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어 더욱 기쁘다. 장편 소설만 읽었는데 단편집이 나왔다. 사랑스러운 제목을 달고서. 『옥상에서 만나요』.


옥상이라니. 방과 후 옥상을 떠올리면 무서울 수도 있겠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그런 게 아니다. 밝고 명랑하고 다정하고 따뜻하다. 나는 대체로 긴 묘사로 시작하는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읽고 보지만 처음부터 장황하게 시작하면 기가 빨린다. 정세랑의 소설은 타자 앞에서 속력을 줄이거나 휘어지는 등의 묘기를 부르는 변화구가 아닌 포수의 미트에 바로 꽂히는 직구 같은 스타일이다. 첫 시작부터 독자의 가슴에 직구를 때려 박는다. 『옥상에서 만나요』 속 아홉 편의 소설들은 대체로 발랄하고 튀고 명랑하다. 어두운 이야기도 정세랑의 손끝에서는 웃기고 우습게 된다. 사는 게 뭐 그리 어렵냐, 그냥 대충 살자 식의 낙관보다는 그래도 이상한 것들을 좋아하면서 살아보자라고 말해준다.


한 벌의 웨딩드레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 「웨딩드레스 44」를 시작으로 정세랑은 그만의 명랑한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기괴한 남자를 만나 인터넷에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어도 흔한 이름을 가진 덕에 자신이 누군인지 몰라서 다행이라는 소설 「효진」. 나는 '효진'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공급받으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간다. 「알다시피, 은열」은 역사 속에서 꼭 은열 같은 여자 두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표제작이기도 한 「옥상에서 만나요」이다. 일할 때 울고 싶으면 딱히 갈 때가 없었다. 혼자 화장실에 앉아 있었다. 「옥상에서 만나요」의 화자는 버티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옥상에 올라간다. 에어컨 실외기 쪽에서 서서 하늘을 본다.


그나마 '나'를 버티게 하는 건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세 명의 언니들이다. 그 언니들이 한꺼번에 결혼을 하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는 궁금하다. 비슷한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한꺼번에 결혼들을 하는지. 언니들이 털어놓는 비결은 이랬다.


"우리가 비결을 말해주면, 다른 데 안 말할 자신 있어?"

의자 깊이 기대어 있던 소연 언니가 물었어. 나는 열렬히 고개를 끄덕이며 할 수 있는 한 가장 순진하고 믿음직한 얼굴을 했고.

그러자 예진 언니가 뭔가 얄팍하고 누리끼리한 노트 같은 걸 하나 내밀었어.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야."

"고려대에 뭘 주문한다고요?"

"이 바보 자식, 똑바로 들어. 오더(order) 말고 스펠(spell)이라고!"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中에서)


웃기다. 나는 이런 말장난이. 고려대에 뭘 주문하는 게 아닌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비기를 받아들고 어쨌든 '나'도 결혼에 성공한다. 결혼을 하긴 하는데 남편을 만나긴 만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결혼과 남편이 아닌 게 문제다. 정세랑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대책 없는 명랑함이다. 지구인 아닌 생물체가 출현하고 뱀파이어 비슷한 게 나오고 귀를 잃었는데 귀에서 과자가 자란다. 정세랑은 명랑함과 기발함을 더해서 우리를 새로운 세계로 데려간다. 세랑 의 세계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찍이 세랑의 세계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이혼을 하는 친구 집에 가서 물건을 잔뜩 사가지고 오는 이야기 「이혼 세일」 . 갑자기 죽은 언니를 기억하기 위해 돌연사. net를 만드는 소설 「보늬」. 소식국과 대식국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과 전쟁 그리고 먹는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그린 「이마와 모래」 . 소설집은 어느 편을 골라 읽어도 흡족한 웃음을 지을 만큼 포근하고 발랄하다. 우중충하고 심각하고 우울한데 정세랑은 그만의 온기로 덮인 소설을 비정한 세상으로 내보낸다. 옥상에서 만나자면서 말이다. 준비가 되어 있다. 언제든지 옥상으로 튀어 올라갈 준비가.


결혼과 이혼. 취업과 해고. 탄생과 죽음. 우리는 늘 반대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인생이다. 결혼을 하면 행복하고 이혼을 하면 불행하다. 취업을 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해고를 당하면 죽어야 할 것 같다. 태어나면 축복이고 죽으면 슬프다. 이 모든 이분법적인 공식을 정세랑은 깨뜨린다. 그래서 좋다. 해보고 후회하라지만 나는 안다. 그런 일들은 굳이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임을. 세랑의 세계에서 우리는 마음껏 웃으며 낄낄거리고 옥상에서 만나 에어컨 실외기 밑에 붙어 있는 고대로부터 내려온 비기를 얻을 것이다. 그곳에 '어느 자리에서든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들어 있는 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럴지도 모르니 우리 모두 옥상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중독자의 여행 - 형과 함께한 특별한 길
니콜라스 스파크스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나도 안다. 그러니까 산다는 게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인생이라는 게 거창하거나 대단하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안다. 더 살아봐야 아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껏 살아보니 대체로 사는 건 대책 없고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만다는 사실 정도는 알게 되었다. 종교는 없지만 사람에 대한 기대는 있다. 감당할 만큼의 슬픔을 나에게 가져다준다는 어느 분의 말씀이 떠오른다. 슬픔에 겨워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시련만 주시니 이겨낼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동인형처럼 계속 끄덕 끄덕.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아, 휘청거릴 수는 있어도.


니컬러스 스파크스의 『일중독자의 여행』을 읽는 동안에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끄덕거림은 흐느낌으로 바뀌었다. 울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눈물이 나왔다. 책의 마지막에 실린 번역가의 글의 제목처럼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미국의 유명 소설가 니컬러스 스파크스가 그의 형과 떠난 여행기를 쓴 산문집이다. 책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일에 지친 니컬러스가 우편물에서 발견한 여행 책자를 보고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다. 그의 형 미카는 흔쾌히 동생의 제안을 수락한다.


책을 읽다 보면 알겠지만 형 미카는 낙천적이고 삶을 사랑하는 긍정주의자이다. 시련이 찾아와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힘을 가진 사람이다. 그에 반해 동생 니키는 삶이란 살아내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다. 기대한 대로 흘러가야 하며 정해진 계획 안에서 움직여야 안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런 동생과 형이 세계 일주를 떠난다. 『일중독자의 여행』 은 여행기이면서 그들 형제가 나누어 가진 삶의 무게를 털어내는 이야기이다. 그들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해 살아갔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되었다. 그럼에도 감당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는 듯이 그들 형제와 여동생을 키웠다. 강인한 부모 곁에서 자란 그들은 세상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를 여행기와 섞어서 풀어낸 솜씨는 훌륭했다. 일 중독자임을 자처하는 소설가 니키는 여행 전날까지도 과연 다섯 아이와 아내를 두고 여행을 떠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한다. 형은, 그의 낭만적인 형은 동생의 기분을 알아채고 마음껏 즐기라고 말한다. 동생의 기분을 풀어주고 타인을 편하게 해주는 형과 함께라면 세계가 아닌 우주여행이라도 함께 하고 싶다. 니키는 형과 떠나는 여행에서 그들 형제와 여동생이 겪은 성장 과정을 들려준다. 소설을 잘 쓰는 사람답게 그는 대중을 웃기고 울리게 할 줄 안다.


『일중독자의 여행』에서 우리는 그들이 자라온 환경을 보면서 웃고 울 수밖에 없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이므로. 책을 읽어가는 동안 차라리 이것이 소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닥친 시련은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으므로. 그럼에도 형제는 이겨 낸다. 살아가고 슬퍼하고 극복하고 다시 내일을 준비한다. 책의 전부를 이야기하지 않는 이유는 『일중독자의 여행』을 꼭 읽어보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시간은 잘도 흘러 어느덧 2018년도 끝나가고 있다. 올 한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을 꼽으라면 단연 『일중독자의 여행』이다.


우리가 슬픔에 빠져 넘어져 있을 때 손을 잡아주는 이는 누구인가. 내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때 손을 내밀어 나를 일으켜 주는 이가 있다. 가족. 시대의 흐름이 변해 가족의 개념도 바뀌었다. 혈연을 나누었다고 해서 가족은 아니다. 오래 만나 알아온 사람이 가족이 된다. 사람. 나의 슬픔에 공감해 주고 아파해주는 이는 온기를 가진 사람이다. 아무도 없다고 절망하면 안 된다. 『일중독자의 여행』을 읽으며 형제가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기를 바라본다. 꽃길이 아니어도 그들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길이 꽃길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랑의 다른 이름은 이해이다. 『일중독자의 여행』이 그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잠에서 깨고 난 그녀는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잠깐의 잠이었다. 눈사람이 되고도 그녀는 당황해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걸 받아들이고 긍정한다. 의문 없는 수긍이 한없이 슬프게 느껴지는 소설 한강의 「작별」은 겨울의 풍경을 담고 있다. 눈이 내릴까 기대했다. 아침에 창문을 열면 도시는 미세 먼지로 뿌옇게 흐려져 있다. 한 줌의 햇살을 기대해보지만 내내 어둡다. 어두운 거리를 사람들이 걸어가고 웃고 뜨거운 차를 들고 손을 흔든다. 오늘의 흐림은 내일의 밝음으로 기약되면 좋겠다는 듯이.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눈사람이 되어 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소설 「작별」을 읽는 동안 한강의 전작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의 시간을 떠올렸다. 대기권에서 비로 떨어질까 눈으로 내릴까 고민하는 하늘의 일을 인간은 알지 못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손바닥에 닿는 눈의 감촉을 느껴보는 것이다. 선택할 수 없는 일 앞에서는 선택 당하는 일도 괜찮다. 십 분 정도의 노천에서의 낮잠을 자고 난 그녀가 눈사람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역시 말도 안돼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소설의 일이라면 인정하고 대체로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낙관을 가져 본다.


인간을 인간이 아니게 만들어 버리는 세상에서 눈사람쯤이야. 대수롭지 않다. 심장과 옆구리가 녹아내리는 걸 걱정하는 것보다 눈사람이 되고 나면 남겨질 아들, 윤이를 먼저 떠올리는 「작별」의 화자에게 미안한 일, 손을 내밀어 내가 가진 반쯤의 온기를 나눠 주고 싶었다. 괜찮다면 상점에 들어가서 장갑과 목도리를 사서 건네주는 일. 그 일이 그녀를 파괴하는 일임에도 눈[雪]이 되어 그녀가 남기는 눈물이 이 세계를 적신다 해도 아직 남아 있는 이 세계의 훈기를 곁에 두고 싶다.


이제 다 틀렸어.

나직이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가 얼굴을 돌려 그녀를 멍하게 마주 보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두 사람의 입술이 만났다. 그가 차가움을 견디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입술과 혀가 녹는 것을 견뎠다. 그것이 서로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한강, 「작별」中에서)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을 들려주고 힘껏 껴안아 주는 일로 눈사람의 생애를 마치는 그녀. 나 없이도 세상에는 눈이 아니면 비가 올 것이고 아이는 자랄 것이다. 가장 신성한 눈 맞춤과 사랑을 주었던 아이의 생애를 지켜볼 수는 없지만 그녀는 다른 세계로 떠나기 위한 모든 작별의 준비를 마치고 돌아선다. 안녕이라고 윤이라고 현수 씨라고 녹아 없어지는 입술로 말할 수 있는 생애를 위한 작별의 순간만이 필요하다, 우리의 마지막 세기에는.


나와 타인의 구별되지 않는 세계에서 진실은 영원히 알 수 없다는 강화길의 「손」은 지독한 거짓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남편의 해외 근무로 인해 혼자 딸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나'는 아이를 돌봐주겠다는 시어머니의 제안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인다. 대체 맥락 없는 희망은 절망의 순간에서만 나타나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손」은 한마을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일들의 실체를 독자에게 친절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짐작하고 추측해야 하는 소설속 세계의 비밀은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강화길의 「손」이 시골의 음험함을 담고 있다면 김혜진의 「동네 사람」은 익명이 보장되면서 편안함을 느껴야 하는 공간인 도시에 감춰진 음흉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다양함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듯한 얼굴의 세련됨을 가장하는 도시에서 두 여자의 일상은 비밀이 될 수 없었다. 그녀들이 자주 가는 곳이 어디인지 심지어 사는 집까지 동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만한 곳에서 안락함 대신 오싹함을 느끼는 것이다. 나와 다르게 사는 건 무조건 배타적으로 여겨 버리는 곳. 말이 말이 불러오는 곳.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에서 두 여자의 내일은 보장되지 못한다. 끝내 그녀들은 '동네 사람'으로 불리지 않는다.


「희박한 마음」에서 권여선은 과거의 일이란 복기할수록 결국 일어나지 않는 일들이었다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 예전의 일을 떠올리는 시간이 찾아들면 그건 죽음의 시간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분명히 들리지만 어디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알 수 없는 소음의 근원을 찾는 일처럼 우리의 과거는 시작을 알 수 없다. 이승우는 소설 「소돔의 하룻밤」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찾아온 천사 두 명을 대하는 방식으로 인간 세계의 잔인함을 표현한다.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의 나약함과 무지를 일깨우려 찾아온 나그네를 롯을 제외한 소돔의 사람들은 폭력으로 대한다. 구원은 없다. 소설로서 증명하는 현실 세계의 명제이다.


사소한 정의마저 이루어지지 못하는 세계에서 청춘의 가치는 훼손되어 버린다는 이야기 정이현의 「언니」에서 우리는 출구 없는 문을 찾아 헤매는 경험을 한다. 갇힌 문 앞에서 탈출을 지시받은 청춘은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문을 찾고 문이라고 부를 수 없는 벽 앞에서 주먹으로 두드린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상한 명언을 떠올리면서. 지하 카페에서 파는 메뉴를 두고 지갑에 들어 있는 돈을 떠올리면서 주문을 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인회 언니는 집중해서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한다. 가장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는 권리마저 박탈 당한 현실에서 탈출자는 없다.


다양한 시간을 살고 있는 만큼 소설의 이야기도 다채롭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모두 다르고 모두 이상하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갈 것이 뻔하니 이해보다는 오해로 놔두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소설 덕분이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서 배운다. 현실에서 관계하는 인간들에게는 적절한 무시와 비웃음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미소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정지돈의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이해하기보다는 오해한 채로 놔두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다.


이제는 소설을 오독하는 재미로 살아간다. 답을 맞히고 높은 점수를 내는 일에는 실패했으니 소설을 읽으며 지낸다고 스스로를 비하하는 것도 신난다. 이왕 엉성하게 살기로 했으니 어떤 소설을 읽을 때는 느슨함을 유지한다. 과거를 이야기하는 듯하다가 돌연 표정을 바꿔 반복되는 미래의 예언을 들려주는 소설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읽을 때에는 긴장보다는 여유를 찾으시길.


소설의 세계가 그 세계가 일부러 꾸민 얼굴을 보여 주고 거짓말을 무람없이 하는 세계여서 한순간에 눈사람이 되고 오해를 받아도 그저 사과하는 일로 편안한 내일을 받아들이기로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소설의 실패는 현실의 긍정으로 연결된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서로를 불러 이곳에 내가 있고 그곳에 당신이 있다는 실감을 확인하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그 사이 나는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히 작별의 말을 하지 못했다는 진실을 떠올린다. 언제라도 그들에게 사랑과 안녕을 말할 준비를 하며 눈을 기다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