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옳다 - 정혜신의 적정심리학
정혜신 지음 / 해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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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열두 번도 넘게 바뀌는 게 사람 마음이다. 어떤 순간에는 좋았다가도 이내 마음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호들갑을 떠는 나와 금세 시무룩해지는 나. 어느 게 진짜 나의 모습일까. 항상심을 유지하며 살 수는 없을까. 고민하며 매일을 전투적으로 살아간다. 감정은 요동치는데도 그걸 무시하며 지내는 것이다. '나'를 숨기는 일에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다 마음이 경고를 하는 때가 찾아온다. 이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며 신호를 준다.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초조해지고 불안감이 수시로 드는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실감은 뒤늦게 찾아왔다. 그때는 절차와 형식의 반복을 거치느라 지쳐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야 엄마라는 존재의 부재를 감지했다. 길을 걷다 나이 든 사람을 볼 때. 냉장고 안에서 엄마가 준 참깨, 미숫가루를 털어먹을 때. 그리움이 몰려왔다. 순식간에 마음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마음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그때 내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립다 못해 우울하다고까지 느낄 수밖에 없었는지를.

감정도 그렇다. 슬픔이나 무기력, 외로움 같은 감정도 날씨와 비슷하다. 감정은 병의 증상이 아니라 내 삶이나 존재의 내면을 알려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우울은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높고 단단한 벽 앞에 섰을 때 인간이 느끼는 감정 반응이다.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벽, 하루는 24시간뿐이라는 시간의 절대적 한계라는 벽 앞에 있다. 인간의 삶은 벽 그 자체다. 그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울한 존재다.
(정혜신, 『당신이 옳다』中에서)

『당신이 옳다』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쉬운 언어와 다양한 사례로 풀어나간다. 개인이란 보편적인 것이 아닌 개별적인 존재로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우울증(기분부전장애)이라는 것 역시도 특수한 질병의 범주가 아닌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일반적인 감정임을 역설한다. 어떤 사람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병으로서 해석하면 안 된다고 그는 다정한 치유자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한 사람의 죽음을 경험한 일은 가볍게 여겨질 일이 아니었다. 『당신이 옳다』를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안의 이유를 더듬어 나가 보았다.

이유를 찾는 일은 쉬웠다. 이유를 찾지 않으려고 했던 내가 이유였다. 우울과 불안을 느꼈던 것은 한 사람의 말 때문이었다. 얼른 털어 버리고 웃으면서 보자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부러 웃음을 가장하고 명랑한 척 굴었던 것이다. 애도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죽음 이후의 시간은 불현듯 찾아오는 그리움과의 싸움이었다. 『당신이 옳다』는 '적정 심리학' 이론을 내놓는다. '적정 심리학'은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보다는 상황에 맞는 적정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우울과 불안으로 대변되는 마음의 고통은 질병이 아니다. 그것은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와 늘 함께 한다. 학교와 직장, 가정에서 닥치는 '나'를 향한 위협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가. 『당신이 옳다』는 당신의 마음이 힘들 때 혹은 누군가 당신을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일러준다. 우리 사회가 가지는 우울증에 대한 진단 사례와 치료 방식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음을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당신의 감정을 우울증이라는 질병으로 가둬 버리는 것을 경계한다.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나'는 왜 불안해하는가.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신이 옳다』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는 것은 '공감'이다.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나'를 이해하려는 공감이 필요하다. 그 상황에서 '나'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그 마음은 어땠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정혜신은 말한다. '나'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당신'에 대한 공감이 가능해진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를 초등학생에게 물었다. 잔소리는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이다. 모든 이들의 공감과 웃음을 불러일으킨 말이었다. 초등학생도 아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에게 하는 말이란 도움이 되라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받아들이는 자신은 기분이 나빴음을. 그것도 대단히. 『당신이 옳다』에서는 타인이 고민을 이야기 해올 때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상황이 발생했고 상처를 받은 이가 생겼다.

그가 당신에게 구조 요청을 한다. 이런 일이 생겼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고.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을 때 상황에 대한 '공감'보다는 앞으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 나도 모른 채 가슴 한구석에 서운함으로 숨어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야 고통으로 다가온 것이다.

『당신이 옳다』는 우리를 우리 자신이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책이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넘어질 수 있는 거잖아. 그럴 때 네 마음은 어땠니라고 물어오는 책이다. 고통받는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치유는 시작된다고 말한다.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소외의 언어를 들려주는 것이 아닌 이제 당신을 들려주세요라며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우리가 되게 만든다. 자격증이 있는 전문가만이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공감자'가 될 때 다정한 치유자가 되어 어려운 한 시절을 통과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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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1
요한나 슈피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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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약간의 돈을 주었다. 돈을 주면 서점으로 가서 책 한 권을 사서 달려 나왔다. 그때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얼마나 황홀해 보이던지. 생각 같아서는 몽땅 그 책을 가지고 나오고 싶었다.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한 번은 진지하게 다른 집에는 세계 명작 동화 같은 책들이 전질로 쌓여 있다고 부럽다고 말했다. 엄마는 백과사전을 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동화를 읽기보다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보면서 딸이 똑똑해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세계 명작 동화를 사주었다면 어땠을까. 요한나 슈피리의 『하이디』를 읽으며 가정해 본다.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 활발하고 명랑하게 생활하지 않았을까. 그 애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 백과사전은 숙제를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빳빳한 종이를 넘기며 온갖 지식의 나열을 베꼈다. 나이가 들고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어서야 독서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무엇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보면서 한 권 한 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모와 살게 된 하이디는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알프스 삼촌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 끝에 마음을 다쳐 마을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고 산 위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 토비야스가 죽고 남은 딸 하이디를 돌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걱정한다. 괴팍하다고 소문난 그가 어린 손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데테 이모는 갑자기 나타나 할아버지에게 하이디를 맡기고 홀연히 떠난다.

그날부터 하이디의 시간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걱정은 마시라. 할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하이디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하이디는 염소를 모는 소년 페터와도 친해진다. 염소의 이름을 불러주며 알프스 산에 동화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도 하이디는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자라난다. 건초 더미를 모아 침대로 만들고 고원에 있는 꽃을 보러 다니고 눈이 먼 페터의 할머니 그래니와도 친구가 된다. 하이디의 시절은 꿈과 빛으로 충만할 것 같았다.

데테 이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느닷없이 나타나 하이디를 프랑크푸르트로 데려가 버린다. 부잣집에 사는 병약한 소녀의 말 벗이 되어주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이디는 낯선 곳으로 가고야 만다. 그곳에서 클라라를 만나며 글을 익히고 자신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제제만 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이디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의 말을 주는 제제만 부인의 행동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하이디가 거의 하룻밤 만에 철자를 다 익혔습니다. 이제 글을 '읽어요.' 글을 처음 배우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보아도 하이디가 훨씬 더 정확하게 잘 외우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이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제제만 부인이 흐뭇해하며 말했다. "아마도 이제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나 봅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우리 모두 그 아이가 여기까지 온 것을 하늘에 감사하도록 하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고요."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157쪽)

『하이디』는 나를 책이 읽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던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때는 속상했다. 세계 명작 고전 전집을 사주지 않아서.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본다. 내게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려고 하던 다정한 엄마가 있었고 글을 알아 책을 읽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계 명작 고전 전집에는 『하이디』가 실려 있을 수도 있었겠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는 착한 소녀 하이디를 일찍 만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지금 어른이 되어 만나도.

도시에서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알프스 산으로 돌아간 하이디는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이 하이디의 마음에 쌓인 것이다. 그래니 할머니에게 줄 롤빵을 모으는 착한 하이디. 클라라의 마음이 다칠까 봐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섬세한 하이디. 다시 돌아온 하이디는 할아버지가 계신 산에서 매일 아침 기쁘게 눈 뜨는 행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 『하이디』는 그걸 내게 알려주었다. 별을 보고 잠들고 일어나면 전나무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는 하이디가 있는 다락방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그 애가 하는 말을 들으며 기쁘게 웃고 싶다. 오늘 눈을 뜨고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란 기쁘고 소중한 것임을 『하이디』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과거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보낸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제제만 부인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너무나 고맙고 행복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이디가 다시 그래니를 포옹했다.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났네요, 그죠?" 아이가 말했다.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358쪽)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동화의 시간은 끝이 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이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당신과 나,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계산하지 않고 이해관계로 따지지 않는 다정한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은 행복하게 살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하이디』에는 오늘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근심이 아닌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야겠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하이디』를 읽을 수 있는 오늘이어서 행복하다. 하이디와 클라라의 우정이 동화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하기를 소망한다. 당신에게 곧 찾아올 『하이디』를 환영한다.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 하이디와 함께라면 내일이라는 시간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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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의 영화 - 공선옥 소설집
공선옥 지음 / 창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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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반가운 일이 하나 생겼다. 공선옥의 신간 『은주의 영화』가 나온 것이다. 행복한 기분으로 소설을 읽어 나갔다. 소설의 존재 이유를 말하는 듯한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가 궁금한 이들이 있다면 꼭 『은주의 영화』를 읽었으면 좋겠다. 그 안에는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이 담겨 있다. 공선옥의 소설을 사랑한다. 사는 것에 시달릴 때 공선옥의 소설을 읽고 나면 그래도 살아야지 한 세상 울고 웃으며 살아내야지라는 의젓한 마음이 든다.

「행사작가」에서는 행사를 '뛰며' 살아가는 왕년의 소설가가 나온다. 소설은 쓰지 못하지만 예전에 써 둔 이야기로 지금을 버티는 그이에게서 진한 짠함을 느낀다. 이혼한 아버지에게서 양육비를 타내려는 현실에 일찍 눈을 뜬 아이는 「순수한 사람」에서 끝내는 순수함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소설은 순수하고 싶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이들을 그려낸다. 「오후 다섯시의 흰 달」은 불의의 사고로 아들과 아내를 잃은 한 남자가 등장한다. 늙어가는 그가 바라는 것은 요리 레시피를 검색해서 밥을 해 먹일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표제작이기도 한 「은주의 영화」는 소중한 소설이다. 광주의 시간을 불러와서 진하게 한 판 굿을 벌인다. 카메라에서 튀어나오는 죽은 이들의 넋두리는 오래도록 잊히질 않는다. 역사라는 거대함에 함몰된 개인의 시간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상처로 가득한 세월이었다. 어떤 순간은 잊길 원했지만 끝까지 현재의 시간까지 쫓아왔다. 팍팍한 현실에게까지 미치는 과거의 악령을 은주는 떨쳐 낼 수 있을 것이다. 「염소 가족」은 가족이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는지 모를 걱정으로 출발하는 소설이다. 가족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에게 바쳐진다.

「설운 사나이」는 쌍용 자동차의 시절을 다룬다. 미용실을 운영하는 '나'와 자동차 회사에서 해고를 당한 '그'의 시간이 만나면서 사는 건 대체 무엇인가를 묻는다. 「어머니가 병원에 간 동안」, 「읍내의 개」는 아직도 이런 소설을 쓴단 말인가. 그 시대는 이미 기억 속에서 저물어 버린 건 아닌가. 어쩌자고 그때 그 시간들을 붙잡고 있는가. 애가 닳는 소설들이다. 끝내 포기하지 않고 유년을 끄집어 내는 공선옥의 강한 힘에 붙잡힌다. 이토록 질기디질긴 생명력으로 가득한 소설을 써내는 공선옥의 손을 잡고야 만다.

첨단을 달리는 지금 공선옥의 소설은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가치를 일깨워 준다. 사람들은 한 번도 가난해 본 적이 없는 것처럼 시치미 떼며 근사하고 세련된 것을 찾는다. 우울한 이야기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여전히 우리는 아프고 힘든데도 말이다. 소외되고 존엄성을 파괴 당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은주의 영화』는 상처받은 우리들에게 온기를 전해준다. 돈과 사랑과 인간과 세상에 받은 잔인한 상처. 소설이 왜 필요한가. 우리가 모르고서 우리에게 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위해서이다.

『은주의 영화』는 그 일을 기꺼이 해낸다. 공선옥의 소설은 긴 노래다. 끊어지지 않게 온 밤을 불러야 하는 노래인 것이다. 문장은 자유자재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고 서술자를 바꾼다. 이곳에서 시작한 노래는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기를 반복한다. 나는 소설을 읽어내며 살아간다. 소설이 있어서 사는지도 모르겠다. 공선옥의 소설을 처음 읽었던 고등학생의 나는 이제 사는 것에 지쳐가는 어른이 되었다. 지치고 피곤한 기분이 들 때마다 공선옥의 소설을 회복제처럼 꺼내어 읽는다.

그이의 소설은 과거를 추억하고 미처 말하지 못한 사과의 말을 할 수 있게 해준다. 『은주의 영화』는 우리에게 과거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부끄럽고 무서워서 숨겨 두었던 시간을 꺼내 보일 수 있는 힘을 보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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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음, 임진실 사진 / 돌베개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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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락거리가 많은 이 시대에 나는 왜 책을 읽는 것일까. 다른 취미 활동을 가져볼 만도 한데 말이다. 노래를 부르거나 물건을 모으거나 미래를 위해 공부를 좀 해두거나 해도 될 텐데. 아침과 저녁 시간에 주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읽기로 마음먹은 책은 끝까지 읽으려고 한다. 주로 읽는 책의 분야는 문학. 어려운 내용과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은 부족하다. 허구로 만들어진 이야기를 읽으며 안도와 위로를 찾으려고 한다.

책은 나를 '알 수 없음'의 상태에서 '알 수 있음'의 단계로 나아가게 해준다. 뛰어난 머리는 아니지만 책을 읽으며 세계의 슬픔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알지 못했지만 알 수 있는 나를 만들어 가고 싶다. 은유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외면하고 모른 척했던 고통과 슬픔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알지 못한다고 해서 어떤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게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해도 사건은 일어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많은 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이 왜 일을 하면서 사고를 당해 우리 곁을 떠나는지 알았으면 한다. 더 이상 아이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알지 못하는 아이'가 되어서는 안된다. 은유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2014년 초봄에 한 아이의 죽음을 듣게 된다. 현장실습생으로 CJ제일제당에서 일하던 고3 김동준은 "너무 두렵습니다. 내일 난 제정신으로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라고 트위터에 글을 남기고 죽음을 택한다.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와 선임의 폭행이 이유였다. 김동준은 프로그래머가 꿈이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동아마이스터고에 들어간 이유는 꿈 때문이었다. 컴퓨터 프로그램 기술을 배워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고3이 되어 현장실습을 나가게 되었지만 동준이가 배운 적성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햄과 소시지를 만드는 진천 육가공 공장으로 실습을 나가게 된 것이다. 일이 힘들고 폭행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발설하지 말라는 말을 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스무 살을 살아보지도 못한 채였다.

꿈을 가지고 공부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선량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아이들이 고통스럽게 사고를 당하고 죽어갈 때 어른은 없었다. 잔업과 야근을 시키고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폭행까지 했다. 사업장에서 일어난 재해이지만 회사는 돈을 주고 가족들을 입막음하기 바빴다.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일하며 기계에 몸이 끼여 중환자실에서 열흘을 살다가 하늘로 떠난 이민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절대 애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자기 아픔을 남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어떤 면에서 씩씩하다. 자기 불행을 마주하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런 존재와 마주하는 것 자체가 내게 힘이 됐다. 누군가 나를 믿고 자신의 아픔을 내어주는 일은 나를 숙연하고 의젓하게 만들었다. 다 잃은 (것 같은) 절망에서만 삶이 내어주는 진실이 있기에 타인의 아픔을 듣는 일은 삶의 중핵에 다가는 귀한 체험이기도 했다. "삶은 우리를 저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삶을 저버릴 수 있을 뿐이지요. 어떤 유형의 삶이든 우리에게 뭔가를 가져다줍니다."라는 중국 소설가 위화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中에서)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아픔과 견딤 그리고 나아감을 말하는 책이다. 남부러울 것 없이 키운 아이들이 일을 하다 죽었다. 남은 부모는 어떻게 살아갈까. 그들의 상처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하는가. 은유는 아픈 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죽었고 시간은 흘러간다. 버틴다는 마음으로 견뎌낸다. 자신들이 겪은 일을 말하고 연대한다. 은유는 김동준 군의 어머니의 말을 듣고 이민호 군의 부모님을 만난다. 특성화고에서 일하는 선생님, 노무사, 학생,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의 목소리를 담는다.

책을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음의 상태였다. 친구들 만나서 밥 먹고 부모님께 용돈 드리고 저축하고 싶은 작은 소망으로 일을 하던 아이들이 어떻게 쓰러져 갔는지. 그렇게 되기까지 어른들은 무얼 하고 무얼 하지 않았는지. 이제 알 수 있음의 시간으로 나아간다. 대한민국에서 돈 없으면 아이를 낳지 말라는 부모님의 절규에 가슴이 사무쳤다. 집안에 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일찍 철이 든 착한 아이들이었다. 왜 그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했나.

아이들이 들어야 할 꼭 필요한 수업이 있다. 노동인권 수업. 근로계약서와 표준 계약서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직장 안에서 부당한 처우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말을 하는데 그보다 민주노총의 노무사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빠른 해결책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신분은 학생이라고 하면서 일의 강도는 어른 이상의 것을 요구할 때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한다.

미안하다. 너희들의 꿈과 희망을 알지 못해서. 너희들이 좌절과 분노로 슬퍼할 때 모른 척해서.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어른으로 살지 못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은 나를 부끄럽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공부 잘하고 좋은 데 취직해서 사는 것보다 그저 곁에 있으면서 밥 먹고 웃어주는 게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슬픔을 눌러두는 대신 '겸손한 목격자'로서 쓰인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에서 나는 불행을 이겨낸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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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 - 간단함, 병맛, 솔직함으로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임홍택 지음 / 웨일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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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 반대로 홍콩에서는 연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기사가 있었다. '시위의 주역...홍콩에도 90년 대생이 온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홍콩 시위대를 구성하는 연령 중에 10~20대가 절반을 넘는다는 내용이었다. 1980년대 초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가 시위를 이끌면서 변화의 바람을 이끌어 내고 있다는 내용을 읽으며 뭉클했다. 기존의 낡은 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바라는 열망이 그곳에 모이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하려고 했었고 성공 했었던 시도였다. 멀리서나마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임홍택의 『90년생이 온다』에서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90년 생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90년생이 가지는 사고방식과 생활 패턴을 쉬운 언어로 분석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와 기존 질서를 바꾸려는 시도, 소비 세대로서 호갱이 되지 않으려는 모습이 담겨 있다.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모험 보다 안정된 생활을 추구하려는 것으로 보이는 그들의 속내를 탐구한다.

그들은 새로운 기술에 저항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와 모바일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었다. 생각도 간단하게 그러나 유머는 잃지 않으면서 영리하게 살아가기를 꿈꾼다. 어른들이 물려주지 못한 안정됨을 꿈꾸기보다 스스로 안정을 찾기를 원한다. 드립력을 가지면서 병맛 문화를 추구하며 팍팍한 현실을 살아간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소비 세대로서 90년 생들의 활약이다.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 인터넷의 바다에서 정보를 찾고 윤리적인 기업의 물건을 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일방적인 주체가 아닌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능동적인 소비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기업은 90년생을 직원으로 받아들일 때와 소비자로서의 면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밝힌다. 회사에 충성하며 헌신하며 헌신이 되어가는 세대가 아니다. 광고를 보고 현혹되어 그것만을 사는 충성 고객의 세대도 아니다, 90년생은.

『90년생이 온다』는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가야 할 90년생의 마음의 지형이 어떤 모습인지 알려준다. 우리가 함께 이룩해낸 새 시대는 어리다고 꼰대처럼 가르치려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는 모두 꼰대이거나 미래의 꼰대이다(꼰대 테스트라는 것이 있는데 몇몇 항목에 예를 해버렸다). '얘네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라는 마음으로 쓴 책은 '얘네 이런 생각을 하네'라는 공감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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