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디 걸 클래식 컬렉션 1
요한나 슈피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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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에게 책을 사달라고 조른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약간의 돈을 주었다. 돈을 주면 서점으로 가서 책 한 권을 사서 달려 나왔다. 그때 서점에 진열된 책들은 얼마나 황홀해 보이던지. 생각 같아서는 몽땅 그 책을 가지고 나오고 싶었다. 한 권의 책을 사서 읽는 것으로 허전한 마음을 달랬다. 한 번은 진지하게 다른 집에는 세계 명작 동화 같은 책들이 전질로 쌓여 있다고 부럽다고 말했다. 엄마는 백과사전을 사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동화를 읽기보다는 지식을 쌓을 수 있는 백과사전을 보면서 딸이 똑똑해지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때 엄마가 세계 명작 동화를 사주었다면 어땠을까. 요한나 슈피리의 『하이디』를 읽으며 가정해 본다. 여자아이들의 세계에서 활발하고 명랑하게 생활하지 않았을까. 그 애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때 그 백과사전은 숙제를 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었다. 빳빳한 종이를 넘기며 온갖 지식의 나열을 베꼈다. 나이가 들고 책을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어서야 독서의 체계를 잡아나갔다. 무엇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보면서 한 권 한 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이모와 살게 된 하이디는 그마저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알프스 삼촌이라고 불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다.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방탕한 생활 끝에 마음을 다쳐 마을 사람들과도 만나지 않고 산 위에서 혼자 살고 있다. 할아버지의 아들 토비야스가 죽고 남은 딸 하이디를 돌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걱정한다. 괴팍하다고 소문난 그가 어린 손녀를 잘 돌볼 수 있을지. 데테 이모는 갑자기 나타나 할아버지에게 하이디를 맡기고 홀연히 떠난다.

그날부터 하이디의 시간이 눈부시게 펼쳐진다. 걱정은 마시라. 할아버지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하이디는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재주가 있는 아이였다. 하이디는 염소를 모는 소년 페터와도 친해진다. 염소의 이름을 불러주며 알프스 산에 동화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안 계시는 상황에서도 하이디는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으로 자라난다. 건초 더미를 모아 침대로 만들고 고원에 있는 꽃을 보러 다니고 눈이 먼 페터의 할머니 그래니와도 친구가 된다. 하이디의 시절은 꿈과 빛으로 충만할 것 같았다.

데테 이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녀는 느닷없이 나타나 하이디를 프랑크푸르트로 데려가 버린다. 부잣집에 사는 병약한 소녀의 말 벗이 되어주어야 한다면서 말이다. 하이디는 낯선 곳으로 가고야 만다. 그곳에서 클라라를 만나며 글을 익히고 자신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제제만 부인과 이야기를 나눈다. 하이디가 글을 읽을 수 있도록 도움의 말을 주는 제제만 부인의 행동은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하이디가 거의 하룻밤 만에 철자를 다 익혔습니다. 이제 글을 '읽어요.' 글을 처음 배우는 다른 학생들과 비교해보아도 하이디가 훨씬 더 정확하게 잘 외우고 있었습니다.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이 세상에는 신기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제제만 부인이 흐뭇해하며 말했다. "아마도 이제야 배우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나 봅니다. 이유가 무엇이 됐든 우리 모두 그 아이가 여기까지 온 것을 하늘에 감사하도록 하죠.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기를 기원하고요."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157쪽)

『하이디』는 나를 책이 읽고 싶어서 엄마를 졸랐던 그 시간으로 데리고 간다. 그때는 속상했다. 세계 명작 고전 전집을 사주지 않아서.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본다. 내게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들어주려고 하던 다정한 엄마가 있었고 글을 알아 책을 읽을 수 있던 어린 시절이 존재한다. 어쩌면 세계 명작 고전 전집에는 『하이디』가 실려 있을 수도 있었겠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남의 아픔을 먼저 들여다보는 착한 소녀 하이디를 일찍 만났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지금 어른이 되어 만나도.

도시에서 다시 할아버지가 있는 알프스 산으로 돌아간 하이디는 전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게 되었다. 경험이 하이디의 마음에 쌓인 것이다. 그래니 할머니에게 줄 롤빵을 모으는 착한 하이디. 클라라의 마음이 다칠까 봐 할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섬세한 하이디. 다시 돌아온 하이디는 할아버지가 계신 산에서 매일 아침 기쁘게 눈 뜨는 행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늘이라는 말은 얼마나 달콤한 말인지. 『하이디』는 그걸 내게 알려주었다. 별을 보고 잠들고 일어나면 전나무의 기척을 먼저 알아채는 하이디가 있는 다락방으로 달려가고 싶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그 애가 하는 말을 들으며 기쁘게 웃고 싶다. 오늘 눈을 뜨고 새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란 기쁘고 소중한 것임을 『하이디』을 읽으며 다시 깨닫는다. 하이디의 손을 잡고 과거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우리가 미처 고맙다고 말하지 못하고 보낸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제제만 부인의 손을 꼭 쥐었다. 하지만 너무나 고맙고 행복한 나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하이디가 다시 그래니를 포옹했다.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났네요, 그죠?" 아이가 말했다.
(요한나 슈피리, 『하이디』中에서, 358쪽)


모든 일이 행복하게 끝나는 것은 동화 속에나 나올만한 결말인지도 모른다. 동화의 시간은 끝이 나지만 현실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하이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당신과 나, 우리는 행복한 하루를 살아갈 의무가 있다고. 계산하지 않고 이해관계로 따지지 않는 다정한 사람으로 누구에게나 즐거움을 주며 살아갈 수 있다면 오늘은 행복하게 살아간 것이라고 말이다. 지금 어른이 되어 읽는 『하이디』에는 오늘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역시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살았다.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에 대한 근심이 아닌 내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반짝임을 놓치지 않으며 살아가야겠다. 조금 늦게 도착한 『하이디』를 읽을 수 있는 오늘이어서 행복하다. 하이디와 클라라의 우정이 동화의 시간 속에서도 영원하기를 소망한다. 당신에게 곧 찾아올 『하이디』를 환영한다. 명랑하고 쾌활한 친구 하이디와 함께라면 내일이라는 시간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 경품 이벤트 응모용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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