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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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안다. 나는 약간 꼼꼼한 사람이라 매일 일기를 쓰기 때문이다. 약간 꼼꼼하게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쓴다. 어디 보자. 여섯 시에 일어나서 컴활 실기 공부하다가 냉장고에 들어 있는 간식을 이것저것 때려 먹고 버스 타러 간다. 학원 수업을 듣고 다시 버스 타고 집에 와 점심을 먹는다. 청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기출문제를 푼다.


중간중간에 간식을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금요일에 실기 시험을 보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긴장 상태였다. 누가 보면 국가 고시에 도전하는 줄. 컴활 2급도 국가 공인 시험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난리 피우면서 공부하지는 않겠지. 엑셀을 못 다루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부했다. 그동안 나는야 우물 안 개구리.


금요일에 시험 보러 갔다. 한 시간 일찍 가서 책을 들여다봤다. 중첩 If 함수 문제를 못 풀어서 계속 그것만 들여다봤다. 결론적으로 한 문제 나왔다. 아싸. 코로나 때문에 시험장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서 3월부터 시험료가 오른다고 해서 무조건 이번에 합격해야 했다. 그런 마음이라 내내 불안, 초조, 긴장감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시험 보는데 긴장돼서 손이 벌벌 떨렸다. 화면 상단에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서 한대로 차분히 천천히 해도 이십분 정도에 마쳤으니까. 타이핑도 정확히 치려고 했다. 초반에 조건부 서식 문제를 못 풀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으로 지정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어라. 이건 안 배웠는데. 당황. 일단 패스. 아는 거 먼저 풀고 다시 조건부 서식 문제. 어찌어찌해서 결괏값이 나오기는 했다.


나는 시험이 끝나면 바로 나오는 줄 알았는데 정확히 40분이 돼야 시험지 주고 나올 수 있었다. 못 푼 문제가 없어서 안도했다. 결과는 2주 후에 나온다. 근처에 유명 빵집이 있어서 사러 갔는데 오늘 치는 다 소진됐단다. 울적. 집에 와서 삼겹살 구워 먹고 드러누웠다. 책상에는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휴식.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 『명랑한 갱은 셋 세라』를 토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잘 읽혀서. 너무 재밌어서. 너무 신나서. 역자의 말에 나오는 것처럼 이사카 고타로를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어본 사람은 없다고. 딱 내가 그랬다. 이사카 고타로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모든 것이, 까지는 아니고 일부가 달라졌다.


소설이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소설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란 얼마나 많은지. 넷플릭스와 게임, 음악 듣기, 맛집 찾아다니기, 마트 구경하기, 문구 사이트에 들어가 배송비 아껴보겠다고 각종 문구 용품을 오만 원어치 담고 있기 등등. (저만 이런 겁니까. 혹시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명상 음악 틀어 놓고 하루를 반성하며 살고 있나요.)


책 읽기 말고도 재미있는 게 한가득인데 왜 책을 읽고 있느냐. 다른 행위들은 하다 보면 지루해졌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눈에 피로 대신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작은 세상. 언제든 펼치기만 하면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책은 준다. 이야기가 종횡무진 예측 불가결한 곳으로 달려가면 더 좋고. 가끔가다 잠언 비슷한 문장이 나오면 그것대로 좋다.


여기 네 명의 인물이 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들.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본심을 알아맞히는 나루세. 동물을 좋아하는 손이 빠른 구온. 수다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교노. 몸 안에 시계가 있다고 여길 정도로 정확히 시간을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유키코. 그들은 은행강도다. 명랑한 갱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명랑한 갱은 셋 세라』를 토요일 오전 시간에 독파했다.


한 번 읽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나 보다. 순수한 한글로만 된 글을 읽으니 피곤이 풀렸다. 은행을 터는 것으로 시작하는 『명랑한 갱은 셋 세라』. 각자 직업은 따로 있고 어쩌다 모이게 된 그들은 은행을 턴다. 비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간다. 유키코의 아들 신이치가 일하는 걸 보러 가면서 이상한 일에 휘말린다.


그 '이웃 언니'는 공원을 지나가다가 "나도 오늘은 학교 땡땡이칠까"하고 다카라지마 사야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친구는 없어도 돼." 그렇게 말하며 웃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다. "친구가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야.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고, 조금만 친절해지면 돼."

(이사카 고타로, 『명랑한 갱은 셋 세라』中에서)


은행을 터는 도둑 앞에 더 이상한 악당이 나타난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유명인들의 뒤를 캐고 심지어는 일반인의 사생활까지도 폭로하는 주간지 기자, 히지리. 과연 명랑한 갱들은 히지리와 어떤 대결을 펼칠까. 반전이 이어지면서 소설은 신나게 앞으로 나아간다. 셋을 세는 순간,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두려운 내일이 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고, 조금만 친절해지면 돼.'


악당 히지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상 리뷰를 빙자한 컴활 2급 시험 도전기였습니다. 전 또 며칠 쉬다가 다음 시험 준비하러 갑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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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 7인 7색 연작 에세이 <책장 위 고양이> 1집 책장 위 고양이 1
김민섭 외 지음, 북크루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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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두 달에 걸쳐 읽었다. 이 책을 이렇게 오래 읽을 줄이야. 이렇게 오래 읽을 책이 아닌데 하면서도 오래 읽었다. 머리맡에 놓아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었다. 하나의 주제로 일곱 명의 작가들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라 가능했다. 한 편 읽고 생각에 빠지다가 잠드는 일상이 무한 반복되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원에 가느라 몸이 피곤했다. 매일 같이 일어나면서도 난 아침형 인간은 아니지, 아니고 말고, 자괴감에 빠진다.


요즘은 미라클 모닝이라고 해서 새벽 기상이 유행이라는데. 시도는 하고 있지만 오후가 되면 낮잠을 무려 세 시간이나 잔다. 저질 체력. 한숨. 낮잠 자기 전에도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었다. 죽어라 피곤해서 누웠는데 막상 잠이 드는 건 쉽지 않으니까. 옆으로 누워서 섬세하게 조절된 색온도 불빛에 의지해 한 편씩 읽어나갔다. 전자책의 좋은 점이다. 잠이 올 때 버튼만 누르면 암흑이 되니까. 불 끄는 것도 귀찮은 나에게 전자책은 킹왕짱.


아무튼으로 시작하는 주제들. '고양이, 작가, 친구, 방, 나의 진정한 친구 뿌팟퐁커리, 비, 결혼, 커피, 그 쓸데없는'으로 작가들은 에세이를 쓴다. 읽기 전부터 호기심이 일었던 주제는 '작가, 방'이었다. 글을 쓰기 위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자신만의 세계를 꾸려가기 위해서는 방이 있어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내가 책갈피 해 놓은 부분은 김민섭 작가의 글.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언어를 가진 사람이 된다는 말과도 같다. 그러면 그 누구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타인의 세계 안에서 타인의 언어로 자신이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은, 모두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두려움을 준다. 등단의 과정이 없더라도, 대형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하지 않아도, SNS에든 블로그에든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해 나가는 모두는 작가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中에서, 김민섭)


전부 솔직하진 않지만 약간 솔직한 글이라서 에세이가 좋다. 글이란 게 전부 솔직해도 문제 전부 가짜도 문제. 피곤에 찌들어서도 읽을 수 있다는 책이 있다는 사실. 각기 다른 주제를 서로들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어서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는 조금씩 아껴 읽으면 좋을 책이다. 나처럼 두 달에 걸쳐 읽어도 되고 더 천천히 읽어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늦게 읽는다고.


내밀한 이야기는 듣는 것보다 읽으면서 상상하는 게 훨씬 기억에 오래 남는다. '커피'라는 주제에서 이은정 작가는 죽은 언니가 좋아했던 커피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밥값에 근접하는 커피라고 생각하면 마시지 못한다. 라테 비용이라는 말도 있던데. 모든 것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 나로서는 「마실 수 없는 커피」 이야기에서 반성과 후회를 한다. 먹을 수 있을 때 먹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이름을 들어본 작가도 있고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다. 이름은 알고 있으나 글을 읽어보지 못한 작가의 글을 읽으며 아, 이런 사람이구나, 좀 웃긴데 생각했다. 무엇이든 쓰는 자들이 작가라고 말해주어서. 불안하지만 읽고 쓰는 행위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가고 있다고 말해주어서. 고맙다. 두 달 내내 격려와 위로를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를 읽으며 받았다. 몸의 피곤은 어쩔 수 없어서 피로회복제를 5일치나 사서 먹은 건 안비밀. 마음 치유는 책으로. 이제 힘 낼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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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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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라는 의문으로 지내온지 두 달째. 내일이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라니. 믿을 수 없다. 시간 한 번 거 참 빠르다. 할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나의 의문은 영영 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변함이 없어서 참 좋다, 좋다고 생각할래. 해결되지도 않을 일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 워킹 데드 마지막 시즌이나 뿌시는 걸로.


영화를 보면 되는데 영화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읽으면 되는데 책을 소개해 주는 책을 읽고 있다. 좋은 걸 보고 싶은데 고르는 기준이 꽝이라. 이러고 있다. 나만 몰랐던 벅차오르는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알고 싶단 말이다, 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서평집을 읽는다.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제목이 근사하다. 글쓰기에서 매번 실패하는 부분이 문장 쓰기인데. 어떻게 하면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읽었다면 답을 찾을 수 없는 책이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서평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던데 나는 금정연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반성하는 기분으로 차분히 읽어 보았다. 책상에 앉아서. 책의 소개를 쓰고 싶은데 훌륭하게 쓰지 못할 것 같아서 패스.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위주로. 폴 오스터의 이야기가 있어서. 마루야마 겐지와 윤성희의 이야기가 있어서.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려줘서. 도입부를 어렵지 않게 쓰고 있어서. 좋았다는 거다. 문학의 저주에 걸린 자의 투병기 같은 글이랄까. 의지와 상관없이 손가락은 서점 장바구니를 클릭, 결제까지 하고. 그리하여 책 택배는 쌓여만 가고 소설을 쓰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한 문학병을 단단히 앓고 있는 자의 글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재밌단 말이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도 모르고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금정연이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에 기대고 있는 책이다.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앉았는데, 앉아 있기만 할 때, 첫 문장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치사하지만 인용이다. 서평이라는 게 책 소개를 얼마큼 근사하게 하냐인데. 책 소개만 하다보면 뻔하고 나조차도 읽고 싶지 않은 진부한 글이 돼버린다. 색다르게 쓸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이제 그만 써야지 한다.


그래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 오늘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문장을 만나면 그걸로 쓴다. 시작이 어렵지 쓰다 보면 온갖 기억이 몰려와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른다. 내 이야기 좀 들어줘. 현실에서 이러면 주접떤다고 욕먹는데 글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니까 쓴다. 책 이야기를 하는 척 내 이야기를.


문장은 실패를 모르지만 내 인생은 실패를 안다. 아니다. 내 문장도 내 인생도 실패를 너무 잘 알아 개무시 하고 싶어지는 게 실패의 쓴맛. 요즘 나는 박명수의 어록을 계속 생각하는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 떡 하니 박명수의 어록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와. 미친. 대박. 어쩜 이래. 오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정말 하기 싫었는데. 안다. 내 나이. 무언갈 시작하기에 애매한 나이라는걸.


부끄러운 척 나이를 말하면서 생각했다. 박명수의 그 말을.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너무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라."(박명수, 『맨발에서 2인자까지』) 그래서 난 지금 시작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다. 문학의 저주에 걸린 채. 심통 난 마녀가 저주를 풀어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여기면서. 또 다른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오늘도 유익한 서평은 쓰지 못했구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려고 했는데. 바보 같은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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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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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한국 문학만 읽는 것 같아서(같아서가 아닌 맨날 한국 문학만 읽는다.) 좀 있어 보이려고(누구에게? 허세 쩐다. 정말.) 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갔다. 글쓰기 의욕을 마구 불러주는 글을 시작으로 제임스 설터가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결론은? 다 못 읽고 다른 책을 집어 들고야 말았다는 한심한 이야기.


책이 아닌 나의 문제로 인하여. 제임스 설터가 공군에 있을 때 만난 인물들의 서사가 펼쳐지려는데 집중이 안 돼 책을 덮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집어 든 책은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를 다룬 『마감 일기』.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제임스 설터의 책들. 『마감 일기』는 여덟 명의 작가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마감을 대하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먼저 김민철 작가. 이 분의 마감 철학은 삶의 철학이기도 해 존경해 마지않았다. 마감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릿속에 주입하며 글을 쓴단다. 내가 늦으면 연쇄적으로 다른 이들의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걸 알면 절대 마감을 늦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이기도 한데 그 때문인지 책임감이 엄청나다. 마감을 대하는 자세도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래 맞아. 나도 그래. 고개를 계속 끄덕이게 만든 작가는 이숙명. 이력을 보니 잡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다. 매일이 마감인 인생으로 살아갔으리라. 『마감 일기』를 쓰기 위해 고생하고 실패한 기록이 유머러스하게 담겨 있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주식의 수익률이 천 퍼센트가 난다면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서 빵 터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겠단다. 내가 매일 하는 상상인데. 화수분 같은 통장을 가지고 있다면 평생 먹고 놀고 싶다는.


소설가 권여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마음 한편이 찡했다. 짠하기도 하고. 짝꿍이 괴롭혀서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대입 시험을 혼자 치러내는 것으로 학창 시절을 마감한다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는 이야기. 소설가로 등단을 했지만 청탁 없이 몇 년간을 버티며 결국에는 학원 강사의 길로 가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기회라는 게 찾아오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 소설가로 살아간 사연이 절절하게 실려 있다.


누가 써 달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나대로 글을 쓰고 있다. 마감이라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 그날을 넘기지 않고 리뷰를 쓰려고 한다. 이걸 하지 않고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이런 걸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 리뷰를 쓴다고 해서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조금 있으면 블로그에 쓴 리뷰가 천 개에 도달한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 정보는 전무한 리뷰. 왜 쓰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마음에 들어서 그 기분이 어떤지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내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을 만나면 고맙기도 해서. 『마감 일기』는 작가들의 내밀한 일상을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그들도 빈 화면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는 깜빡이는 커서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지구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어도 좋다는 계시를 받은 책, 『마감 일기』. 어느 부분에서 그런 계시를 받았는지 묻는다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서도 『마감 일기』를 읽으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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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몸의 시간 - 서유미 에세이
서유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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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의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는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카페에 그녀 말대로 출근을 해서 다양한 곳에 이력서를 보낸다. 계획은 육아 휴직 후에 직장에 돌아가는 것이었다.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고 직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유치원에 갈 때 울지 않고 엄마 손을 덜 타는 시점이 되자 주인공 경주는 구직 활동을 시작했다.


책을 다 읽고 든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면접의 기회조차 쉽지 않은 경주의 일상을 보면서 안타깝기도 했다. 채널예스에 실린 서유미 소설가의 인터뷰를 보다가 에세이가 나왔다는 걸 알았다. 소설만큼이나 즐겨 읽는 게 에세이다. 요즘엔 소설보다 에세이를 더 자주 읽는 듯. 비교적 힘이 덜 들어가 있는 글(힘이 덜 들어간다고 썼지만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글은 힘이 들겠지.)인 에세이를 읽으면 괜한 힘이 빠지면서 마음이 편해진다.


『한 몸의 시간』은 소설가 서유미가 아닌 엄마 서유미의 입장에서 쓰인 책이다. 결혼할 때부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옆 사람과 합의도 했다. 계획은 그러했다. 세상만사 계획한 대로 흘러만 간다면 왜 근심, 걱정이 생기겠는가.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소설가의 일상은 차츰 변모한다. 엄마가 되는 일. 걱정이 앞서고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럴 때 소설가는 글을 썼다. 소설가와 엄마라는 자아의 경계에서 흔들릴 때 잡아준 건 글이었다. 두렵고 막막하고 불안한 나날을 글로 옮겼다. 배 속의 아이와 한 몸으로 지내는 시간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해 둔 것이다. 『한 몸의 시간』은 서문에서 밝히듯이 육아 지침서나 태교에 관한 글은 아니다. 소중하게 찾아온 인연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엄마로서 살아갈 날에 대한 의지를 다룬 책이다.


『한 몸의 시간』에서 출발한 서사가 소설 『우리가 잃어버린 것』으로 도착했구나를 느꼈다. 몸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고 밝힌다. 커피를 좋아했는데 입덧이 시작되면서 커피의 고소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몸이 붓고 배가 무거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힘들었다. 경험해 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불편함은 타인의 고통을 비로소 바로 보게 해주었다.


아이를 가졌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자 많은 축하가 따라왔다. 심지어는 글쓰기 수업에서 공부하는 학생(엄마이자 학생들이었다)들이 육아 용품을 나누어 주겠다고 했다. 소설이 전부라고 여겼던 삶에 자식이라는 카테고리가 생기면서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넓어진다.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로 아이를 낳았다. 그 후 시련이 시간이 있었지만 사랑과 다정함으로 이겨 나간다.


불안을 불안으로 놔두지 않는 현명함이 돋보이는 책이다. 글이란 우리를 훌륭한 어른까지는 아니지만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져다준다는 걸 『한 몸의 시간』을 통해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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