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 원고지를 앞에 둔 당신에게
금정연 지음 / 어크로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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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은 어디로 흘러갈까라는 의문으로 지내온지 두 달째. 내일이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라니. 믿을 수 없다. 시간 한 번 거 참 빠르다. 할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고. 나의 의문은 영영 풀리지 않을 듯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은 변함이 없어서 참 좋다, 좋다고 생각할래. 해결되지도 않을 일에 마음을 쓰는 것보다 워킹 데드 마지막 시즌이나 뿌시는 걸로.


영화를 보면 되는데 영화 소개해 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읽으면 되는데 책을 소개해 주는 책을 읽고 있다. 좋은 걸 보고 싶은데 고르는 기준이 꽝이라. 이러고 있다. 나만 몰랐던 벅차오르는 감동을 맛볼 수 있는 작품을 알고 싶단 말이다, 하는 심정으로 오늘도 서평집을 읽는다. 금정연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제목이 근사하다. 글쓰기에서 매번 실패하는 부분이 문장 쓰기인데. 어떻게 하면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을 쓸 수 있을까.


이런 마음으로 읽었다면 답을 찾을 수 없는 책이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서평계에서는 나름 유명하다던데 나는 금정연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반성하는 기분으로 차분히 읽어 보았다. 책상에 앉아서. 책의 소개를 쓰고 싶은데 훌륭하게 쓰지 못할 것 같아서 패스.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 위주로. 폴 오스터의 이야기가 있어서. 마루야마 겐지와 윤성희의 이야기가 있어서.


한승태의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이 있다는 걸 알려줘서. 도입부를 어렵지 않게 쓰고 있어서. 좋았다는 거다. 문학의 저주에 걸린 자의 투병기 같은 글이랄까. 의지와 상관없이 손가락은 서점 장바구니를 클릭, 결제까지 하고. 그리하여 책 택배는 쌓여만 가고 소설을 쓰겠다고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한 문학병을 단단히 앓고 있는 자의 글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마음으로 읽으면 재밌단 말이다. 내가 그러고 있는 것도 모르고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은 금정연이 읽은 책에서 밑줄 그은 문장에 기대고 있는 책이다.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앉았는데, 앉아 있기만 할 때, 첫 문장을 쓸 수 있는 방법은 치사하지만 인용이다. 서평이라는 게 책 소개를 얼마큼 근사하게 하냐인데. 책 소개만 하다보면 뻔하고 나조차도 읽고 싶지 않은 진부한 글이 돼버린다. 색다르게 쓸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이제 그만 써야지 한다.


그래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 오늘도 책을 읽고 서평을 쓴다. 책을 읽다가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문장을 만나면 그걸로 쓴다. 시작이 어렵지 쓰다 보면 온갖 기억이 몰려와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는 지경에 이른다. 내 이야기 좀 들어줘. 현실에서 이러면 주접떤다고 욕먹는데 글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아니까 쓴다. 책 이야기를 하는 척 내 이야기를.


문장은 실패를 모르지만 내 인생은 실패를 안다. 아니다. 내 문장도 내 인생도 실패를 너무 잘 알아 개무시 하고 싶어지는 게 실패의 쓴맛. 요즘 나는 박명수의 어록을 계속 생각하는데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 떡 하니 박명수의 어록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와. 미친. 대박. 어쩜 이래. 오늘 나는 사람들 앞에서 이름과 나이를 소개했다. 정말 하기 싫었는데. 안다. 내 나이. 무언갈 시작하기에 애매한 나이라는걸.


부끄러운 척 나이를 말하면서 생각했다. 박명수의 그 말을.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진짜 너무 늦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너무 늦은 거다. 그러니 지금 시작하라."(박명수, 『맨발에서 2인자까지』) 그래서 난 지금 시작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거다. 문학의 저주에 걸린 채. 심통 난 마녀가 저주를 풀어줄 것 같지는 않으니까. 저주받은 인생이라고 여기면서. 또 다른 실패를 경험하기 위해.


오늘도 유익한 서평은 쓰지 못했구나.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이 어떤 책인지 알려주려고 했는데. 바보 같은 내 이야기만 늘어놓았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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