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일기 - 공포와 쾌감을 오가는 단짠단짠 마감 분투기
김민철 외 지음 / 놀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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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날 한국 문학만 읽는 것 같아서(같아서가 아닌 맨날 한국 문학만 읽는다.) 좀 있어 보이려고(누구에게? 허세 쩐다. 정말.) 제임스 설터의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진도가 잘 나갔다. 글쓰기 의욕을 마구 불러주는 글을 시작으로 제임스 설터가 만난 작가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결론은? 다 못 읽고 다른 책을 집어 들고야 말았다는 한심한 이야기.


책이 아닌 나의 문제로 인하여. 제임스 설터가 공군에 있을 때 만난 인물들의 서사가 펼쳐지려는데 집중이 안 돼 책을 덮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집어 든 책은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를 다룬 『마감 일기』. 기회가 되면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제임스 설터의 책들. 『마감 일기』는 여덟 명의 작가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마감을 대하는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먼저 김민철 작가. 이 분의 마감 철학은 삶의 철학이기도 해 존경해 마지않았다. 마감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머릿속에 주입하며 글을 쓴단다. 내가 늦으면 연쇄적으로 다른 이들의 일에도 지장을 주는 걸 알면 절대 마감을 늦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광고 회사에서 일하는 회사원이기도 한데 그 때문인지 책임감이 엄청나다. 마감을 대하는 자세도 책임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래 맞아. 나도 그래. 고개를 계속 끄덕이게 만든 작가는 이숙명. 이력을 보니 잡지사에서 오랫동안 근무를 했다. 매일이 마감인 인생으로 살아갔으리라. 『마감 일기』를 쓰기 위해 고생하고 실패한 기록이 유머러스하게 담겨 있다. 전 재산을 쏟아부은 주식의 수익률이 천 퍼센트가 난다면 글을 쓰지 않을 거라고 솔직하게 말해서 빵 터졌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하루 종일 넷플릭스를 보겠단다. 내가 매일 하는 상상인데. 화수분 같은 통장을 가지고 있다면 평생 먹고 놀고 싶다는.


소설가 권여선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마음 한편이 찡했다. 짠하기도 하고. 짝꿍이 괴롭혀서 학교에 가기 싫었다고. 대입 시험을 혼자 치러내는 것으로 학창 시절을 마감한다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는 이야기. 소설가로 등단을 했지만 청탁 없이 몇 년간을 버티며 결국에는 학원 강사의 길로 가려고 했다.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기회라는 게 찾아오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 소설가로 살아간 사연이 절절하게 실려 있다.


누가 써 달라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는 나대로 글을 쓰고 있다. 마감이라고 정하지는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 그날을 넘기지 않고 리뷰를 쓰려고 한다. 이걸 하지 않고는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이런 걸 사서 고생한다고 하지. 리뷰를 쓴다고 해서 떡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조금 있으면 블로그에 쓴 리뷰가 천 개에 도달한다.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책 정보는 전무한 리뷰. 왜 쓰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고. 그냥 쓴다. 우연히 집어 든 책이 마음에 들어서 그 기분이 어떤지 표현하고 싶기도 하고. 내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을 만나면 고맙기도 해서. 『마감 일기』는 작가들의 내밀한 일상을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이다. 그들도 빈 화면 앞에서는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하는 깜빡이는 커서를 외면하고 싶어 하는 지구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어도 좋다는 계시를 받은 책, 『마감 일기』. 어느 부분에서 그런 계시를 받았는지 묻는다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서도 『마감 일기』를 읽으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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