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랑한 갱은 셋 세라 명랑한 갱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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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사실 안다. 나는 약간 꼼꼼한 사람이라 매일 일기를 쓰기 때문이다. 약간 꼼꼼하게 하루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쓴다. 어디 보자. 여섯 시에 일어나서 컴활 실기 공부하다가 냉장고에 들어 있는 간식을 이것저것 때려 먹고 버스 타러 간다. 학원 수업을 듣고 다시 버스 타고 집에 와 점심을 먹는다. 청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기출문제를 푼다.


중간중간에 간식을 먹는 것도 잊지 않는다. 금요일에 실기 시험을 보기 때문에 월요일부터 긴장 상태였다. 누가 보면 국가 고시에 도전하는 줄. 컴활 2급도 국가 공인 시험이긴 한데. 이렇게까지 난리 피우면서 공부하지는 않겠지. 엑셀을 못 다루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접하고 나서야 부랴부랴 공부했다. 그동안 나는야 우물 안 개구리.


금요일에 시험 보러 갔다. 한 시간 일찍 가서 책을 들여다봤다. 중첩 If 함수 문제를 못 풀어서 계속 그것만 들여다봤다. 결론적으로 한 문제 나왔다. 아싸. 코로나 때문에 시험장 잡기가 하늘에 별 따기라서 3월부터 시험료가 오른다고 해서 무조건 이번에 합격해야 했다. 그런 마음이라 내내 불안, 초조, 긴장감으로 일주일을 보냈다.


시험 보는데 긴장돼서 손이 벌벌 떨렸다. 화면 상단에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했다. 집에서 한대로 차분히 천천히 해도 이십분 정도에 마쳤으니까. 타이핑도 정확히 치려고 했다. 초반에 조건부 서식 문제를 못 풀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평균으로 지정하는 문제였던 것이다. 어라. 이건 안 배웠는데. 당황. 일단 패스. 아는 거 먼저 풀고 다시 조건부 서식 문제. 어찌어찌해서 결괏값이 나오기는 했다.


나는 시험이 끝나면 바로 나오는 줄 알았는데 정확히 40분이 돼야 시험지 주고 나올 수 있었다. 못 푼 문제가 없어서 안도했다. 결과는 2주 후에 나온다. 근처에 유명 빵집이 있어서 사러 갔는데 오늘 치는 다 소진됐단다. 울적. 집에 와서 삼겹살 구워 먹고 드러누웠다. 책상에는 어제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있었지만 일단 오늘은 휴식.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소설 『명랑한 갱은 셋 세라』를 토요일 오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깜짝 놀랐다. 너무 잘 읽혀서. 너무 재밌어서. 너무 신나서. 역자의 말에 나오는 것처럼 이사카 고타로를 안 읽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읽어본 사람은 없다고. 딱 내가 그랬다. 이사카 고타로를 알기 전과 알고 난 후, 모든 것이, 까지는 아니고 일부가 달라졌다.


소설이란 읽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소설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이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란 얼마나 많은지. 넷플릭스와 게임, 음악 듣기, 맛집 찾아다니기, 마트 구경하기, 문구 사이트에 들어가 배송비 아껴보겠다고 각종 문구 용품을 오만 원어치 담고 있기 등등. (저만 이런 겁니까. 혹시 다들 아침 일찍 일어나 공부하고 명상 음악 틀어 놓고 하루를 반성하며 살고 있나요.)


책 읽기 말고도 재미있는 게 한가득인데 왜 책을 읽고 있느냐. 다른 행위들은 하다 보면 지루해졌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하얀색 바탕에 검은색 글씨. 눈에 피로 대신 마음의 안정을 주는 작은 세상. 언제든 펼치기만 하면 나는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책은 준다. 이야기가 종횡무진 예측 불가결한 곳으로 달려가면 더 좋고. 가끔가다 잠언 비슷한 문장이 나오면 그것대로 좋다.


여기 네 명의 인물이 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들. 사람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본심을 알아맞히는 나루세. 동물을 좋아하는 손이 빠른 구온. 수다쟁이지만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교노. 몸 안에 시계가 있다고 여길 정도로 정확히 시간을 계산하는 능력을 가진 유키코. 그들은 은행강도다. 명랑한 갱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 『명랑한 갱은 셋 세라』를 토요일 오전 시간에 독파했다.


한 번 읽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시험에 대한 압박감이 상당했나 보다. 순수한 한글로만 된 글을 읽으니 피곤이 풀렸다. 은행을 터는 것으로 시작하는 『명랑한 갱은 셋 세라』. 각자 직업은 따로 있고 어쩌다 모이게 된 그들은 은행을 턴다. 비일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들은 일상을 충실히 살아간다. 유키코의 아들 신이치가 일하는 걸 보러 가면서 이상한 일에 휘말린다.


그 '이웃 언니'는 공원을 지나가다가 "나도 오늘은 학교 땡땡이칠까"하고 다카라지마 사야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 주었다. "친구는 없어도 돼." 그렇게 말하며 웃더니 이런 말을 해주었다. "친구가 많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야.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고, 조금만 친절해지면 돼."

(이사카 고타로, 『명랑한 갱은 셋 세라』中에서)


은행을 터는 도둑 앞에 더 이상한 악당이 나타난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유명인들의 뒤를 캐고 심지어는 일반인의 사생활까지도 폭로하는 주간지 기자, 히지리. 과연 명랑한 갱들은 히지리와 어떤 대결을 펼칠까. 반전이 이어지면서 소설은 신나게 앞으로 나아간다. 셋을 세는 순간, 사건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역시 이사카 고타로. 두려운 내일이 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사람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우습게 보지도 말고, 조금만 친절해지면 돼.'


악당 히지리 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새겨 들어야 할 말이다. 이상 리뷰를 빙자한 컴활 2급 시험 도전기였습니다. 전 또 며칠 쉬다가 다음 시험 준비하러 갑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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