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긍정의 말들 - 삶이 레몬을 내밀면 나는 레모네이드를 만들겠어요 문장 시리즈
박산호 지음 / 유유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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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 죽는 거 아닐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할 정도로 아팠다. 근육통과 오한이 들어서 (이런 걸 몸살이라고 한다지) 어제는 내내 힘들었다. 이렇게 아파본 지가 참으로 오랜만이라서 어떻게 병증을 맞이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한때 여름만 되면 아팠는데 그 시간이 다시 찾아온 것 같아 두려웠다. 병원에 가도 어지럼증과 구토 약만 줄 뿐이라서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틴다. 


빨리 낫고 싶어서 빈속에 약을 계속 먹어댔다. 자면서 꿈을 꿨던 것 같기도 한데 다 까먹었다. 옷이 다 젖을 정도로 땀을 내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아프기 전에 아플 것 같은 예감이라니. 이런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번역가 겸 소설가인 박산호의 『긍정의 말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처지를 비관만 했겠지. 아프기 전에 읽어두길 다행이다. 


박산호가 읽고 보고 들었던 긍정의 말을 한 페이지에 띄워 놓고 그 옆엔 자신의 사유를 펼쳐 놓는다. 주로 경험하고 느낀 내용이라 이해가 쉬웠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프리랜서라는 직업의 어려움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고 나이가 먹으면서 따라오는 신체의 변화, 딸아이가 가지는 불안함과 삶을 사는 것 자체의 고단함이 긍정의 말과 함께 책에 실려 있다. 


그중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말 '지금 밑바닥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진짜 밑바닥이 아니라는 뜻이다.' 와 로버트 브롤트의 말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간 다음 뒤로 한발 물러서는 것은 재앙이 아니라 차차차를 추는 것이다.' 가 인상에 남는다. 모두 절망과 바닥, 힘겨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을 때 마음에 확 꽂히는 문장은 지금의 심정을 대신 말해주는 문장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한때는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얼굴을 봐야 하는 인간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자신의 고통을 이야기하는 통에 내가 고통에 빠질 지경이었다.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듣다 보니 안 그래도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람인데 세상의 모든 부정스러움이 내게로 달려드는 경험이었다.


좋아, 해보자, 가보자, 만나자, 치맥, 그날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도시락, 수박, 개봉 예정의 영화. 좋고 이쁜 말들이 이렇게나 가득한데. 일로 만난 사이여도 말해보는 거다. 사귀는 사이에는 더더욱 상대를 위해주는 말을 해보는 거다. 각자의 부정을 나누는 게 아닌 각자의 긍정을 보여주고 가질래? 간지럽지만 말하면서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가야지. 그래야 지구 종말의 위기에도 사랑이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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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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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까불고 다녔더니 체력이 다했나 보다. 휴일에도 낮잠 대신 부지런을 떤다고 청소하고 책 읽고 정리했다. 날이 더워서 낮잠이 오지 않은 탓도 있다. 에어컨을 켜놓고 자면 될 텐데. 그러려면 문을 열어 놓고 자야 하는데 빛에 약한 인간 동물이라 선잠을 잔다. 가위에 눌린다. 그러다 몇 주 낮잠을 포기했다. 누워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더니 몸이 욱신거린다. 


그 와중에도 책은 읽는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가면서. 유일한 집순이의 취미는 책 읽기. 드라마, 영화는 몰입이 안 되어 잠깐 시청 중지 상태이다. 대신 음악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지금은 자우림의 〈STAY WITH ME〉가 오늘의 배경음악이다. 과연 김윤아는 천재인 듯. 가사가 미친다. '내일은 너무 멀어 지금 바로 여기 있어줘 Stay with me right here by my side 내일의 나보다 더 오늘의 내가 외로우니까 Stay with me right here right now'라니. 


문보영의 아이오와 일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읽을 때도 어떤 한 곡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가 활자를 보았다가 초여름과 한여름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인 문보영은 일기의 달인답게 그곳에서도 일기를 썼다. 조각 일기는 글이 되었고 책으로 나온다. 어느 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잠깐 빈 시간에 서점에 들른 노동자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고른다.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책이 든 가방을 메고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한다. 집안을 정돈하고 머리맡에 책을 놓아둔다. 바로 읽지는 않는다. 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방치한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고 글을 써야 한다.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는. 아이오와. 모든 음절에 자음 ㅇ이 들어가는 그곳에서. 아이오와라고 발음하면 휘파람을 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한 번쯤 아이오와에 갈 수도 있지도 않을까 상상은 하지 않는다. 오늘 아니면 가지 않는 거다. 대신 누군가의 체험과 사유가 담긴 아이오와의 느낌만 받는다. 다양한 언어를 쓰는 작가들과 만난 시인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다가도 그것마저도 긍정의 기운으로 받아들인다. 알아듣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시라고 생각하면서. 


영어로 시를 쓰고 한국어로 쓰인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책은 단 한 권만 가져간다, 최승자 시인의 『어떤 나무들은』. 30년 전에 같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의 책만을 읽으면서 동일 장소에서 다른 감각을 찾아나간다. 밤에는 들판을 향해 걷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아이오와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이다. 


자주 화가 나고 자주 삐지고 자주 침울해진다. 아무리 많은 책을 산다고 해도 문학은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아파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심심해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시간이 나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이것 가지고는 안 되나 보지. 매일 일기 쓰기는 멈춰볼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볼까. 시인 문보영에게 삶의 반대편에는 들판이 있다면 내 삶의 반대편에는 이상한 분노감을 가진 나에게는 곧 심하게 아플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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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들
김중혁 지음 / 창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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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좀비들』이 생각났을까. 이미 두 번이나 읽은 소설인데. 두 번 읽었으면 세 번은 못 읽을까. 예전에 종이책으로 사둔 게 있었는데 못 찾겠다 꾀꼬리. 전자책으로 사서 간간이 틈틈이 생각난 듯이 읽어갔다. 주중에는 거의 읽지 못하고 주말에 누워서 자세를 바꿔가면서 읽었다. 


왜 여전히 좋을까. 형의 죽음 뒤에 온 상실감을 주인공 채지훈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내가 좋아하는 뚱보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흘리지 않고 질척이지도 않으면서 쉽고 담백한 언어로 끌고 가서? 이제는 안다. 좋고 싫은 이유를 대는 건 의미가 없는 짓이라는걸. 그저 그때의 감정 그 계절의 기분과 그 시간의 느낌들이 만났기 때문에 좋고 싫다. 


휴대전화의 수신감도 체크 일을 하는 지훈은 차에서 생활한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은 유일한 혈육인 형 역시 갑자기 죽었다. 그 이후 지훈의 일상은 운전을 하고 신호를 체크하고 다시 운전을 하는 일의 반복이다. 0과 10 사이의 숫자만이 그의 세상이다. 인간의 삶은 10에서 출발해 서서히 0으로 도달한다. 형이 죽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순차적인 진행.


형이 남긴 LP 50장을 듣기 위해 충격을 온몸으로 안는다는 허그쇼크를 사서 차에서 듣는다. 하나의 사건이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훈은 겪어낸다. 형이 죽었고 남긴 LP가 있고 그걸 듣기 위해 허그쇼크를 사면서 뚱보130과 홍혜정과 그녀를 만난다. 세계에 우연이란 없다. 일어날 수 있기에 일어난다. 일어나야 하므로 일어난다. 


『좀비들』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을 애정 한다. 심지어 케겔까지. 장장군은 빼고. 휴대전화 수신감도가 0인 고리오 마을에서 만난 이상한 사람들은 지훈을 어디까지 데리고 갈까. 아니다. 지훈은 그들을 데리고 간다. 꼭 지켜줄 거라는 말과 함께 잘 따라오는지 수시로 체크하면서 세계의 끝으로 끝이 있다면 그곳까지 갈 것이다. 음악이 끊기지 않도록 지훈은 차에서 내려 판을 뒤집고 옆에 앉은 그녀는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함께 할 것이다. 


숨기지 않고 에둘러 말하지 않는 말과 언어가 우리 세계에 꼭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고맙고 사랑하고 파이팅 하자 지켜줄게 잘 따라와 끝까지 데리고 갈 거라는 말까지. 지훈은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고 이제 사소한 일에 놀라는 것이 감정의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인생에 배정된 놀라움을 모두 썼기에.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가까운 불빛에도 믿음을 주지 않는다. 


가까이 있다고 해서 다가갔지만 빛은 언제나 멀리 있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수억 광년 떨어진 채 소멸해 버린 빛이라는 걸 잠시 잊고 있다가 기대하는 일로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실망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크다. 『좀비들』은 실망과 체념이 10이었다가 5의 감도로 유지되어 현재를 살아가도 삶은 유지된다고 말하는 소설이다. 들쑥날쑥한 0과 10사이의 숫자를 바라보는 일도 그걸 어쩌지 못해 불안해하는 것도 괜찮다고 해주니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좀비들』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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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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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밤을 거쳐 7월을 걸어와 8월로 도착했다. 하늘을 보고 싶어 창문을 열어 놓을까 하다가도 뜨거운 태양빛에 놀라 마음을 접는다. 너머의 하늘은 푸르겠지.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겠지. 상상에 맡기는 8월의 아침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여름이라고 말했을 때 이제 나 역시 여름을 좋아하는 계절로 삼겠다고. 가을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럼 나 역시 가을이 좋으니 서로의 좋은 계절을 나눠 가지자고 말했다. 


우리가 좋아하는 계절을 하나씩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여름을 살고 다음은 가을을 사는 것으로 말이다. 7월에 이루지 못했던 계획을 8월로 이월해 놓았다. 계획이란 건 지키지도 못할 금연 약속 같은 것이라 번번이 실패하겠지만 계획을 말하며 웃는 우리가 있기에 성실히 짜기로 한다. 아직 8월이 남았고 그런 게 좋은 거라서 '8월의, 8월에 의한, 8월을 위한' 한정원의 8월 에세이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당신이 아프다는 아침에 꺼내 읽는다.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니 사계절을 사는 우리나라에서. 이건 싫어한다는 말을 완곡하고도 세상 다정하게 말하는 거 아닌가. 차마 싫다라고는 하지 못하고 너를 네번째로 사랑한다고 듣는 이를 헷갈리게 만드는 화법. 그럼에도 싫은 건 아니라고 하니까 위안 삼아 좋아하는 마음을 접지 않게 만드는 아리까리한 상대방의 여지.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바꿔서 부르면 '내가 처음으로 싫어하는 계절'. 이렇게 말하면 여름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여름은 울먹이며 말하겠지. 다르게 말해줘. 그래 그럼 이렇게 말할게.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야, 너는. 여름은 눈물을 닦으며 웃겠지. 고마워. 나를 네번째로 사랑해 줘서. 그렇게 여름은 묵묵히 열기를 품어 내고 소나기를 뿌리고 매미를 울게 하고 밤에도 흥분을 하겠지. 시와 에세이, 사진이 있는 8월의 책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에서 나는 앞으로 남아 있을 여름을 헤아리기보다는 오늘의 여름에 근면하기로 한다. 


책을 읽는 오늘은 8월 11일이니까 8월 11일의 에세이 「냄새와 기억」을 나의 생일인 날의 8월 19일의 에세이 「파도가 없다면」을 두 번, 세 번, 네 번 읽는다. 그런 것들이 남는다. 엄마가 뿌리던 향수와 엄마가 했던 말들. 이제 나는 엄마의 나이에 가까이 가려고 시도 중인데 엄마의 삶에는 가닿고 싶지는 않다. 빈번했던 실패의 순간을 지켜보면서 도움을 주지 못했기에. 


싫어하는 대신 조금 사랑하기의 마음으로 이 여름을 이 8월을 보내기를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은 나직이 말해준다. 조금 사랑하는 것도 많이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기에 8월을 사랑해 보기를. 애초에 나는 여름과 내가 태어난 달의 8월을 사랑한 사람이기에 지금은 사랑이 전부인 시간이다. 속상하거나 밉거나 서운하거나 그럴 때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것으로 당신과 내가 8월을 사랑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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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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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금요일 밤 나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5시 40분 넘어서 자료를 메일로 보냈다고 하는 거 진짜 실화였다. 다른 업무도 밀려 있었는데 그것부터 해야 하나 할까 하다가 하자고 생각했다. 자료를 보내준 분도 퇴근을 안 한 건지 아직이세요?라고 연락이 왔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곧 할게요. 나나 그분이나 금요일 밤에 퇴근을 못해서 짠했다. 


왜 안 맞지? 뭐가 안 맞는 거지? 한 시간을 고민하다가 자료대로 마감을 했다. 다 끝냈다고 연락 보내놓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라고. 제발 그분도 퇴근하셨기를. 월요일의 우리에게 일을 떠넘겼기를. 전화가 왔고 오랜 통화 끝에 나는 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들을 쌓아두는 건 안된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말자. 


우리는 정류장에서 만났다. 얼마 전에 읽은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사무치는 감정에 조금 힘들었던 것도. 소설 속 두 연인의 슬픔과 애틋함 그리고 주인공이 겪어내는 상황 때문에. 드라마 《더 글로리》를 좋아한다. 모든 대사들이 좋다. 그중에 동은의 대사 중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나는 여섯 살 어린 사람과 사귀는 중이었다.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관계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갑자기 이별을 선언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동생과 엄마, 아빠와 생활한다. 집안 일과 육아를 전담하면서 나는 시만을 생각하고 시를 위해 살았던 시간을 미치게 그리워한다. 


소설 속에 나온 시와 시를 쓰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나와 현실의 내가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 만나 잠깐잠깐 어두웠다. 시를 쓰는 대신 시집을 사는 나날이다, 여름이다. 체력이 괜찮은 밤에는 책상에 앉아 시를 필사하며 이상한 감상평을 쓰는 것으로 시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가족을 떠나서 나는 다시 연인과 만남을 이어가고 방을 마련해 시의 시간을 갖는다. 


시를 베껴 쓰는 필사의 밤에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필사의 마음이 더해지면 우리는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 정류장에서 만나 하루치의 힘듦과 고단함을 나누고 손을 잡고 시원한 곳에 가서 마주 앉는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내일이 아닌 오늘의 기분과 감정을 살펴봐주고 피곤을 나누는 일로 끝을 향해 걸어간다. 그걸로 시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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