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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평점 :




한동안 까불고 다녔더니 체력이 다했나 보다. 휴일에도 낮잠 대신 부지런을 떤다고 청소하고 책 읽고 정리했다. 날이 더워서 낮잠이 오지 않은 탓도 있다. 에어컨을 켜놓고 자면 될 텐데. 그러려면 문을 열어 놓고 자야 하는데 빛에 약한 인간 동물이라 선잠을 잔다. 가위에 눌린다. 그러다 몇 주 낮잠을 포기했다. 누워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더니 몸이 욱신거린다.
그 와중에도 책은 읽는다. 종이책과 전자책을 번갈아가면서. 유일한 집순이의 취미는 책 읽기. 드라마, 영화는 몰입이 안 되어 잠깐 시청 중지 상태이다. 대신 음악 한 곡을 반복해서 듣는다. 지금은 자우림의 〈STAY WITH ME〉가 오늘의 배경음악이다. 과연 김윤아는 천재인 듯. 가사가 미친다. '내일은 너무 멀어 지금 바로 여기 있어줘 Stay with me right here by my side 내일의 나보다 더 오늘의 내가 외로우니까 Stay with me right here right now'라니.
문보영의 아이오와 일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읽을 때도 어떤 한 곡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가 활자를 보았다가 초여름과 한여름의 시간을 보냈다.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인 문보영은 일기의 달인답게 그곳에서도 일기를 썼다. 조각 일기는 글이 되었고 책으로 나온다. 어느 날 혼자 영화를 보러 갔다가 잠깐 빈 시간에 서점에 들른 노동자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고른다.
영화를 보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눈물을 흘리고 책이 든 가방을 메고 언덕을 올라 집에 도착한다. 집안을 정돈하고 머리맡에 책을 놓아둔다. 바로 읽지는 않는다. 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방치한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작가들과 이야기를 하고 글을 써야 한다.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에서는. 아이오와. 모든 음절에 자음 ㅇ이 들어가는 그곳에서. 아이오와라고 발음하면 휘파람을 불 수도 있을 것 같다.
오늘이 아닌 내일을 생각하는 걸 싫어하는지라 한 번쯤 아이오와에 갈 수도 있지도 않을까 상상은 하지 않는다. 오늘 아니면 가지 않는 거다. 대신 누군가의 체험과 사유가 담긴 아이오와의 느낌만 받는다. 다양한 언어를 쓰는 작가들과 만난 시인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다가도 그것마저도 긍정의 기운으로 받아들인다. 알아듣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시라고 생각하면서.
영어로 시를 쓰고 한국어로 쓰인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낯선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책은 단 한 권만 가져간다, 최승자 시인의 『어떤 나무들은』. 30년 전에 같은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의 책만을 읽으면서 동일 장소에서 다른 감각을 찾아나간다. 밤에는 들판을 향해 걷는다.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모든 것을 잊는다 해도 아이오와는 괜찮다고 말해주는 곳이다.
자주 화가 나고 자주 삐지고 자주 침울해진다. 아무리 많은 책을 산다고 해도 문학은 딱 거기까지라고 선을 긋는다. 아파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심심해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시간이 나도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인데. 이것 가지고는 안 되나 보지. 매일 일기 쓰기는 멈춰볼까.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볼까. 시인 문보영에게 삶의 반대편에는 들판이 있다면 내 삶의 반대편에는 이상한 분노감을 가진 나에게는 곧 심하게 아플 나 자신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