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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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밤을 잊지 못할 것이다. 금요일 밤 나는 늦게까지 일을 하고 있었다. 5시 40분 넘어서 자료를 메일로 보냈다고 하는 거 진짜 실화였다. 다른 업무도 밀려 있었는데 그것부터 해야 하나 할까 하다가 하자고 생각했다. 자료를 보내준 분도 퇴근을 안 한 건지 아직이세요?라고 연락이 왔다. 지금 하고 있습니다. 곧 할게요. 나나 그분이나 금요일 밤에 퇴근을 못해서 짠했다. 


왜 안 맞지? 뭐가 안 맞는 거지? 한 시간을 고민하다가 자료대로 마감을 했다. 다 끝냈다고 연락 보내놓고 행복한 주말 보내시라고. 제발 그분도 퇴근하셨기를. 월요일의 우리에게 일을 떠넘겼기를. 전화가 왔고 오랜 통화 끝에 나는 가겠다고 말했다. 이런 감정들을 쌓아두는 건 안된다는 생각에. 속상하고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말자. 


우리는 정류장에서 만났다. 얼마 전에 읽은 김이설의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동안 사무치는 감정에 조금 힘들었던 것도. 소설 속 두 연인의 슬픔과 애틋함 그리고 주인공이 겪어내는 상황 때문에. 드라마 《더 글로리》를 좋아한다. 모든 대사들이 좋다. 그중에 동은의 대사 중 가족이 가장 큰 가해자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나는 여섯 살 어린 사람과 사귀는 중이었다.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끝을 생각하고 싶지 않은 그런 관계로 나아가고 싶었지만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갑자기 이별을 선언한다. 두 아이를 데리고 온 여동생과 엄마, 아빠와 생활한다. 집안 일과 육아를 전담하면서 나는 시만을 생각하고 시를 위해 살았던 시간을 미치게 그리워한다. 


소설 속에 나온 시와 시를 쓰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는 나와 현실의 내가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 만나 잠깐잠깐 어두웠다. 시를 쓰는 대신 시집을 사는 나날이다, 여름이다. 체력이 괜찮은 밤에는 책상에 앉아 시를 필사하며 이상한 감상평을 쓰는 것으로 시에게 사과를 한다. 미안한 것도 없는데 말이다. 가족을 떠나서 나는 다시 연인과 만남을 이어가고 방을 마련해 시의 시간을 갖는다. 


시를 베껴 쓰는 필사의 밤에 죽을힘을 다해 살아가는 필사의 마음이 더해지면 우리는 끝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살아갈 수 있다. 정류장에서 만나 하루치의 힘듦과 고단함을 나누고 손을 잡고 시원한 곳에 가서 마주 앉는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내일이 아닌 오늘의 기분과 감정을 살펴봐주고 피곤을 나누는 일로 끝을 향해 걸어간다. 그걸로 시를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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