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나의 집
금희 지음 / 창비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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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의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읽어 가다 보면 만나는 풍경이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아가는 현대판 유목민의 모습이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북한에서 중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중국으로. 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은 대륙에서 대륙으로 신산한 삶의 사연을 가지고 떠난다.


그들이 떠나야 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가지기 위해. 서류와 형식뿐이지만 그네들은 이름 석 자를 집에 새기기 위해 기차를 비행기를 낡은 버스를 탄다. 같은 민족이라는 의식을 버린 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며 우리는 그들에게 무람없이 편견을 내보인다. 조선족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실리는 적의와 호의를 이제는 단박에 구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아련한 과거를 더듬는다.


소설은 우리가 살아온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실제 소설가 금희는 조선족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경험으로 글을 썼다. 중국과 한국에서 겪었던 조선족으로서의 삶은 소설로 발화한다. 소설을 쓰기 위해 살아낸 것이 아니다. 사는 것이 소설이 되었다. 소설이 되었기 때문에 살 수 있었다. 한국에서 청소와 식당 보조 일을 했다. 다시 소설 쓰기로 돌아갔다. 명예와 부 따위는 없다. 그저 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살아간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 겪는 이야기를 엮어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 자신의 지난날을 그려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허구의 세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해도 서사는 완벽하게 소설가의 과거를 닮아 있다.


책의 처음에 실린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한국어과 강사로 일하는 '나'와 중국인 '닝'의 만남에서 출발한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닝'을 '나'는 부러워한다. '닝' 역시 남편과 공동 명의로 집을 가지게 된 '나'의 삶을 동경한다. 집 한 채를 마련하고도 '나'는 그곳을 어떻게 꾸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주변인들의 삶에 물음표를 던진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알 수 없음과 알지 못함의 연속이다. 자신이 원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모른 채 방황하는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중간 지대에서 헤매는 소수들의 고뇌를 밀도 있게 그린다. 조선말과 중국말을 전부 할 수 있다는 건 어느 세계에도 완전하게 속해 있지 않다는 절망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봉인된 노래」에서 집안을 들어 먹는 외삼촌에 관한 회상은 우리 민족이 겪어왔던 좌절을 은유한다. 운이 좋지 않다고 자신의 어그러진 인생을 두둔하는 외삼촌의 변명을 들으며 '나'는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느낀다. 남보다 못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외삼촌의 일생을 차갑게 보는 어린 화자는 곧 우리 자신이다. 금희의 문장은 촘촘하다. 생소한 한문이 섞여 있기도 해서 빠르게 읽어나갈 수는 없다.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동시에 중국어로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중적인 세계에서 소설가 금희는 문장에 자유를 주는 대신 엄격함을 그대로 표현한다. 금희의 문장이 낯설다고 느낀다면 우리는 과거를 잠시 잊은 것이다. 가난과 상처를 대물림한 예전을 잊고자 노력한 결과가 될 것이다. 낯선 문장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과거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알지 못하는 것은 낯선 것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서사는 우리가 잊고자 했던 과거의 아픔을 그대로 가져온다. 그중에서 「옥화」는 우리를 과거의 상처로 데리고 간다. 북에서 왔다는 여자에게 돈을 꾸어주는 일로 인정을 베푸는 것의 허위를 소설은 낱낱이 밝힌다. 인간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온정과 배려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교회에서 만난 여인은 홍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청하고 그것이 홍에게만 부탁한 일이 아님이 밝혀진다.


…"왜 내가 줘야 하지?" 홍이 묻자 "가졌으니까" 하고 여자가 대답했다. 홍은 자꾸 옥화로 변하려 하는 여자를 붙들고 물었다. "그래서 줬잖아, 근데도 뭐가 불만이야?" 하면 여자는 매번 꿈속에서 볼 때마다 그랬던 것처럼 찢어져 올라간 눈으로 홍을 찌뿌둥하니 내려다보았다. "그 잘난 돈, 개도 안 먹는 돈, 그딴 거 쪼꼼 던재준 거 내 한나도 안 고맙다요."

'그딴 거'라니? 어떻게,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홍은 꿈속에서도 가슴이 답답하여 손으로 박박 내리쓸어보았다. "내도 한국 가서 돈 많이 벌어바라, 내는 너들처럼 안 기래." 홍의 몰골을 보고 피식 웃던 여자는 급기야 킬킬대며 배를 부여잡고 웃어대다가 옥화로 변하고 말았다.

(금희, 「옥화」中에서)


금희가 그리는 소설의 인물들은 남녀 구별 없이 떠돌아다닌다. 집이 있음에도 집이 없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고향이 아닌 새로운 어딘가를 꿈꾸며 떠나는 그들은 유랑의 운명을 순순히 받아든다. 그러나 집을 찾아 떠나는 그들은 좌절하고 만다. 떠나온 그곳과 이곳이 다르지 않음을 잔인하게 깨닫는다.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이주민의 얼굴을 하고서 그들은 다시 떠나온 곳으로 돌아간다. 홍은 떠나는 여자에게 돈을 빌려주며 갚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홍은 여자를 오해했고 여자 역시 홍의 진심을 오해했다. 오해만을 남겨둔 채 사람들은 이별한다. 하느님만 아시는 믿음은 배반당한다.


결코 대물림하지 않아야할 부와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 이곳과 그곳은 다르지 않다. 격동하는 중국과 한국 사회에서 발붙이고 살아가기는 녹록지 않다.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벌이는 사업을 위해 돈을 빌리러 떠나는 여정을 그린 「월광무」에서 우리는 지친 아버지의 얼굴을 만난다. "아빠, 어디야?"라고 물어오는 아들의 연락을 받으며 기차와 차량을 갈아타는 유의 시간은 빛이 나다가도 이내 꺼져 버린다. 희망이란 그렇다. 아슴푸레 빛나다가도 사라져 버린다. 달빛 아래 별과 반딧불이가 겨우 반짝이고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갈 수조차 없는 희미한 밝기를 가지고 있다.


소설은 미약한 빛을 쏘아 올린다. 차별과 멸시가 당연시되는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 세계에서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소설가 금희는 이방인의 얼굴로 한국에서 살았다. 소설이 되지 못한 시간을 견디며 자신이 쓰고 싶은 문장을 하늘 위로 쏘아 올렸다. 소설은 힘이 되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없다. 당신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었을까. 나약한 힘마저 없었기에 소설을 썼다.


친동생에게 맡겨 놓은 아들. 그 아들이 다니는 학교로부터 연락이 와 힘들게 찾아가는 소설 「쓰레기통 위의 쥐」의 시간은 낯설지 않다. 우리가 그랬다. 자식을 좋은 학교에 보내기 위해 눈칫밥을 먹여가며 남의 집에 맡겨 놓았었다. 분명한 차별을 견뎠고 적의를 감당해야 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들과 아버지가 목격한 쥐는 허상이 아니었다. 어떡하든 발버둥 치며 살아가려는 몸부림을 한 자신들이었다.


"허 참, 사람 사는 거 보면……그러네요. 우리는 좀 더 잘 살아보자고 그쪽 나라로 떠나가고, 그쪽은 더 잘 살아보자고 이쪽 나라로 떠나오고……" 박철이도 젓가락을 놓고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갔다. "흣……" 박철이의 심각한 표정에 여자는 처음으로 피식 엷은 웃음 같은 것을 지어 보였다.

"그래요.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결국 우리는 다 같은 노마드일 뿐이네요."

(금희, 「노마드」中에서)


국경이 무너지고 있다. 국경은 이제 의미가 없다. 산과 강을 경계로 한 지리적인 경계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삶에서 '집' 한 채를 가지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몽골인들은 현명하다. 가축을 데리고 풀을 찾아 이동하는 자유로운 삶. 생존의 문제로 떠돌아다니는 것이라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던 자유의 이념이 존재한다.


집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에 자유를 포기한다. 「노마드」의 박철이는 한국에서 만난 두 여자를 잊지 못한다. 수미와 선아. 그녀들은 자유를 찾아 한국에 왔지만 돈이라는 불의 앞에서 자유를 포기한다. 중국으로 돌아가 아파트와 가게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을 번 박철이는 안주할 기회를 엿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변화의 바람이 거센 그곳에서 발붙이고 살 수 있는 여유로움은 사라진지 오래이다.


호적을 옮기는 사무소에서 만난 옛 친구를 아는 척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돌도끼」에서 화자는 사라져간 추억의 흔적을 찾고자 한다. 유년의 기억을 놓아두고 도시로 이주하는 청춘의 얼굴은 늙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거창하게 금희의 소설 속 인물들을 유목민이라고 썼지만 그들은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뿐이다. 자유, 정의, 풍요라는 허황된 상징으로 그들을 품으려고 했다. 그들은 가난으로 점철된 과거와 현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슬픔이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의 주인공 '나'는 두 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않는다. 두 개의 언어로 살아간다는 것은 제대로 된 하나의 세계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나'가 겨우 가질 수 있는 것은 집 한 채. 금희는 집을 가진 이도 가지지 못한 이도 결핍의 시간을 살고 있음을 인물을 통해 형상화한다. 세상에 없다, 나의 집이란. 존재한다고 믿는 믿음만이 겨우 있다. '나'가 집을 사고도 그 안을 꾸밀 기호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소유의 개념조차 확고히 가지지 못하고 살았음을 의미한다.


반도라는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도 국경 밖을 탈출할 수 없는 우리들. 소설은 국경 밖의 삶을 가능하게 한다. 조선이라는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나라의 이름을 여전히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이 있다.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잊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잊히고 사라진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여기 있다고 말하는 소설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은 꼭 읽혀야 한다. 다른 삶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부모와 형제와 이웃의 이야기로 현재의 시간으로 불려왔다.


소설가 금희는 소설의 인물들에게 꼭꼭 이름을 지어주고 호명한다. 익명이 아닌 이름과 출생 연도가 있는 살아 있는 존재로서 무대에 올린다. 경계선에서 서로를 경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설은 내일이라는 미래를 열어준다. 그들이 허물어야 할 벽에서 희미한 빛이 되어주는 금희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대한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기 위해 경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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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6
정이현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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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의 주인공 세영은 아침에 일어나면 죽음을 먼저 생각한다. 약사답게 어떤 약을 먹어야 편히 죽을 수 있을지 아는 그녀에게 매일은 놀라운 날의 연속이 아니다. 대학교 때부터 알게 되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는 남편은 지방에서 낡은 호텔을 경영한다. 그녀 곁에는 한창 사춘기인 딸이 있다. 아이의 학교와 학원 생활을 챙겨야 하고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노릇까지 하는 그녀는 하루가 버겁기만 하다. 도시이면서도 좁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다.


딸 도우가 반장을 하면서 학부모회의 부회장까지 맡았다. 이제는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도우의 친구들이 학폭위의 조사를 받게 되었다. 부회장이므로 회의에 참석해야 하지만 그녀는 타인과의 밀접한 관계 맺기가 꺼려진다. 조부모와 사는 아이 하나를 두고 두 학생이 화장실에서 괴롭힌 사건이었다. 피해자 학생의 할아버지는 부회장인 세영에게 수시로 장문의 문자를 보내와 억울함을 호소한다. 남편 무원에게 상의를 해볼까 하지만 거리만큼 마음도 멀어졌다.


무원은 그 나름대로 골치 아픈 일을 겪고 있다. 호텔을 물려받긴 했지만 워낙 시설이 낡아 장사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익명으로 글을 올리던 그는 사람들에게 여성이며 약사라는 직업을 가진 것으로 되어 있다. 호텔 경영이라고 직업을 쓰려다가 약사라고 순간적으로 적은 게 화근이 되었다. 일은 의도하지 않아도 이상하게 흘러가기 마련이다. 익명으로 상대를 호칭하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에게 호감을 표현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발 없는 새의 약자인 발새라는 이는 무원에게 관심을 표명한다.


소설은 한 중산층 가정의 균열을 나른하게 보여준다. 깨진 줄도 모른 채 살아가는 관계에서 가족은 위태롭기만 하다. 세영은 결국 학폭 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가해자 학생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았다. 피해자 아이는 결국 목숨을 끊었다. 아이가 죽고 도우는 상갓집에 가겠다고 한다. 세영은 말썽이 생길까 가지 말라고 하지만 아이는 검은 옷을 찾아 입고 장례식장에 간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이들은 아직 순수를 잃지 않는다.


신이라고 부르지만 우리는 그를 모른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그를 힘들 때마다 간절히 찾는 어리석은 인간들에게 바쳐지는 소설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정이현은 모든 감정을 배제한 채 인간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신을 찾지만 신은 우리를 찾지 않는 공허한 세계의 외침을 소설은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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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음소리만 놔두고 개는 어디로 갔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2
김기택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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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

-김기택


과녁에 박힌 화살이 꼬리를 흔들고 있다

찬 두부 속을 파고 들어가는 온몸을 흔들고 있다

여전히 멈추지 않은 속도로 나무판 두께를 밀고 있다

과녁을 뚫고 날아가려고 꼬리가 몸통을 밀고 있다

더 나아가지 않는 속도를 나무 속에 욱여 넣고 있다

긴 포물선의 길을 깜깜한 나무 속에 들이붓고 있다

속도는 흐르고 흘러 녹이 다 슬었는데

과녁판에는 아직도 화살이 퍼덕거려서

출렁이는 파문이 나이테를 밀려 퍼져나가고 있다


온 몸의 힘을 다해 날아가는 생의 몸부림. 버둥거리고 도망쳐봐도 결국에는 너에게로 날아가는 환상. 잘못 날아가 박히는 한이 있더라고 날아가고야 마는 그리움. 박혀서 뺄 수 없는 단단한 오해.



환풍기

-김기택



한숨에 환풍기가 달린다


아무 데나 들이받으며 나갈 곳을 찾던 바람이

피부를 뚫어 입 구멍을 내고 나와

벽에 환풍구를 뚫는다


환풍기에 빨려 들어가는 상체

버둥거리다가 풀썩 떨어지는 하체


방 안이 크게 부풀었다가 확 쪼그라든다

이음새 헐거운 바람이 덜덜거린다


어느 집인지 모르겠지만 화장실에서 노래를 부른다. 지독하게 못 부르는데 목청은 크다. 아침을 시작하기 위한 루틴 같은 것이라고 이해하려 한다. 노래를 듣다가 다시 잠든다. 자장가. 어떤 이는 양치질을 할 때 칫솔을 목구멍까지 밀어 넣는지 토악질을 한다. 꾸에엑. 아침마다 돼지를 잡는다. 공동 주택의 안녕을 환풍기로 확인하는 시간. 다들 잘 지내세요.



기다리래*

-김기택



기다리래. 6835톤 배가 뒤집히는 동안, 뒤집힌 배가 선수 일부분만 남기고 가라앉는 동안, 기다리라는 방송만 되풀이하고 선장과 선원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움직이면 위험하니까 꼼짝 말고


기다리래. 해경은 침몰하는 배 주위를 빙빙돌기만 하고 급히 구조하러 온 UDT와 민간 잠수사들을 막고 있지만, 텔레비전은 열심히 구조하고 있으니까 안심하고


기다리래. 오지 않는 구조대를 기다리다 지친 컴컴한 바닷물이 먼저 밀려 들어와서 울음과 비명을 틀어막고 발버둥을 옥죄어도, 벗겨지는 손톱과 부러지는 손가락들이 닥치는 대로 아무거나 잡아당겨도, 질문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래. 바닷물이 카카오톡을 삼키고, 기다리래를 삼키고, 기다리래를 친 손가락을 삼켜도, 아직 사망이 확인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래. 엄마 아빠가 발 동동 구르며 울부짖어도, 구조된 교감 선생님이 터지는 가슴에다 목을 매어도, 유언비어에 절대로 속지말고 안내 방송에만 귀 기울이며


기다리래. 죽음이 퉁퉁 불어 옷을 찢고 터져 나와도, 얼굴이 부풀어 흐물흐물해져도, 학생증엔 앳된 얼굴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니 손아귀에 그 얼굴을 꼭 쥐고서


기다리래.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맹골수도 물 속에서 기다리래.


*"기다리래. 기다리라는 방송 뒤에 다른 안내 방송은 안 나와요." 세월호가 물 속에 가라앉은 지난 16일 오전 10시 17분, 세월호에서 단원고 학생의 마지막 카카오톡 메시지가 전송됐다. 오전 9시 30분 해경 구조정이 도착하고도 약 50분 뒤다.(「연합뉴스」 2014. 4028)


어떤 시간은 떠올리는 것만으로 슬픔이 된다. 눈물이 흐른다. 지나간 기억이라고 잊어버릴 수 없는 시간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다. 자유로울 수 없어서 시를 쓰고 시를 읽고 봄을 기억한다. 이제 봄이 올 건데. 비가 오고 눈이 와서 봄이 올거라고 하던데.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들은 기다리래라는 말. 참담한 거짓말. 가혹한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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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할 권리
이근화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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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도 권리가 필요하다. 이근화 시인의 산문집 『고독할 권리』를 읽는 동안 든 생각이다.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 기록이 담긴 『고독할 권리』. 생활을 하고 가정을 꾸려가는 동안 그는 내내 글을 쓸 고독의 시간을 갖고 싶어한다. 아이 넷과 함께하는 일상이 어떤건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다. 책상 앞에 앉아 문장 하나를 온전히 쓸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오로지 혼자의 시간을 얻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는 시인으로 생활인으로 엄마로 세상을 살아가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자발적 고독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혼자라도 괜찮다고 광고하면서 1인용을 파는 세상. 한 끼 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팔기 위해 혼밥족을 응원한다고 한다. 고독도 돈이 된다. 관계에 지친 사람들을 위해 고독을 판다.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으니 영화를 보고 여행을 떠나라고 권한다. 고독할 수 없는 사람들이 고독을 산다. 이제 고독조차 돈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들에 둘러 싸여 일을 해야 하고 집에 돌아오면 해야 할 일이 피곤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어 고독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고독할 권리』에는 복잡한 일상을 시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은 이근화의 치열한 하루들이 담겨 있다. 엄마임을 잊지 않으면서도 그는 카페에 찾아가 글을 쓰고 산책을 한다. 책을 읽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상을 남긴다. 영화를 보고 자칫 흘려보낼 수 있는 느낌을 묶어 놓는다. 자신이 쓴 시를 가져와 살아가는 동안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이곳에 붙들어 놓는다. 바쁜 와중에도 혼자만의 시간을 마련하여 문장으로 옮겨 놓는다.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고독을 엮어 책으로 만든다.


혼자라서 쓸쓸한가. 혼자가 아니어도 우리는 인간이기에 쓸쓸하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간은 늘 질 수 밖에 없다. 나약함이 무기가 된다. 약한 우리는 고독을 시간을 가질 수 있어 견딜 수 있다. 나를 위한다는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혼자를 견뎌야 한다. 이근화는 산책에서 만난 사람들과 아파트 안에서 마주한 풍경,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느낌을 간직하기 위해 고독을 선택한다. 아이가 새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그걸 들어줄 수 없는 엄마의 안타까운 마음을 쓰고 늙어가는 자신이 세상이 지켜가야 할 정의의 편에 똑바로 설 수 없음에 안타까워 한다.


시인이기에 지칠 수 없다. 시인이기에 지칠 수 있다. 대립하는 두 개의 감정을 가지고 살아낸다. 작가의 말에는 고독이 들어가는 책의 제목을 나열해 놓았다. 얼마나 고독하고 싶었으면 고독이 들어간 책들을 읽었을까. 고독이 돈이 되든 되지 않든 상관없다. 살 수 있다면 고독 따위 돈으로 사겠어. 국민의 권리에 '고독할 권리'를 추가해야 된다. 자신이 쓴 시를 놓고 떠도는 상념을 글로 쓴 시인에게 꼭 필요한 권리이다. 힘들게 마련한 고독의 시간에 이근화는 쓰고 싶은 시의 흔적을 여기저기 놓아두었다. 『고독할 권리』를 읽는 독자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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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같이 있어 문학동네 시인선 109
박상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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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왜 말이 없니?


-박상수


피부가 거칠어져서요, 모이스처 리무버로 입술을 닦다가 내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까 창문을 닫느라 그렇죠, 벙어리장갑을 목에 걸고 거스름돈이 부족해도 말을 안해요, 타이머가 돌아가면 오븐에서 재가 되는 말, 타이어를 맞추기에는 너무 작은 손, 힘이 없어요 당신이 나에게 실망하셨기를 바라요, 두 번 세 번 타자기로 정리해도 입을 열면 사라지네요, 있었다고 믿을 뿐인 나의 이야기, 가끔 내 말소리에 내가 놀라요 후추나무처럼, 수줍은 후추나무처럼, 철 지난 바닷가에서 우둘두툴 조개껍질을 손에 쥐고 난 이불을 덮죠 아무것도 빼앗기기 싫어서 입은 지운 채 앙금을 만들어요 팥앙금, 밤앙금, 허니머스터드와 말린 과일도 넣고(편리하지만 죽어가는 농담도) 졸이고 졸여 멋진 잼을 만들어요 그런 게 내게 있다고 사람들을 속이기로 해요 미니 증기선을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고기를 못 잡아요 산호 보석도 없어요 난 자주 흔들리지만, 살 수 있고, 이제는 너무나 많이 지워졌지만.


난 자주 흔들리지만, 살 수 있고. 난 자주 힘들지만 살 수 없고. 난 멍청하지만 살아가고. 난 잘난척하지만 지쳐가고. 무수히 많은 말을 지껄이다가도 입을 다무는 하루. 왜 그렇게 말이 없니라고 물어봐도 할 말은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수줍어서 말 못 했다는 건 거짓말. 구라. 나의 지난 이야기를 하자면 술보다는 자주 고개 끄덕거림과 한숨이 필요한데. 지금은 너무 많은 말이 우리를 스쳐 간다.



소풍


-박상수



화관을 장식했던 꽃이 머리칼을 떠나고 나는 몇 방울 물방울이 될 때까지 웅크려보기로 했다 엄마는 영 입맛이 돌아오지 않는 밥상, 홀로 상보를 덮었다 들었다 하겠지만 나는 낯선 역을 지날 때마다 기나긴 저녁이 되어갔다 독서등을 켜고 책장 여백에 글자들을 적고 있으면 쌓인 나뭇단 사이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새의 지저귐, 열차가 바오바브나무의 거리를 가로 질러가는 동안 말 없는 눈동자 가득 뿌리내린 뱀풀들이 흔들려 손을 흔들려 주었다 나는 잠결인 듯 뒤채는 소리를 내었다 모종삽으로 잘 파묻어주세요, 무지갯빛 엽서를 꺼내 손바닥 도장을 찍었다


손전등 아래에서도 글을 쓸 수 있었다. 가로등 아래에서도. 그냥 손만 잡고 살았다. 뼈마디를 만지는 나날들. 기차가 가는 풍경을 바라보다 해가 저물자 돌아오는 거리에서도 손만 잡았다. 과자 몇 개와 음료수를 사서 가방 안에 넣었다. 가난한 유년을 가졌는데 어느새 서로를 미워하며 마음 끓이는 시간이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버텨보기도 했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새가 날아오면 흔들려 주기로 하자 마음이 날아갔다.



왠지 궁금한 기분 1월


-박상수


입김, 보온병을 껴안고 침대에서 일어나, 어딘지도 모르고 왜인지도 몰라, 그런 아침, 전기가 들어오면 팔레트에 물감을 차고 입김을 녹여 태양을 그릴 텐데, 제자리 뛰기를 해도 심장은 움직일 줄 몰라, 손을 넣으면 열이 나는 장갑은 없을까 경축 아치 밑으로 걸어갔는데 내 수호 동물은 가죽만 걸려 있었어, 미안하며, 자꾸만 여기가 아니래, 입김, 모피를 두르고 썰매 안에 눕지만 제설차는 멈춰 있다 내내 돌아보지만, 빙빙 돌아오지만, 입김, 내겐 아주 중요한 것이 있었는데, 그건 어디 간 걸까


그건 어디 간 걸까, 왜 물어보는 건데. 네가 모르면 나도 몰라. 뻔뻔하게 질문하지 마. 짜증 나. 어떤 창문 밑에서는 태양빛이 굉장해. 빛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녀. 등이 뜨거워. 팔이 아파. 잠이 오면 잠을 자. 먹고 싶으면 대충 아무거나 먹어. 참지 말고. 웃고 싶으면 웃고. 울고 싶으면 입술을 꽉 깨 물어. 제발 내 앞에서 울지 마. 고개 숙이지도 말고. 그냥 걸어. 앞만 보고.



왜일까. 왜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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